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호롱불

당신은 나의 영원한 영웅이십니다.

by 운해 박호진


어릴 때 자란 집은 적산가옥(敵産家屋:일본식가옥)이었다. 다다미방이라 온돌이 없어서 낮에는 화로에 의지하고 잘 때는 솜이불과 유단포로 겨울을 났다. 책상은 형들이 사용하고 국민학교에 갓 들어간 나는 교자상을 책상 삼아 두터운 솜 방석에 앉아서 공부하였다. 공부 내용은 요즈음 아이들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수준이다. 한글을 익히고 기초적인 셈을 배우는 정도이었고 숙제도 책 내용을 몇 바닥 써서가는 것이었다. 몽땅 연필에 침을 묻혀 가며 꾹꾹 눌러써다가 틀려서 지우노라면 질 낮은 공책은 쉬 찢어졌다. 재생지로 만든 공책은 지푸라기나 티끌이 섞여 있고 표면도 매끈하지 않았다.

인자하던 어머니도 아이들 공부에는 엄격하였다. 공부하는 내내 곁에 앉아서 바느질하다가 연필을 깎아주기도 하였다. 책을 읽거나 숙제하다가 잠시 졸기라도 하면 회초리로 사정없이 방바닥을 내리친다. 그 시절은 툭하면 정전이 되었다. 정전이라고 공부가 끝이 아니다. 성냥을 그어 석유 호롱에 불을 붙이면 이내 긴 그림자다 벽에 나풀거린다. 희미한 호롱불에 의지하여 공부하노라면 짙은 석유 냄새가 코끝에 닿는다. 그 냄세가 좋았다. 전기가 다시 들어온다. 훅 불어 호롱불을 끄면 심지에서 파란 연기가 가물가물 피어오르며 그을음에 묻어나는 냄새는 참 특이하였다. 그 냄새, 지금도 그립다.


먹거리는 당연하고 모든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우리집 호롱은 자기나 유리 제품이 아니고 양철로 만든 것이다. 대롱이 세 개인데 심지는 굵은 실을 꼬아서 집에서 심어 넣었다. 공부할 때는 세개의 심지 모두에 불을 켜지만 평소에는 한 개만 불을 붙인다. 석유가 귀하기는 지금보다 더했겠지. 간혹 양초도 사용했지만 제사나 손님을 위해서만 사용하였다. 벽에 어른거리던 그림자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피던 일은 추억이 되었다.

호롱에 얽힌 에피소드. 형들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지우개를 석유에 담가두면 껌이 된단다. 큰 기대로 어머니 몰래 호롱의 뚜껑을 열고 지우개를 넣어두곤 했다. 크레용을 오래 씹으면 껌이 된다하여 몇 시간을 우물거리다가 혼난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하긴 씹던 껌을 기둥에 붙여두었다 다시 씹곤 하던 시절이니 호기심 많은 아이를 나무랄 일만은 아니었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 무렵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연필과 공책을 가져와 한글을 써달란다. 어머니는 글을 몰랐다. 며느리 맞으려니 글을 읽고 쓰지 못한다는 것이 창피하니 글을 배워야겠단다. 깜짝 놀랐다. 당신은 글을 모르면서 배워야 산다고 아이들 공부는 닦달한 어머니. 품속의 아홉 남매와 사촌 다섯을 거두어 14명을 키워 내시며 글을 몰랐다니 아이들 학교에 불려 다닐 때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1924년, 일곱 살 어린 소녀는 쥐여주는 주소 한 장 들고 단신으로 부관 연락선을 탔다. 나고야에 도착하여 친지의 주선으로 방직공장에 취직하여 구다마끼(管券:북에 들어가는 실패에 실을 감는 공정)일을 하였으니 학교 문턱에도 갔을 리가 없다.

어머니 손가락이 비밀을 안 것도 그 무렵이다. 방직공장에서 사고로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절단하였단다. 가사용으로 고무장갑이 나왔는데 손가락 하나가 달랑거려 알게 되었다. 그 전의 실장갑은 손가락 하나를 꿰매어 사용하였으니 알 턱이 없었다.


2007년 추위 가신 3월에 여주시 남한강공원묘원에 모셨다. 아흔 해를 모질게 살아내신 어머니! 타국에서의 소녀 여공 생활.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Pacific War)때의 산속 숯가마 피난. 해방 이듬해에 귀국 후 자리를 잡기도 전에 큰아버지 내외가 호열자(虎列刺:콜레라)로 세상을 떠나 사촌들 까지 떠맡은 일. 625동란(한국전쟁)에 아버지가 징용 나가고 몇 달을 노심초사하며 피난 보따리 싸두고 식솔들 얻어 먹인 일. 숱한 고생을 어찌 다 짐작하리. 1970년, 고도 성장기에 들어 겨우 마음 놓고 밥술을 뜬 어머니. 그 자그마한 몸으로 다 감당하였으니 나라 지킨 영웅보다 위이다.


어머니! 긴 세월 곁에 계셔도“사랑합니다.” 한마디 못 하고 따뜻하게 안아드리지도 못한 부끄러움은 어찌해야 합니까? 손주들 수학 문제 풀이를 돕다가 문득 어머니의 호롱불과 회초리를 회상합니다. 틈날 때마다 아들, 딸, 손주들에게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노라면 어머니가 그리워 가슴이 아립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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