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지구를 꿈꾸는 이들

그저 허울 좋은 이야기일 뿐인가?

by 강진영


"Imagine a world where forests flourish and oceans are full of life. Where energy is as clean as a mountain stream. Where everyone has security, dignity and joy. We can’t build this future alone, but we can build it together." - Greenpeace international


숲이 우거지고, 바다는 생명으로 가득하며, 누구나 존엄과 안정 속에 살아가는 세상.

그린피스는 바로 이런 미래를 꿈꾸며 1971년 캐나다에서 출범한 국제 환경단체다.

반핵 운동 ‘Don’t Make A Wave Committee’에서 시작된 이 단체는, 오늘날 자연 보전 운동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그린피스의 사상적 뿌리는 생태주의에 있다.

이들은 환경 문제를 기술의 문제라기보다 심층적인 사회 구조의 실패로 진단한다.

따라서 해결책 또한 단순한 기술 개선이 아니라, 근본적 사회 전환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앞선 편에서 다룬 툰베리가 '기후 대응 운동'의 상징이라면,

그린피스는 자연 보전 중심 접근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툰베리와 마찬가지로 그린피스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엇갈린다.

이들은 기성 정치 체제와 자본주의적 산업 구조에 맞서 싸운다는 점에서,

‘체제 밖’의 비판자이자 실천자라는 공통된 위치를 공유한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유사해 보이는 그들의 주장이

막상 ‘해결책’에 이르면 약간의 방향차를 드러낸다.


‘기후 대응’이라는 이름 아래,

툰베리에 이어 그린피스는 우리에게 어떤 선택지를 제시할까?




그린피스의 주력 캠페인 방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기후 대응: 화석연료와 원자력 에너지의 배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촉진

생물다양성 보호: 해양과 육상 생태계 보전, 플라스틱 감축, 국제 규범 강화

정의로운 전환: 책임 기업의 규제와 시민 권리 보호를 위한 정책 촉구


기후 변화는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 지구의 복사 평형을 깨뜨리면서 온실효과를 강화하고,

그로 인해 지구 평균 기온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며, 결국 전 지구적인 기후와 환경 변화를 유발하는 현상이다.


이에 따르면, 결국 우리는 언젠가 이 변화의 근원인 화석연료를 배제해야만 한다.

이 결론은 어쩌면 논쟁의 여지가 없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발전 과정에서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대량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원자력 에너지를 제외하면서, 간헐적이고 불안정한 재생에너지만을 그 대안으로 삼는 것은 정말 자연스러운 결론일까?


탄소 배출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원전을 더 짓는 것은 석탄이나 석유를 쓰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지다.

전력 품질공급 안정성 측면에서 보자면,

원전은 태양광이나 풍력에 비해 매우 유리하다.


그렇다면 묻자.

탈원전이라는 주장은, 원자력이라는 기술에 대한 과학적 비판에서 기인한 게 아니라,

막연한 공포에 기반한 도덕적 판단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여기서 더 나아가보자.

‘생태계를 지키자.’

‘환경을 파괴한 기업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누가 봐도 옳은 말들이다.


하지만 그 바탕에 깔려있는 모든 생명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은 어쩌면

삶에 여유가 있는 이들만이 꿈꾸고 말할 수 있는 낭만이며,

현실을 잠시 미뤄둔 도덕적 담론에 불과한 건 아닐까?


혹시 그들은

환경에 대한 절박함에 사로잡힌 나머지,

산업과 경제를 무너뜨릴지도 모를 비현실적 구호만을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주장은 반대자들이 말하듯,

급진적 도덕감각에만 기대는 이상론일 뿐일까?


혹은,

지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들이 말하는 방향이야말로

우리가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불편한 진실이며,

마침내 걸어나가야 할 길일까?


