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 이

by 운해 박호진

새해가 되면 모두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 사람에 따라 경우에 따라 나이를 먹는 것이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를 만 5세에 입학했다. 부르는 나이로 일곱 살이었지만 정확히 계산하면 만5세 9개월에 입학한 것이다. 학교를 모두 마칠 때까지 늘 친구들 보다는 한살이 적었다. 당시에는 늦깎이로 아이들을 취학 시키는 부모가 많았고 상급학교로 진학하면서 재수하는 친구가 많아서 동기들 중에는 나이가 두세 살 위인 친구들이 꽤 있다. 학창시절에 한 살을 올려 말했는데 군 입대는 제 나이에 하다 보니 남보다 늦은 셈이었고 입대이후엔 고참병이 된 친구를 제법 만나기도 했다.

나이 올리기는 직장 생활 중에도 계속되어 늘 한 살 많은 삶을 살았다. 물론 뭇 사내들처럼 낯선 여자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는 대여섯 살 내려서 말했지만. 나이 많은 것이 자랑만은 아니라고 느낀 것이 아마도 회갑을 지나면서 일듯하다. 어느새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이 은근히 싫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일흔을 넘기면서 칠순이니 어쩌니 하는 말들이 도리어 거북스럽기도 했다. 설을 쇠면서 어김없이 또 한살을 더 먹었다. 음식도 아닌 데 먹기는 왜 먹는지. 많이도 먹었는데 이젠 사양하고 싶다.

오는 6월28일부터 국민의 법적, 사회적 나이가 만 나이로 통일된다. 다소 셈이 혼란스럽겠지만 두 살이나 줄여주니 좋기만 하다. 나무에 나이테가 있듯 신체 나이가 있는데 부르는 나이가 적어진다고 내 몸의 무엇이 바뀌랴. 아무튼 그래도 나는 좋다. 칠순 생일이 1년 반 전인데 올해에도 나이는 일흔에 머물 수 있으니 한참 젊어진 듯 우쭐해진다.

하지만 해마다 나이 먹으며 꿈을 키워가는 꼬맹이들은 혼란스럽다. 미국에서 살다가 2021년 1월에 귀국한 딸네에 손녀가 둘이 있다. 큰애는 미국에서 스쿨을 다녔는데 거기서 세살로 가르치다가 한국에 오자 말자 네 살이 되었고 한 달 후에 설을 지나니 다섯 살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둘째는 돌을 지나지 않은 때이라 개월 수로 나이를 말하다가 귀국하자 한 살이 되고 곧바로 두 살이 되었다. 손가락 꼽으며 나이를 세는 아기 때이라 나이가 갑자기 두 살 씩 바뀌니 무척 혼란스러워 하였다. 나도 헷갈리는데 아기들이 어찌 제대로 헤아릴까. 3월부터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하여 귀국 전에 내가 대신 지원서를 내게 되었다. 생년월일에 대한 설명 없이 4세반, 5세반 등으로 구분하여 모집하는데 몇 세반인지 언뜻 분간이 안 되었다. 여러 번 문의하여 4세반과 1세반에 지원서를 넣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손자손녀들에게 나이를 줄여서 가르쳐야 하는데 지금부터 바꾸느냐, 생일부터 바꾸느냐를 가족 모두가 고심 중이다. 여섯 살 손녀는 일곱 살이 되면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았는데 갑작스레 지금은 다섯 살이고 5월 달에 너 생일이 되어야 여섯 살이 된다고 하려니 어찌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예전에 88올림픽을 앞두고 우리나라도 섬머타임을 시행한 적이 있었다. 핑계는 하절기 에너지 절약과 국민들의 저녁 생활 활성을 도모한다고 하였지만 기실 서방과의 시차를 조금이라도 줄여서 올림픽 성공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다 안다. 그러니 두어해 실시하다가 슬그머니 되돌아갔겠지.

예부터 즐겨오던 풍습이나 관습을 바꾸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는 태양력을 공식화 하고 있지만 생활 곳곳에 음력이 엄연히 존재한다. 생일을 물을 때에는 꼭 양력인지 음력인지 확인해야 한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제사는 음력으로 지낸다. 추석과 설날은 국민정서 때문에 정부에서도 음력으로 휴일을 정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새해 인사는 1월1일에 하고서 설날이 되면 또 새해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한다. 올해 칠순에 접어드는 어떤 이는 칠순 잔치를 만 나이로 하겠다며 한해 뒤로 미루었단다. 그러고 보니 회갑은 예전부터 만 60세에 치르지 않는가. 세는 나이로 살던 삶이 만 나이로 살게 되면 편한 것도 있지만 어색한 것도 많으리라. 나이와 관계된 관습이 쉽게 바뀌게 될지 시간을 두고 지켜 볼 일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