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누님이 떠나신지 벌써 여섯 해가 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금실이 좋으셨는지 내가 일곱 번째로 태어난 후에도 동생 둘을 더 낳으셨는데 잃은 아이 없이 다 키워 내셨다. 일찍 돌아가신 큰아버지 큰어머니 슬하의 사촌 다섯까지 거두어 식구가 열여섯이었으니 봄이면 기근이 만연하여 입에 풀칠도 겨우 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보아온 큰누님은 우리 남매의 든든한 기둥이셨다. 9남매의 맏이로 평생을 부모 걱정, 친정 걱정에 헌신하신 분이다. 처녀 적에 동네 어귀에 양장점을 차려서 생계를 책임지다가 출가하셨다. 신혼여행 다녀와 신행길을 내가 따라갔는데 친정 걱정 때문인지 새색시 고운 한복 소맷자락에 눈시울 훔치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 많은 친정 식구들 끼니 걱정을 얼마나 하셨을까. 결혼 후에 자형이 시골 농협에 근무하는 탓에 애기 키우기는 도회가 낫다며 어린 조카들 양육을 친정에 맡기셨다. 그 빌미로 수시로 친정을 드나드셨고 쌀이며 고구마며 이고 지고 나르셨던 분이다. 또 여러 동생들 개학 철이면 등록금을 보태셨고 결혼 뒷바라지를 도맡으시는 등 정성을 다하셨던 분이다
일곱째인 나하고는 열여섯 터울이니 다정하기보다는 늘 반듯하고 엄한 어른이었다. 그래도 중고등학교 입학금을 다 대셨으니 은인이시었고 결혼 앞두고 내 아내 될 사람을 제일 먼저 인사시킬 만큼 미덥고 존경하던 분이셨다. 나중에 자형께서는 농협중앙회 부산시지부장까지 역임하셨으니 누님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리시어 늘 집안의 자랑이고 귀감이셨다. 인자하시고 자상하시던 자형께서는 정년퇴임 이듬해에 안타깝게도 위암을 앓으시다가 홀연히 세상을 떠나셨다. 큰누님은 자형을 여의신 후로 삼십여 년을 홀로 사시며 두 아들 장가보내시고 손자 손녀 넷을 보시며 다복하고 건강하게 사셨으니 무슨 걱정이 있었으랴. 변화는 아마도 누님께서 여든 들 무렵부터 인듯하다. 늙어서 나다니면 젊은이들이 앞에서는 추어주어도 뒤로는 흉본다며 이십여 년을 다니시던 수영장 출입을 그만두셨다. 그 무렵에 담 너머로 평생을 같이 살아와 자매 같던 이웃 친구 분과도 절교하셨다. 이유도 별스럽다. 과부로 오래 살아서 무시당한다고. 그러더니 옛날 힘들던 시절 사귀었던 친구들을 수소문하여 만나고 어머니 돌아가신 후엔 이름도 잊고 살던 먼 외가 친지들을 찾아뵈곤 하셨다. 또 멀리 떨어져 살아서 한 번도 못 가본 형제자매들의 집을 죄다 찾아 다녔다. 그러다가 드디어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을 하셨다. 조카와 동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삼십년을 고이 모셔오던 자형의 무덤을 파묘하고 모든 제사마저 안 지내도록 했다. 훗날 자식들에게 부담 주는 게 싫다고 그러셨겠지.
그 이듬해 봄이었던가, 누님께서 입원하셨다는 전갈을 받고 황급히 병문안을 가서 다들 놀랐다. 별다른 병환이 아니고 극심한 영양실조란다. 왜 이토록 무심하였냐고 조카들을 나무라니 걔들도 속수무책이었단다. 타이르고 때로는 완력을 써도 통 음식을 멀리하셨단다. 아주 조금씩 드시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나중에 먹는다며 상을 물린단다. 입원을 해도 링거 처방 외에는 의사도 손 쓸 일이 없었다. 그렇게 입 퇴원을 서너 번 반복 하시더니 아픈데 없다며 입원마저 완강히 거부 하셨다. 더욱 허약해지니 동생이며 올케며 줄줄이 찾아가서 부탁 말씀드려도 음식은 잠시 입에 대다가 만다.
그렇게 건강하고 다부졌던 분이 자그마하고 힘없이 여든 둘의 가을날에 낙엽처럼 부스러졌다.
그 때는 몰랐었다. 왜 그리 한사코 식음을 멀리 하셨는지. 입맛이 없으시나~, 삶의 의욕을 잃었을까? 그게 아닐 거야. 건강하고 반듯한 모습만 남기시려 그랬나. 당신 의지로 삶을 결정하고 싶으셨나. 더 나이 들면 병들고 추해진 육신을 자녀에게 맡기지 않을 요량이셨나. 정신과 육체가 맑고 건강 할 때에 스스로 정리하고 마감하려는 욕심이셨겠지.
둘째 누님은 아직도 정정하시고 활달하신데...
누님! 왜 그리 바삐 내려놓으셨습니까. 남아 있는 이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일인 줄 짐작도 안하셨습니까. 아직도 아버지 어머니 살던 집을 지키고 있는 조카는 과연 짐을 덜었겠습니까. 성큼 크 버린 손자 손녀는 할머니 정을 그리 쉬 잊는답디까. 무거운 짐에 짓눌려 웃음기 없는 조카와 며느리 들이 안쓰럽습니다.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생전의 흔적은 더욱 진하게 느껴집니다.
누님, 사랑합니다.
오늘 따라 더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