원자력의 그림자


"원자력발전은 재앙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고, 사고 시 그 피해가 너무나 막대하고 치명적입니다. 역사적으로 전 세계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는 모두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나 인간의 실수로 인해 발생했습니다. 원전의 치명적인 위험을 철저히 통제할 수 있다는 그릇된 신화를 바탕으로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원전 밀집도가 높은 국가가 되었습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수십만 년 동안 사라지지 않는 핵폐기물이 별다른 해결책 없이 미래 세대에게 남겨집니다." - Greenpeace Korea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전 사고의 규모와 심각도를 1등급에서 7등급까지 분류하는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체계를 운용한다.

이 기준에 따라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로 꼽히는 두 사례가 있다.

바로 1986년 체르노빌 사고2011년 후쿠시마 사고로, 모두 최고 등급인 레벨 7에 해당한다.


체르노빌 사고는 비상 발전 전원 투입 전까지 터빈의 관성으로 얼마나 발전이 가능한지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때 부하 검사를 하기 위해 안전 시스템은 해제된 상태였으며, 흑연을 감속재로 사용하는 RBMK형 원자로 설계상 양의 공극계수(void coefficient)라는 구조적 문제를 갖고 있었다. (직관적으로, 이는 노심에서 증기 압력이 증가할 경우 냉각재(경수)의 밀도는 줄고, 감속재(흑연)의 효과가 상대적으로 커져 핵분열 반응이 가속된다는 뜻이다.) 여기에 조작자의 제어봉 조작 실수까지 이어지며 출력 급증으로 인해 통제할 수 없는 연쇄 반응이 결국 폭발, 화재 등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는 인간의 실수와 1세대 원자로의 구조적 결함이 불러온 사고였다. 사고 직후 순환펌프 기사 발레리 호뎀추크, 자동제어 기술자 블라디미르 사셰노크가 사망했고, 이후 투입된 약 1100명의 인원 중 134명이 급성 방사능 증후군(ARS)을 겪었으며, 이 중 28명이 수개월 내에 사망했다. 2006년 우크라이나 정부의 집계에 따르면, 총 56명이 초기 대응 과정 중 방사능 피폭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유럽 전역에 걸쳐 19만 제곱 킬로미터에 이르는 영역이 제곱미터당 37킬로베크렐 이상의 방사능으로 오염되었고,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러시아 3국 뿐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의 서유럽과 이베리아반도에서도 방사성 세슘 동위원소가 검출되었다. 오염 지역에 있던 아동들은 최대 50 그레이에 이르는 방사선을 갑상선에 노출받았으며, 갑상선암 증가, 종양, 수명 단축, 기형 출현 등 이러한 방사능이 인체와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는 연구도 존재한다.


후쿠시마 사고는 2011년 3월 11일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으로 인한 리히터 규모 7.3의 지진과 15m 높이의 지진 해일에서 기인하였다. 발전소 설계 당시 예상했던 지진 해일의 높이 5m를 훨씬 초과하는 높이의 지진 해일이 발전소를 덮치자 지하에 설치된 비상용 디젤 발전기가 침수되며 정지하였고, 발전소 내 모든 전기시설 역시 손상되었다. 이에 후쿠시마 제1 원전은 원자로 안전을 위한 최소 전력마저 없는 원전 완전전원상실(Station Black Out, SBO) 상태에 빠졌고, 이는 원자로 냉각 기능 상실로 이어졌다.


냉각이 중단된 상태에서 1~3호기 노심 온도는 섭씨 1200도를 넘었고, 각 호기의 제1~3 방호벽이 차례로 손상되며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유출되었다. 이와 동시에 고온 상태에서 지르코늄-물 반응으로 발생한 수소는 격납용기 내 수증기와 함께 고온고압을 유지했고, 결국 12일 1호기, 14일 3호기, 15일 4호기에서 수소폭발이 발생했다. 사고 발생 직후 IAEA는 이를 INES 등급 5로 평가했으나, 여러 원자로에서 발생한 사고라는 점과 방사능의 누출 범위가 큼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7등급으로 격상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두 번의 대형 사고는 각국의 에너지 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원전은 단순한 구호가 아닌 정책 기조로 이어졌는데, 독일과 대만 등의 나라는 탈원전 정책을 이어나가 각각 독일은 2023년 4월, 대만은 2025년 5월을 기점으로 모든 원전의 가동을 중단하며 완전한 탈원전을 선언했다. (2025년 7월 기준, 이들 국가의 모든 원전은 정지 상태에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문재인 정부(2017.5~2022.5)가 탈원전 기조의 에너지 정책을 채택했으며, 이후 윤석열 정부(2022.5~2025.4)에서 해당 기조를 뒤집으며 대한민국 내 에너지 담론은 ‘재생에너지 vs 원자력’의 탈을 쓴 '반원전 vs 친원전' 구도로 흘러가게 되었다.


