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의 사랑, 국민 간식 라면
라면과 콩나물의 조합은 환상적이다. 콩나물을 헹구어 채반에 받쳐두고 양파 1/4 토막도 미리 썰어둔다. 냄비에 물 500CC를 받아서 인덕션에 올려두고 라면 봉지를 뜯어서 투하 준비. 물이 끓어오르면 재료들을 넣고 달걀까지 톡. 아내가 외출하는 목요일 점심마다 즐기는 나만의 특식이다. 환풍기를 틀고 창을 활짝 열어두는 것은 기본이다. 두어 시간 지나도 아내는 현관에 들어서며 알아챈다. “어휴 라면 냄새!” 암만 그래도 맛있는 걸 어쩌나.
중학생 무렵이던가, 작은 형이 먹던 컵라면을 한 젓가락 얻어먹은 것이 첫 경험이다. 당시의 라면은 우지(소기름)에 튀겼다. 구수한 그 맛은 세상에 없던 맛이다. 그 전엔 따끈한 밥에 마가린과 날달걀로 비벼 먹던 맛이 최고였는데 단번에 그 자리를 라면이 차지했다. 군대 시절, 주말이면 특식으로 라면이 나왔다. 취사장에서 식당까지 들고 와 배식하다 보면 불어서 식판에 면만 가득하다. 스프는 누군가(?) 빼내 가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었지만, 퉁퉁 불은 라면은 꿀맛이다. 나의 라면 사랑은 그때부터인 것 같다. 2004년 봄 서유럽 여행 때였다. 융프라우 정상의 매점에서 한국 컵라면을 팔고 있었다. 한국인의 지독한 라면 사랑으로 세계적 관광지를 점령하였으니 참 대단하다고 여겼다.
라면은 1963년 삼양식품 전중윤 회장이 정부를 설득하여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전수하여 생산/출시하였다. 당시에 라면 하나에 10원이었는데 현재는 1,000원 내외이며 가장 비싼 라면은 2,880원이라니 격세지감이다. 그 후 정부의 혼, 분식 장려 정책으로 국민 간식으로 정착하였다. 1968년 월남전에 파병한 군인들의 입맛에 맞는 먹거리가 필요하였는데 군납 물품으로 베트남에 라면 360만포를 수출한 것이 한국 라면 수출의 기원이란다.
현재 500여 종의 라면이 시중에 유통되고 국민 1인당 소비량은 연간 80개이며 국내시장 규모 2조 원이라니 놀랍다. 2조 원? 5만 원짜리로 4천만 장이고 다발로 쌓으면 높이가 4,400m로 롯데타워(555m) 8개 높이와 맞먹는다.
한국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에서 라면을 먹는 장면이 많이 노출되며 해외에서 체험해 보고 싶은 음식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2025년도에는 전 세계적인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았고 K-라면 열풍으로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2025년 연간 라면 수출은 전년 대비 22% 증가하여 15억 달러(한화 약 2조 2천억 원)를 넘어섰으니, 국익에 일조하는 효자 상품이다.
한 때 쥐 실험 결과가 과장되어 라면을 위험한 식품이라고 취급한 적이 있었다. 쥐에게 밥만 먹여도 영양 불균형의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또 1963년엔 우지(牛脂:소기름) 파동으로 불량 식품으로 오인당한 적도 있었다. 공업용 우지를 사용하였다는 투서로 시작된 사건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로 판명되었지만, 그 여파로 우지 라면은 시장에서 퇴출당하였고 식물성 팜유로만 튀기게 되었다. 그 우지 라면을 지난 년말에 ‘삼양라면 1963’이란 이름으로 다시 출시하여쓰단다. 추억의 맛을 느낄 수 있으려나. 60여 년 서민의 애환이 깃든 라면은 이제 해외여행의 필수품이고 아이 어른 없이 즐기는 국민의 자존심이 되었다. 종류와 맛도 다양하여 선택의 폭이 무한하다.
부엌 서랍엔 이런저런 핑계로 사다 둔 라면이 종류만도 대여섯이다. 아내도 라면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손주들이 좋아하여 가끔 짜장 라면을 끓여준다. 내가 끓여 먹으면 한 젓가락 얻어먹기도 하고 해외여행 다녀오면 먼저 라면 먹자고 제안도 한다. 다만 밥도 반찬도 많은데 영감 혼자서 라면을 끓이는 것이 마음 쓰이나 보다. 그게 아닌데. 난 밥보다 라면이 맛있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