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문턱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웅성거림과 소란스러움에 의식이 돌아오고 가늘게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인가. 복도의 형광등 불빛이 머리 위로부터 다가와 빠르게 내 발치로 흘러간다. 하얀 가운을 입은 두 명의 사내가 나를 태운 이동침대를 밀면서 뛰어가는 중이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긴 복도로 보아 지하실인 듯하다. 복도 끝의 ‘방사능주의’ 표시가 붙은 큰 문을 열고 침대를 밀어 넣는다. 장정 세 명이 달려들어 나를 달랑 들어서 X선 촬영기의 검정 베드 위에 올려놓는다. 갑작스레 통증이 온몸을 휩쓴다. 하얀 천장아래 육중하고 검은 렌즈 뭉치가 나를 내려다본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인듯하다. 아마도 부상 부위의 X선 촬영을 하려는가 보다. 급박하게 준비를 하는 동안에 조금 전의 상황이 스쳐간다.
친구 다섯이 어울려 저녁식사와 소주를 즐기고 2차로 맥줏집을 갔었다. 11시쯤일까. 저마다 떠드는 소리가 뭔 소린지 모를 때쯤이면 이미 술에 취한 거다. 비틀거리며 화장실에 가니 엉거주춤 서있기 마저도 아슬아슬하다. 1Km쯤 될까. 우리 아파트가 빤히 보이는 곳이니 걸어가마고 호기를 떨며 손을 내저어 인사하고 친구들과 헤어졌다. 하천변 한적한 도로에 늘어선 가로등이 유난히도 밝다. 아마도 그 넓은 길을 좌로 우로 비틀거리며 헤매었을 것이다. 동네 입구의 육거리 교차로에 다다랐다. 낮 동안의 혼잡은 사라지고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교통섬 너머 멀리 건너편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길을 건넜다. 착각이었다. 차량신호와 횡단보도 신호가 반드시 엇갈리는 것은 아닌데.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 이렇게 날아서 가는구나. 죽음이란 단어가 스친다. 공중제비를 하고 저만치 나 뒹굴었다. 양복이 찢어지고 핸드폰이며 지갑이며 여기저기 흩어지고 바람에 지폐가 굴러간다. 아~ 내 돈! 주우려고 기어가려니 몸이 꼼짝을 않는다. “아저씨 괜찮아요?” 다급한 목소리가 귓전에 부딪친다. 날 들이받은 자동차의 운전자다. 엄청 심한 통증을 느꼈다. 다리는 떨어져 나간 듯하고 머리에서는 흘러내린 핏덩이가 이마에 끈적끈적하다. 전화해야지. 이 상황을 빨리 아내에게 알려야지. 많이 늦어서 기다릴 텐데. 전화기는 박살이 났다. 운전자의 폰을 빌려서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 나, 병원 가야 돼. 교통사고 났어.” 놀라고 다급한 목소리가 귀를 찢는다. “거기 어디야, 괜찮아?” “집 앞 오거리...”라고 힘겹게 말하곤 정신이 가물가물한다. 저 멀리서 구급차가 삐요 삐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온다. “아저씨, 정신 차려요!” 119 구급대원인가 보다. 분주히 움직이더니 조심스레 들것에 나를 싣는다. 아내가 헐레벌떡 이리로 달려올 텐데... 나 혼자 떠나면 아내는 어떻게 하지. 하릴없는 걱정을 하다가 가물가물 의식을 잃었다.