원전에 대한 또 하나의 핵심 문제는 '핵폐기물', 특히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불능성이다. 한국은 현재 한·미원자력협정과 NPT의 규제 아래 파이로프로세싱 등 재처리 기술을 독자적으로 활용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매년 700톤이 넘는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하고도 이를 원전 내부 저장조에 임시로 보관하는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 저장조 자체가 2030년경부터 포화에 직면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특히 전남 영광 한빛 원전부터 순차적으로 포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미 국내 원전의 저장 공간(일명 '사일로', 원래는 곡물이나 사료 저장고를 의미하나 여기선 방사성 물질 저장 구조를 지칭함)은 이미 포화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2025년 2월 국회를 통과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은 다음과 같은 계획을 담고 있다:

2050년 이전까지 중간저장시설 운영 개시

2060년 이전까지 처분시설 운영 개시

이를 위한 고준위 방폐물 관리위원회 설치, 부지 선정을 위한 공론화 절차 및 주민 지원 대책 등

당초 한국수력원자력은 중간저장시설 완공 전까지 각 원전 부지 내에 건식 저장 시설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부지 확보주민 반대 등의 현실적 장애물이 크고, 포화 시점이 머지않은 현실이 그 계획의 실효성을 압박하는 중이다.


탈원전: '원전 말고 안전'이라는 명제에 대하여


탈원전을 지지하는 이들은, 원자력 발전이 갖는 구조적 위험성과 불확실성을 그 근거로 든다. 여기서 앞선 글에서 다룬 ‘사전 예방의 원칙’을 다시 떠올려보자. 4편에서는 이와 같이 서술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전 예방의 원칙’이 작동한다. “결과가 불확실하더라도, 그 결과가 되돌릴 수 없는 피해라면 확실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예방 조치를 취하라”는 이 원칙은, 기대값 중심의 전통적 리스크 분석이 간과하는 위험의 비가역성과 감당 가능성을 고려하자는 제안이다. ... 따라서, 불확실성과 비가역성이라는 구조적 특성을 고려할 때, 기후 변화 대응은 다수의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닌, 최소한의 책임이자 회피 불가능한 필요조건이 된다. ... 이는 기후 변화가 단순히 “중요한 문제들 중 하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비가역적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위험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


이 원칙은 기대값 중심의 전통적 리스크 분석이 간과하는 ‘비가역성’이라는 문제를 중심에 둔다. 실제로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경험했듯, 원전 사고는 한번 발생하면 수십 년간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남긴다. 확률은 낮지만, 그 피해는 치명적이다. 따라서 사전 예방의 원칙을 원전에 적용한다면, 원전은 사용하지 말아야 할 기술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는 비가역적인 특성을 가진 기후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정확히 같은 구조로 정당화될 수 있다.


더 나아가, 탈원전은 ‘세대 간 정의’의 논리와도 맞닿아 있다. 그린피스가 지적하듯, 사고가 없더라도 수십만 년간 사라지지 않는 핵폐기물은 별다른 해결책 없이 미래 세대에게 남겨진다. 이는 곧, 현재의 전력 편의를 위해 미래 세대에 장기적인 위험을 떠넘기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가 기후 변화 대응에서 ‘미래 세대의 권리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탈원전 역시 같은 윤리적 기준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한 논거 위에, 보다 실질적인 우려들도 덧붙여보자.


