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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아닙니다.

by 운해 박호진


아픈 이가 있다. 마음이 많이 아픈 여인이다.

일찍이 효심이 지극하고 예의 바른 내 친구의 아내가 된 여인이다. 딸 둘 낳고서 한참 후에 아들을 얻었는데 참 귀하게 키웠었다. 그러다가 그 아이가 여섯 살 무렵에 혈액 암에 걸렸다. 수시로 수혈을 해야 하는 치료라 아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헌혈을 부탁하곤 하였다. 그렇게 몇 년을 병원 쫒아 다니며 노심초사한 끝에 다행히 완치되어 별 탈 없이 자라고 성인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상경하여 취업하였고 아가씨를 사귄다는 소식이 있더니 금세 결혼 청첩장이 날아들었다.

결혼식장에서 본 아들은 키가 크고 인물이 훤칠하여 부러움을 샀고 큰 축하를 받았다. 신랑 아버지의 인사말로 주례를 대신하였는데 아들을 키우며 병구완에 갖은 고초를 겪고 마음 고생한 아내를 치하하니 친구 아내도 한없이 눈물을 훔쳤다.

친구 며느리의 임신 소식을 이미 들어서 알던 터라 아이가 태어날 즈음에 손자 출산 소식을 물어보니 대답에 힘이 없다. 그러고도 두어 달 동안 뭔 일이 있나 싶어도 캐어묻지는 않았는데 백일 무렵에 손자는 잘 커냐고 물으니 최근 심장 수술을 하였다며 그간 말 못한 사정을 실토한다. 다운 증후군이란다. 다운 증후군은 염색체 이상 질환으로 전형적인 얼굴 모양을 가져 태어나자마자 외관으로 알 수가 있다, 지능저하가 있고 심장기형, 눈의 이상, 손가락 짧음 등 여러 가지 기형이 관찰된다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과거에는 생후 1세 이전에 거의 사망하였지만 최근에는 50% 정도는 50세가 기대 수명이란다. 어찌 이런 일이. 출생자 중 800분의 1의 확률이라는데 왜 착하고 선한 이 부부에게서 이런 고통을 안겨주었을까.

친구의 아내는 반 실성 상태가 되었다. 왜 내 손자가 몹쓸 병을 타고 났을까. 어릴 적에 아들이 여러 사람으로부터 수혈한 탓인가. 내 지은 죄가 커서일까. 무슨 업보가 아들과 손자에게 내림하나. 아들도 병 치료에 그리 고생하였는데 손자는 백일도 안 되어 수술실로 중환자실로 오르내리다니. 커다란 충격을 겪으며 친구의 아내는 온갖 병이 다 나타났다. 허리 아프거나 목 디스크 증상이야 차차 치료하여 좋아졌지만 어지러움 증, 우울증, 이석증, 전정신경염, 공황장애 등으로 큰 고생을 하고 있다. 내로라하는 병원을 수없이 찾아 다녀도 비슷비슷한 증세의 병명을 말하며 약물 치료를 병행하였지만 거의 차도가 없다. 어지러움에 차를 오래 탈 수가 없어서 여행도 못하고 사람 만나기가 두려워 약속을 피하기만 한다.

최근에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데 조금 안정되었다고는 하나 모든 치료가 그랬듯이 처음엔 호전 되었다가 얼마 지나면 또 예의 증세가 나타났으니 안심 할 수는 없다. 마음이 천근만근이겠지. 되돌릴 수만 있다면 목숨도 내어 놓겠다는 여인. 손자에게 닥칠 고초가 내 탓인 듯하다고. 꿈에서나마 방실 방실 웃으며 뛰노는 손자를 보고 싶단다. 앞으로 닥칠 손자의 운명으로 아들 며느리가 겪을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에이어 한시도 한숨을 거두지 못하는 이 여인을 어찌해야하나.

친구말로는 2년 반을 지난 아기는 재활 훈련 끝에 곧잘 걸어 다닌단다. 안타깝게도 지능은 현저히 떨어져 불안감을 떨쳐 내지 못한다고.

그 아들 부부도 이 아이에게 전념하기 위하여 아기를 더 낳지 않을 계획이란다. 얘들아, 그게 아니야. 살다보면 더 큰 아픔도 당할 수 있어. 남매가 자라 서로 의지하고 서로 울타리가 되어주면 좋지 않겠니. 아픈 아이를 위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동생을 낳아 주렴. 그러면 할머니 가슴의 응어리도 조금은 삭을지도 모르는데...

간혹 매스컴을 보자면 장애인들이 얼마든지 훌륭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접한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이 세상 모든 아기가 어려움을 극복하여 바르고 밝게 자라길 간절히 기원한다. 장애아를 가진 부모들도 용기 잃지 말고 슬기롭게 대처하여 누구 못지않게 잘 키우기를 바란다. 누구의 죄도 아니고 우리 사회가 안고 해결해야할 많은 문제 중의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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