누운 자세로 허리며 가슴이며 여기저기 촬영하더니 “이제 다리뼈를 맞추기 위하여 사진을 찍을 겁니다. 잠시 끝날 테니 아프더라도 참으세요.”한다. 아까부터 왼쪽 다리가 덜렁거리더니 뼈가 다 부서진 모양이다. 술에 취한 상태라 마취를 할 수 없단다. 장정 둘이 다리를 꽉 붙잡는다. 이리저리 몸을 돌리며 몇 차례 촬영을 한다. 왼쪽 다리가 복합골절이란다. 두 사람이 상체를 꽉 붙잡고 한 명이 오그라든 다리를 확 잡아당긴다. 욱~! 엄청난 고통이 온몸을 엄습한다. 찍어보고 당기고 또 당긴다. 평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극심한 통증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제는 끝인가 했더니 또 반복하여 예의 시술을 한다. “도저히 못 참겠으니 그만해요!”하고 하소연하니 지금 부러진 뼈를 제자리에 끼워 맞추어서 부목을 대지 않으면 다리가 오그라들어서 내일 깁스를 할 수가 없단다. 고통을 이기려 침대를 얼마나 세게 잡았던지 어깨가 으스러지는듯하다. 그러고도 근 스무 차례 넘게 당기고 촬영하고 끊임없이 계속된다. 주리를 튼다는 말이 떠오른다. 뼈를 깎는 아픔이 이보다 더하랴. “차라리 다리를 절단할 테니 제발 그만합시다!” 묵묵부답이다. 죽으면 죽었지 더는 못하겠다. 발버둥을 치고 온몸을 뻗대며 저항해도 소용없다. 고통을 못 참아 내지르는 고함이 지하실 곳곳에 메아리친다. 온몸에 진땀이 나고 맥이 풀려 몸부림칠 힘도 없을 즈음 고문은 끝났다. 죽을 고비를 넘긴 듯하다.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아서 이동 침대로 옮겨 누인다.
다시 응급실로 실려 왔다. 많은 이들로 북새통이다. 입원 수속을 밟고 응급실에서 서성이고 있던 아내가 와락 달려온다. 반갑다. “여보!” 갑자기 목이 메었다. 아내도 울먹인다. 내려다보는 내 몰골이 엉망이겠지. 이게 무슨 일이냐고, 술은 왜 그렇게 많이 마셨냐고 야단이다. 간호사가 피를 닦고 링거를 꽂고 채혈을 한다. 새벽녘에 술기운이 가시니 온 전신으로 고통이 몰려온다. 머리는 지끈거리고 출혈로 얼굴도 부어올랐고 가슴이며 허리며 숨쉬기도 힘들고 하반신은 꼼짝을 못 하겠다. 누운 채로 용기에 소변을 받아 내어야 하는 나보다 술에 취해 사고당하고 실려 온 사내의 보호자가 된 아내가 더 부끄러울 것이다. 아내는 밤새워 나를 지키느라 눈도 못 붙이고 먹지도 못했다. 아직 방사선 치료로 성치 않은 몸인데....
오전 늦게야 주치의가 정해지고 입원을 했다. 부상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머리는 파열되어 출혈이 많았지만 이미 지혈되었으니 기울 필요는 없고 갈비뼈는 세 곳이 나갔지만 어차피 누어서 지낼 테니 그대로 아물 테고 허리나 그 밖의 통증은 타박상이니 점차 나을 거란다. 문제는 종아리뼈가 세 동강이 났는데 큰 수술을 해야 한단다. 발목부터 무릎까지 절개하여 철판을 대고 핀을 박아서 고정하고 외부로는 허벅지와 발목 아래까지 깁스를 하여 뼈가 붙을 때까지 두세 달은 기다려야 한단다. 뼈는 원래 재생되어 붙게 되는데 나이가 있어서 힘들지 모른단다.
암담하다. 당장 회사일이 걱정이다. 암 투병 중인 아내도 걱정이다. 뼈가 잘 붙어야 3개월이고 재수술까지 하게 되면 6개월이 걸린다는데... 만 가지 걱정이 스쳐간다. 거울 속의 몰골은 참혹하다. 이마에서 뺨까지 피멍으로 검붉게 변하여 내가 봐도 흡혈귀 분장 같다. 부끄러워 회사 관계자 외에는 면회도 못 오게 하였다.