첫째, 기후 변화가 원전 운영에 미치는 구조적 위협이다.

2022년 유럽이 가뭄을 겪던 당시, 프랑스의 56기 원자로 중 절반 가까이가 가동을 중단했다. 주요 원인은 응력 부식 균열(SCC), 그리고 하천 수위 저하로 인한 냉각수 부족이었다. 물이 부족하면 원자로를 냉각하기 어렵고, 배출수의 온도조절 문제로 인해 가동을 줄일 수밖에 없다. 또한 해안에 위치한 원전은 해수면 상승폭풍 해일, 염분 침투 등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일부 원전도 이 조건에 해당한다. 이는 기후 변화가 심화될 수록, 원전 또한 입지와 냉각 시스템 설계에 따라 구조적으로 기후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둘째, 경제성과 계통 유연성의 측면에서도 원전은 불리해질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40년 유럽 LCOE 전망에 따르면, 신규 원전은 1MWh당 110달러인 반면, 풍력과 태양광은 각각 65달러 수준이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재생에너지를 새로 짓는 것이 또 다른 원전을 새로 짓는 것보다 경제적일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재생에너지의 확대를 위해 필요한 계통 유연성 측면에서도 원전은 한계가 있다. 출력 조절이 어렵고 고정 출력 중심의 원전은, 간헐적 발전 특성을 가진 재생에너지와 충돌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그린피스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 전환을 위해서라도 탈원전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지붕 아래 두 목소리


Swedish climate activist Greta Thunberg has called on Germany to keep using its running nuclear plants instead of increasing coal power. “It’s a very bad idea to focus on coal when this is already in place,” Thunberg told public broadcaster ARD in an interview. “If we have them already running, I feel like it’s a mistake to close them down in order to focus on coal."

("Greta Thunberg's pro-nuclear comment stirs up German runtime extension debate", Clean Energy Wire, 2022)


그렇다면 묻자.

기후 행동의 상징인 툰베리는 왜 독일의 탈원전을 비판했고, 그린피스는 왜 그것을 환영했는가?

같은 ‘기후 대응’이라는 목표 아래서도, 왜 이처럼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는걸까?


툰베리는 '탈석탄'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화석연료를 쓰는 것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원전을 활용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덜 해로운 선택이라고 본 반면, 그린피스는 ‘탈석탄’과 ‘탈원전’을 동시에 추구해야만 진정한 기후 정의가 실현된다고 본다. 이 차이는 ‘같은 목표’를 가진 두 세력이 ‘어떤 기술이 용인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서로 다른 답을 내린다는 점에서, 단순한 전략 차이가 아닌 가치 기준의 충돌로 볼 수 있다.


탈원전의 이유로 사전 예방의 원칙을 이용했는데, 과연 이 원칙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도 될까? 이를 논리적으로 형식화해보자.


먼저 '비가역적인 특성을 가진 기후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정확히 같은 구조로 정당화'된다는 말이 제대로 성립되려면 사전 예방의 원칙이 곧 공식화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과연 이 원칙을 공식화시켰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살펴보자.


불확실한 피해에 직면했을 때, 사전 예방의 원칙에 따르면 이에 따른 예방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예방 조치 역시 불확실한 피해의 위험을 수반한다면 사전 예방의 원칙에 따라 예방 조치 역시 금지된다. 즉, 이 경우 사전 예방의 원칙에 따라 예방 조치는 정당화되며 동시에 정당화되지 않는다.


이러한 자기 모순은 사전 예방 원칙 공식의 비일관성을 보여준다. 이는 사전 예방의 원칙이 항상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 될 수는 없으며, 특히 대안 역시 리스크를 동반할 경우, 사전 예방의 원칙과 함께 정량적인 편익-비용 및 기회비용 분석이 요구됨을 시사한다.


