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덥다. 몹시 덥다. 아침에 오늘의 날씨를 검색할 때부터 더워진다. 장마 기간 그렇게도 아끼던 비를 막바지에 한꺼번에 쏟아붓고는 연일 37, 8도를 넘나들었다. 계속되는 열대야. 에어컨 없이는 잠을 이룰 수 없다. 무더위, 폭염, 불볕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 등 더위를 나타내는 온갖 단어들을 삼켜버렸다. 올여름 가혹한 기후는 지금까지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단다. 지구를 지배한 인간의 탐욕이 낳은 결과라 하니 나도 한몫 거든 셈이니 참아내는 수밖에.
더위를 피하여 다니던 숱한 여행의 추억이 떠오른다. 양산의 배내골, 밀양의 호박소, 지리산 피아골, 울진의 불영계곡, 두타산 무릉계곡, 무주구천동 등 천연의 피서지를 찾아서 텐트치고 야영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 뛰어다닐 무렵엔 해수욕장이 으뜸이었다. 거주지(창원) 인근의 남해 상주, 삼천포 남일대, 부산의 해운대, 광안리, 송정, 일광, 다대포해수욕장을 당일치기로 다녔다. 당시엔 보험회사가 제작한 지도책에 의존하여 코스를 정하고 잡지와 신문에서 맛집 정보를 얻었었다. 아날로그 시절의 여행이 더 정감 있고 기억에 남는다. 40대 이후에는 장거리 여행이 늘었다. 강원도 양양, 강릉, 동해시와 경북의 울진 포항 등을 누볐고 서해는 제부도로부터 태안반도, 변산반도의 명소, 신안, 진도 등 입소문 난 곳들은 죄다 다녔다.
피서 여행도 한 때, 50대 이후에는 관광지를 피하고 전국에 산재한 자연휴양림을 찾아 천혜의 숲속에서 더위를 식혔다. 울창한 송림, 편백숲, 잣나무 그늘이 여름 나기에는 최상이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한동안 여행이 뜸하였고 이후에는 보따리 싸서 여행 떠날 엄두도 안 나지만 특별히 가보고 싶은 곳도 없고 새로이 주목받는 곳도 없다. 자식들 여행길에 따라나서기도 하지만 볼거리, 먹거리, 취향이 달라 큰 흥미는 없다.
날씨가 덥다 보니 제철 과일인 수박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손님 없이 우리만을 위해 사려니 부담스럽다. 두레박으로 퍼 올려 마시던 시원한 우물물 대신 정수기의 냉수로 해갈한다. 예년에는 손님맞이로만 가동하던 에어컨이 올 여름엔 거의 매일 돌아간다. 전기료 걱정에 아껴 쓰던 습관도 올해는 버렸다. 어릴 적, 남매간에 가위바위보로 순번을 정해 서로 손부채질해 주던 때가 그립다. 그 시절 여름밤 평상에 누우면 은하수가 쏟아질 듯하였는데 그 많던 별들은 누가 어디로 숨겼을까.
피서. 말 그대로 더위만 피하면 그만이다. 주변에 멋진 피서지가 많다. 주민자치센터의 헬스장은 냉방이 빵빵하여 추울 지경이다. 동백도서관과 용인박물관도 걸어서 5분 거리이다. 조금 떨어졌지만, 경기도박물관과 백남준 아트홀도 멋진 곳이다. 더위도 피하고 문화의 향기에 흠뻑 젖을 수 있다. 7월 25일에는 문체부에서 영화관 6천 원 할인권을 450만 장 배포하였다. 나와 아내 몫으로 4장을 확보하였다. 경로 할인 혜택까지 더하니 관람료가 1천 원이다. 이런 횡재가 어디 있나. 영화 내용은 제쳐두고 며칠을 오후에는 극장에서 보내었다.
어제저녁부터 비가 내렸다. 지난번 남부 지방 폭우 이후 보름 만이다. 아무리 더워도 여름은 간다. 8월의 절기는 7일 입추를 시작으로 9일 말복, 23일 처서이다. 기온이 달력 따라 오르내리고, 절기 챙기어 계절을 바꾸진 않겠지만 해는 짧아지고 가을은 온다. 익어가는 곡식과 푸른 하늘로 비상을 시작하는 잠자리는 여름의 끝을 알겠지. 아무튼 밤새 내린 비 덕택인지 8월 첫 주는 폭염 예보는 없으니 다행이다.
이번 주부터 기흥 아카데미 하반기 수업의 시작이다. 도서관, 박물관에 더해 멋진 휴식처가 하나 더 생긴다. 이번 학기도 문학교실은 거의 만석이다. 다시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을 한분 한분 떠올려 보고 새로이 등록하여 같이 수업할 분들에 대한 기대를 해본다. 문학교실은 모든 분의 글쓰기 참여가 큰 특징이고 장점이다. 각자의 추억을 끄집어내기도 하고 살아가는 모습, 본 것 느낀 것을 글로 엮어 같이 읽노라면 마치 스스로가 겪은 듯한 이야기들에 공감한다. 즐겁고 훈훈한 분위기로 채워갈 수업을 생각하니 여름을 이겨낼 수단이 하나 더 생겼다.
수필 속으로 피서를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