사흘 뒤에 수술실로 갔다. 수술실은 왜 이리도 추운지. 수술복 한 겹만 입은 탓인가. 덜덜 떨려 담요를 덮었다. 척추에 주사를 놓아 전신 마취를 하였다. 하나, 둘, 셋, 백까지 세어라 한다. 귓가에 기괴하고 엄청난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깊은 나락으로 빙글빙글 돌아서 떨어져 간다. 채 마흔을 세지 못하고 몽롱해졌다. 몸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 캄캄하고 아득히 먼 곳으로 마치 우주 유영을 하듯 흘러간다.
얼마나 지났을까. 의료진의 대화가 귓전에 닿는다. 의식이 돌아왔나 보다. 겨우 눈을 뜨니 허리춤으로 짙푸른 장막이 쳐져있어 하반신 쪽으로는 볼 수가 없다. 윙하고 드릴머신 소리가 난다. 망치로 두들기고 칼로 베는지 날카로운 금속음도 난다. 깜짝 놀랐다. 마취가 풀린 것을 이 사람들이 알고나 있는지. 통증이 뼛속을 파고들까 봐 불안하다. 그런데 하반신은 감각이 없다. 그렇다면 수면에서만 깨어나고 하반신은 아직 마취 상태인가 보다. 다행이다. 한 참을 조이고 두들기고 달그락 거리더니 붕대를 감고 커튼이 치워졌다. 최대한 양쪽발 길이는 맞추었으니 걱정 말란다.
병원에 입원하여 한 달을 넘길 즈음 안면의 피멍도 많이 가라앉았고 화장실 까지는 목발을 짚고 이동할 수 있게 되어 휠체어를 타기로 하고 퇴원했다. 요즘처럼 와이파이가 터지는 시절이 아니었으니 노트북으로 원격 근무는 거의 불가능해 직원이 매일 병실로 결재 서류를 들고 다녀가니 못할 짓이었다. 직원이 자동차에 태워 출퇴근시키고 회사에서는 화물용 승강기로 오르내리며 근무하기를 2개월, 깁스를 풀고 X선 촬영을 하니 뼈가 붙지를 않았단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옆구리를 절개하여 골반뼈를 도려내어 잘게 잘라서 부러진 뼈의 틈사이어 넣어 접착제 역할을 하게 하는 수술이다. 마취와 철판 덧대기, 봉합, 깁스 등이 첫 수술 때처럼 반복되었다. 이번에도 안 붙으면 반대편 골반뼈를 잘라내어 또 수술한단다. 골반뼈는 다시 자라나니 계속해서 이용할 수 있다고~. 제발, 그런 일은 없어야지.
세 달 뒤에 허벅지까지 조았던 기다란 깁스를 풀었다. 이젠 혼자 걸을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부주의 탓이다. 비 오는 날 목발을 짚고 나들이하다가 꽈당 미끄러졌다. 이번엔 복숭아뼈가 조각이 났다. 또, 전신마취에 수술... 그러고 일 년 후, 종아리의 수술자국이 아무를 즈음 무릎부터 발목까지 절개하여 그동안 몸을 지탱해온 철판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지긋지긋한 전신 마취 수술이 네 번이었다.
매일 같이 목발을 짚고 운동장을 열 바퀴씩 도는 재활 운동의 노력으로 걸음걸이는 점차 좋아졌다. 상태가 차츰 나아지며 목발을 한쪽만 짚게 되고 나중엔 목발을 버리고 지팡이를 짚고 다니게 되었다. 5년 후에는 드디어 4차선 대로의 횡단보도를 지팡이 없이 건널 만큼 좋아졌다. 그리고 다시 술도 즐기게 되었다.
2009년 5월 18일. 그날 사고의 기억은 까마득히 잊혔다. 요즘 친구들과 어울리면 일흔을 넘긴 나이들이니 건강 이야기가 먼저다. 어떤 이는 고혈압과 당뇨로 또 어떤 이는 고지혈증과 전립선비대증으로 약을 복용한단다. “자네는 어때. 약 먹는 거 없어?”하고 물어오면 “나도 하나 먹는 게 있지, 쏘~주!”하며 너스레를 뜬다. 그런 나에게 아내의 타박이 시작된 지가 오래다. “영감아, 그렇게도 술이 맛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