마찬가지로 4편의 논리를 빌려오자면, '기후 변화 대응'의 경우 평균적인 온난화로 인한 피해 추정만으로도 기후 대응의 필요성은 정량적인 편익-비용 분석으로 설득력을 지니므로 필요조건으로서 사전 예방의 원칙의 사용을 통해 당위성을 정당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면 '원전'의 경우에도 그러한가? 원전 없이 재생에너지만을 이용해 기후변화를 해결할 수 있다면 이 사전 예방의 원칙 사용만으로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전 역시 기후 변화에 따른 냉각 문제나 입지 리스크 등 구조적 한계를 지님에도, 재생에너지가 가진 본질적 변동성 문제는 전력계통의 안정성 확보에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재생에너지 100% 전환은 그 자체의 간헐성과 변동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 같은 보완적 수단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탄소중립위원회 에너지분과 전문위원회’의 2021년 9월 분석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당시의 탈원전 기조를 포함한 탄소중립 이행 계획의 저장수단을 100% ESS로 채운다고 가정했을 때 ESS 구축에만 최소 787조 원에서 최대 1248조 원에 달하는 비용이 소요된다. 또한 필요한 부지는 약 4182만 평에서 6689만 평, 즉 여의도 면적의 48배에서 76배에 이르는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는 2050년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61.9%로 채웠을 때를 가정한 수치다.


즉, 현실적으로 탈원전 기조와 탈화석연료 기조는 공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재생에너지가 대안으로서 충분하지 않다면 원전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을 때 자연스레 그 자리는 화석연료가 채우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원자력 발전을 중단하는 것은 화석 연료의 사용을 전제한다. 즉, 이는 앞서 설정했던 '기후 변화'에 대한 사전 예방의 원칙에 위배된다.


'기후 변화로 인한 파국 가능성'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툰베리가 '자연환경에 대한 위협'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그린피스와 독일의 탈원전에 대해서 다른 입장을 가지는 건, —툰베리 개인의 원전 선호도와는 상관 없이—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이것이 8편에서 언급했던 '친환경'에서의 '기후 대응'과 '자연 보전' 가치 간 차이이기도 하다.


그저, 허울 좋은 이야기일 뿐인가?


그린피스가 제시한 세상이 현실이 된다면, 툰베리의 경우와는 출발점은 다르지만 결국 유사한 결론에 도달한다. 기후 재난으로부터의 회피 가능성, 공동체 중심의 삶의 회복, 성장 중심 경제 프레임의 탈피라는 가능성을 얻는 대신,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온 물질 중심적 생활양식 — 편리함과 속도를 전제로 한 소비자적 삶의 구조 — 를 포기해야만 한다.


이는 단순한 정책 변경이 아니라, 삶의 형태 전체를 전환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전환의 요구는, 어떤 이들에게는 삶에 여유가 있는 이들만이 꿈꾸는 낭만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이미 불편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런 이상은 외려 더 큰 불편과 불안을 강요하는 도덕적 명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러한 불편함은 단지 이상주의적 희생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가 마주하게 될 불가피한 미래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길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묻자.

이러한 이상은 단지 허울 좋은 이야기일 뿐일까?

아니면, 그것은 결국 우리가 피할 수 없이 마주하게 될, 불편하지만 불가피한 미래의 실루엣일까?


세상은 단 하나의 가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전편에서 살펴보았듯, 전환 이후의 사회는 물질적 풍요와 대량 소비를 상당 부분 포기하고, 에너지·자원 사용을 최소화하며 지역 공동체와 지속 가능성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이는 관계와 생태를 중시하는 새로운 삶의 형식이자, 고탄소 기반의 소비 문명을 구조적으로 제한하는 사회로의 불가피한 진입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이 리스크는 과연 당신에게 감당 가능한 수준인가?라는 질문이 남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이러한 이상은 단지 허울 좋은 이야기일 뿐일까?

아니면, 그것은 결국 우리가 피할 수 없이 마주하게 될, 불편하지만 불가피한 미래의 실루엣일까?"에 대해 생각해보자.


