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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수, 내 사랑

웬수, 사랑이 뒤집힌 표현이 아닐까

by 운해 박호진


웬수. 원수(怨讐)의 방언으로 흔히들 쓰는 단어다. 주로 가족 등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에서 쓰이며 미움과 애정이 공존하는 감정을 표현한다. 정으로 만난 부부가 2,3년 밀월 후엔 아이들 키우고 부모 봉양하며 평생을 서로 부대끼며 살아간다. 의지하고 신뢰하면서도 편하고 믿는 탓에 일탈도 하고 때론 걱정도 끼친다. 그래저래 미운 정, 고운 정 쌓여가면서 “웬수”가 된다.

TV 드라마나 탐방 프로를 보노라면 금슬 좋은 부부를 참 많이도 소개한다 만 기실 다투지 않고 사는 부부가 있을까? 평생 큰소리 한번 안하고 살았다는 부부이야기는 믿기지 않는다. 한쪽이 고자세고 억압적이라 참고 살았거나 상대하기에 벅차 너는 너 대로 나는 나 대로 살아왔겠지. 남들에게 ‘잉꼬부부’로 소문난 이들도 말다툼이나 의견 충돌은 있다. 그것을 싸웠다고 표현하면 부부싸움이다. 인식과 표현의 차이일 것이다.


가부장적 문화와 경제적 궁핍으로 우리 세대는 결혼 초부터 갈등은 겪었다.

연애결혼이든 중매결혼이든 혼사가 시작되면 집안의 풍습과 가풍을 내세운 의견 충돌이 있다. 결혼 당사자야 싱글벙글이지만 주위에서 혼례절차며 혼수문제로 이견이 생기고 뒷말이 무성해진다. 겉으로는 충분하다, 말로는 이해한다면서도 혼수의 양과 질적인 문제로 두고두고 갈등을 쌓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양가의 문화 충돌도 빼 놓을 수 없는 갈등의 요인이다. 집안 대소사는 가풍을 내세워 강요하고 매사에 다름을 인정하거나 양보는 없다. 그런 분위기는 고스란히 부부에게 전해져 자칫하면 내 집, 네 집으로 구분하고 급기야 우리 엄마, 당신 엄마 하며 언성이 높아진다.

자녀들이 자라면 동기간에 동서 간에 내 아이 자랑이 앞서다보니 서먹해지고 조부모의 손주 사랑 크기가 다르다며 서운해한다. 바깥으로 나도는 남편은 늘 당당하고 안살림은 권한도 없고 주장도 못하는 아내의 몫이다. 친구나 직장 동료와의 어울림. 술자리는 당연시되고 공동 육아는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도박이나 외도에도 버티어 내는 가정이 많았다. 자녀가 성장하며 교육 문제, 진로 문제는 부부싸움의 단골 소재다. 좋은 건 나 닮았고 나쁜 건 너 닮았다. 그렇게 아웅다웅 살다 보면 결국 서로의 “웬수”가 된다.


내 집안일이야 부끄러워 남에게 털어놓지 못하나 남의 부부 갈등 이야기는 들을 수록 솔깃하고 그 다음이 궁금하다. 가까운 부부 이야기를 옮겨 본다.

우리 아들 고교 동창의 부모이니 우리와 동향이다. 창원공단이 생기기 전에 양가가 부농으로 살다가 맺어진 인연이란다. 남편은 막내로 고향 지키며 살며 부모를 모셨고 자연히 제사며 집안 대소사의 중심이 되었다. 맏며느리 아닌 맏며리 역할을 다한 아내를 위하여 퇴직 이후엔 제주도로 탈출(?)하여 7년을 살았으니 남편의 아내 사랑은 극진하였다 싶다. 외아들 부부는 사법고시 동기로 경찰 간부로, S전자의 변호사로 근무하니 재물복, 자식복 부러울 것 없는 부부 이었다.

그들이 제주 생활을 청산하고 손녀 뒷바라지를 위하여 아들 부부와 합가하였는데 여러 경우가 우리와 겹치다 보니 격의 없이 흉허물을 털어 놓는 사이였다. 듣다 보니 짐작과는 다르게 남편의 흉허물이 많았다. 손녀 돌봄에 전혀 도와주지 않고 혼자 기거하는 방에 종일 틀어박혀 커피 마시고 책만 읽고 있단다. 게다가 지독한 애연가에 집에서는 독불장군이란다. 고향집 관리나 집안 대소사도 아내 혼자 오르내리며 처리하였다. 아들부부와 외출하여도 카드한번 쓰는 일 없는 구두쇠였고 가계 상태도 전혀 알려 주지 않았단다. 불만은 점점 늘어나고 미운 마음에 평생 쌓아온 시시콜콜한 불평이 쏟아져 나온다. 한마디로 웬수도 그런 웬수가 없었다. 물론 남편 입장은 들어 본적이 없으니 사실 여부는 별개다.


2년 전에 남편이 코로나로 입원하여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반전이 있었다.

임종을 앞두고 아내 손을 잡고 “그동안 미안하다”고하더란다. 또 아들 없는 틈에 예금 내역을 죄다 알려주더란다. 아들보다 자기에게 모든 걸 알려주니 평생의 울분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다 녹아 내렸던 것 같다. 그렇게도 흉보던 남편을 떠난 후에 얼마나 그리며 추켜세우던지 너무나 의아하였다. 다른 이는 몰라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우리는 전혀 반대의 상황에 무척 혼란스러웠다. 지금도 통화만 하면 남편 모신 절에 다녀온 자랑이다.

“미안하다” 한마디에 모든 걸 잊은 건 아닐 것이다. 평생 쌓였던 미움과 상처는 사랑이 뒤집힌 얼굴이 아니었을까? “웬수”로 여겼는데 그 빈자리를 그리움으로 채우니 평생 연분이 맞다. 진작 기대고 따뜻했으면 좋았을 것을.


언젠가부터 나도 “웬수”로 살고 있다. 되돌아보니 아내에게 잘못한 일이 참 많다. 나는 일시적인 일탈이었다고 변명하지만 아내의 기억은 전혀 다르다. 세월의 상처와 흔적은 유독 아내에게 또렷이 남아있다. 하물며 아내의 기억력은 대단하고 참 정확하다. 까마득하게 잊은 일들을 또렷이 기억해내어 새삼 따지고 탓할 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용서 구하였다고 잊었을까? 나 편 하려고 나의 기억에서만 지웠음이다. 남은 삶, 사랑만 하며 살아도 너무 짧은 시간, 이제부터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야지. 그럴 일이 없겠지만 아내가 먼저 떠나고 홀로 남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 진다.

“여보, 미운 정은 접어줘. 우리 언제 떠날지 모르잖아. 내가 잘할께, 오래오래 사랑모드로 서로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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