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바다 처럼

남은 삶의 지표

by 운해 박호진

온 동네가 봄꽃으로 화사하다. 동백과 목련의 탐스러운 봉우리를 며칠 전에 본 듯한데 벚꽃이 거리를 누비고 뒷산에는 개나리 산수유 진달래가 한창이다. 지구 온난화로 개화시기가 열흘 정도 당겨졌단다. 그 뿐만 아니라 남쪽지방과 중부 지방의 개화시기 차이도 2~3일 로 짧아 졌단다. 예전에는 동백, 매화, 산수유, 목련, 그 다음에 개나리, 진달래, 벚꽃 순으로 개화 순서가 정해져있었는데 근래에는 기후변화로 시차가 줄어들어 여러 꽃들이 한꺼번에 핀다.

한동네라도 볕이 잘 드는 곳과 그늘지고 바람이 지나가는 곳의 기온 차이 때문에 순서가 바뀌거나 뒤섞여 피어서 혼란스럽다. 우리 집만 해도 앞쪽은 벚꽃이 만개하였고 뒤편은 매화가 막바지이고 이제 피어나는 목련도 있다. 건물이 산그늘과 골짜기를 대신하여 빌딩풍을 만들어 자연의 질서를 무너뜨렸다.


빌딩풍, 도시에 크고 높은 건물이 들어서서 그 사이의 좁은 공간으로 통과하는 바람이 속도를 높여 강해지는 현상이다. 고층 건물 밀집 지역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한 여름에 무더위를 피하여 빌딩 그늘로 가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 땀을 식혀 준다. 그러나 겨울에는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쳐서 주변 기온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바람이 소용돌이치는 현상으로 도시의 쾌적성을 떨어뜨리고 화재, 교통, 대기오염 등 다양한 피해를 유발시키기도 한다.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물은 바윗돌을 돌아 넘치며 경쾌한 소리를 내며 청량감을 더한다. 그러나 커다란 바위는 물의 흐름을 막아 소(沼)를 만들고 물길을 바꾸기도 한다. 인위적인 다리나 보, 휩쓸려 내려온 생활 쓰레기는 폭우에 범람의 원인이 되어 큰 피해를 낸다. 사람의 편의로 만든 건물이나 교량이 도도한 자연의 흐름을 바꾸고 인간에게 다양한 형태의 피해를 가져오는 꼴이다.

조직이나 모임에서 괜한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 분란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참견이나 자화자찬으로 분위기를 그르치는 사람이 있다. 일본의 기업가이자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안도모모후쿠(닛산식품 창업자: 최초로 인스턴트라면 발매)는 조직 내의 인재관(人才觀)을 설명하며 “꼭 필요한 사람, 있으나 마나한 사람,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구분하였다. 사람은 장소나 때에 따라 또는 주어진 역할에 따라서 특출한 재능을 발휘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영웅이 되기도 하며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마천루나 높다란 교량은 지역의 랜드마크로 사랑받지만 그 그늘은 더 깊을 수도 있다.

기흥아카데미 문학교실은 늦깎이 글벗들이 어울려 수필을 쓰고 매주 모여 낭독하고 떄론 토론하는 수업이다. 다양한 사람살이를 엿들으며 새로운 견문과 지식을 습득하는 멋진 교실이다. 각자의 직업과 종교와 신념으로 칠팔십년을 꿋꿋이 지켜낸 이들. 그들이 엮어 내는 문장은 유려하지는 않지만 공감을 이끌어 내고 건강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더욱 보람인 것은 인품이나 학식, 경험이 출중한 분이 많다는 것이다. 산같이 듬직하고 뭇사람을 포용하는 분, 바위처럼 단단하고 미더운 분, 꽃보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분들이다.

그 속에서 나는 어디쯤 위치할까? 요란하거나 산만하지는 않는가? 빌딩풍처럼 홍수처럼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가? 유머와 농담이 지나쳐서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는가. 나만의 직업적 경험과 지식을 내세우고 남과 견주지 않는가. 아내사랑 자식 자랑의 팔불출은 아닌가?

누구나 일이나 공동체의 중심이고 싶고 나아가 리더가 되고 싶지만 스스로의 능력이나 자질을 가늠할 줄 알아야한다. 빌딩처럼 버티고 서서 바람 길을 바꾸고 바위처럼 물을 막아서서는 안 될 일이다.

글벗들 틈에서 나의 위치를 가늠해본다. 존재의 가치인가 훼방꾼인가. 남은 삶이 십년, 이십년 일수도 있다. 산을 대신하여 그늘을 만들어 쉼터가 되고 적당한 크기와 무게로 흐르는 물과 더불어 고운 화음을 만들어 편안함을 나누자. 내가 먼저 고개 숙이고 목소리는 낮추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자. 사계절 내내 글벗과 더불어 사색하고 즐기며 그들의 글을 통해 깨우치고 맑아지자.

끝없이 펼쳐져 포근하게 산하를 품는 구름바다처럼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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