— 아마 이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은 각자의 가치관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러니, 잠시 한 가지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툰베리의 외침은 ‘기후 변화 대응’이라는 가치로 번역되었고,

그린피스의 운동은 ‘자연 보전’이라는 가치로 드러났다.

이들은 모두 우리에게 변화의 필요성을 말하지만, 그 방식과 방향은 다르다.


그런데 묻자.

이들 중 하나의 가치만으로 세상을 온전히 채울 수 있을까?

정말 ‘기후 대응’ 하나만으로, 혹은 ‘자연 보전’ 하나만으로 모든 판단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세상은 결코 단 하나의 가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각자의 진실, 각자의 입장, 각자의 가치가 얽히고 충돌하는 이 세계는

단일한 이상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그린피스와 툰베리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이에게는 불편한 이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산업과 경제를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는 불안,

이미 충분히 버거운 삶을 더 무겁게 만들 거라는 우려,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희생의 감정.


이러한 것들에 반감이 든다면,

아마 그들이 말하는 가치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 당신의 가치를 침범당한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끊임없이 구호를 외치고, 이상을 이야기하고, 실현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그 방향’을 말하는 이유는,

그 자체로 전달되어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당장 바꾸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다른 진실을 바라보게 된다.

그들의 세계를 잠시 통과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세계를 재검토하게 되고,

그 속에서 우리의 가치 또한 다시 물을 수 있다.


툰베리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단지 자본주의의 전복이나, 좀 더 불편한 세상이 아니라

‘기후 변화로부터 모두가 피해받지 않는 세상’이었을 것이며,

그린피스가 말하던 탈원전과 사회구조 개편 속에는

‘모든 생명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라는 이상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이상이 모두 실현되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 일부를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그들이 존재하고 말해온 것만으로도

세상은 조금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기후 변화 대응이라는 이름으로 제안되는 모든 ‘전환’은

결국 무엇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라는 선택을 요구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낭만’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낭만이 단지 허울 좋은 이야기로 치부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들이 말해온 세계가 우리가 맞이하게 될 또 다른 가능성의 일부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치를 넘어 현실로


그럼에도 기후 변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기후 대응’은 단지 이상을 말하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된다.

이러한 수많은 가치들의 충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정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제는, 이상 너머의 구체적 현실을 이야기해야 할 때다.

수많은 해법과 주장들이 얽히는 복잡한 판 위에서,

우리는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결정적인 문제 하나를 먼저 들여다보려 한다.


바로 ‘에너지 전환’이다.

다음편부터는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직접적인 기반이자,

기후 대응의 핵심이기도 한 이 문제에서 다시 시작해보자.


요약


답안:

숲이 우거지고, 바다는 생명으로 가득하며, 누구나 존엄과 안정 속에 살아가는 세상.


풀이:

그린피스는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화석연료와 위험성이 큰 원자력 에너지를 배제하고, 깨끗하고 안전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촉진하며, 지속가능한 경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전은 사고의 위험성, 핵폐기물 등의 문제로 기후 변화의 대책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기후 변화가 가속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비싸지고 비효율적인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책임 기업의 규제와 시민 권리 보호를 위한 정책 촉구 등의 시스템 변화와 해양과 육상 생태계 보전, 플라스틱 감축, 국제 규범 강화 등의 생물다양성 보호 역시 동반되어야 한다고 한다.


얻는 것:

기후 재난으로부터의 회피 가능성

공동체 중심의 관계적 삶으로의 전환

경제 성장 프레임에 대한 탈중심화

원전의 위험 예방 & 핵폐기물 문제 해결


잃는 것:

지금까지의 물질 중심 생활양식

‘편리함’과 ‘속도’를 전제로 한 현대 소비자적 삶의 구조

근본적인 에너지 부족으로 인한 산업 최소화 극대화


생각해 볼 수 있는 아이디어:

기후 대응이라는 이름으로 제안되는 모든 전환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이상론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또 다른 현실의 한 가능성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