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없는 귀머거리
“귀머거리 영감아! 대답 좀하소.” 아내가 내게 뭔 말을 했는데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반응이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으리라. 간혹은 딴 짓하다가 못 듣기도 하고 때로는 잠시 말대답을 생각하다가 늦기도 한다. 귀머거리 영감으로 낙인찍힌 것은 한참 전이다. 손자 어릴 때 돌봄을 위해 수시로 아들네에 들렸는데 가장 불편한 것이 소리가 작은 것이었다. 애기가 깬다고 소곤거리며 말하고 TV볼륨도 모기소리만하다. 못 알아들으니 되묻는 일이 잦다보니 아예 별명이 되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불편한 일이 간혹 말소리를 다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인사를 나누고 나서 뭔가를 물어오는데 정확한 인지가 어려울 때가 간혹 있다. 특히 젊은이들의 말소리는 더욱 그러하다. 은행이나 병원 창구 등에서 여직원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여 당황한다. 조금 더 큰소리로 말해주면 잘 들리겠는데 소곤거리듯 말하니 되묻기가 일쑤다. 아내가 곁에 있으면 대신 설명해주는 경우가 왕왕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소음성난청이 있는듯하다. 딸이 보청기 사용을 권한다. 아직은 ‘그 정도는 아니다.’며 버틴다. 더 정확히는 보청기 사용을 늙은이의 상징으로 여기어 거부감이 있다. 병원에서 청력검사 결과는 별 문제는 없다하니 위안이 되긴 한다만 언젠가는 사용하게 될까봐 관련한 기사나 광고를 접하면 관심 있게 살펴본다.
지난 명절, 형제들 식사 모임에서 동생이 한 말이 기억난다. 나이 탓인지 귀가 잘 안 들려서 애로란다. 특히 사무실에서 젊은 직원들이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거나 술자리에서 여럿이 이야기할 때에 더욱 그러하단다. 동생의 생각으로는 서울 친구들 억양이 경상도와 다르니 그런 것 같다고 한다. 특히 술자리 대화중에는 내용을 모르면서 옆 사람 따라 엉거주춤 표정만 짓는 다나. 나도 그렇다. 상대가 뭐라 하는지 못 알아 들을 때는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한다. 서울에 몇 십 년 살은 형님이나 여동생은 그런 일이 없다하니 내가 서울 말씨에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으리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네, 저어기 위안이 되었다.
여러분! 저한테 말할 땐 또박또박 조금 큰소리로 말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