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원자력, 그리고 물과 땅의 에너지
제21대 대통령 선거 1차 TV 토론.
에너지 전략에 대한 질문에 세 후보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전 세계가 기후위기로 재생에너지 사회로 전환하고 있다”며, “우리도 관련 산업을 서둘러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AI 시대에는 전력 인프라 확충이 핵심”이라며, “원전 생태계를 복원해 전기요금을 낮추고 품질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탈석탄, 탈원전, 재생에너지 외침은 결국 전기요금 폭탄”이라며, “고통은 국민의 몫”이라고 비판했다.
이 세 발언은 대중 담론 속 에너지 논쟁의 이분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재생에너지는 이상적이지만 비싸고, 원전은 현실적이지만 위험하다는 식이다.
각 진영은 상대의 약점을 부각시키며, 상대 주장을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도가 오늘날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이상’과 ‘현실’, ‘비용’과 ‘위험’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같은 기술이 이상이 될 수도, 또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비싸다’는 말 역시 상대적이다.
무엇과 비교해 비싼가? 단기적으로인가, 장기적으로인가?
이번 글은 이런 이분법적 시각을 넘어서,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구체적 조건들을 들여다보려 한다.
이는 급진성이나 이상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얼마나 급진적일 수 있고, 어떻게 이상적일 수 있는지를 논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현실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에너지 위에서 살아왔고,
어떤 에너지로 이동하려 하는가?
지금,
우리는 어디서 전기를 가져올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화석연료, 원자력, 재생에너지, 수소 기반 기술 등
각 에너지원의 현실적 조건과 기술적 맥락을 하나씩 짚어보자.
화석연료란 고대 생물의 유해가 지층에 파묻힌 뒤, 고온·고압의 특수한 환경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탄화수소 기반 연료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석탄, 석유, 천연가스가 여기에 해당한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를 대규모로 활용하면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에너지 소비가 가능해졌다.
즉, 화석연료는 현대 문명 사회의 토대를 구축한 핵심 동력이었다.
발전용으로 주로 사용되는 화석연료는 석탄과 천연가스다.
석유도 에너지원으로 활용 가능하지만, 발전용으로는 가격 경쟁력이 낮아 상대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다.
2025년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대한민국 발전 부문에서 석탄과 천연가스가 각각 28.1%를 차지했다.
즉, 전체 발전량의 56.2%가 여전히 화석연료에 기반하고 있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화석연료가 고갈 가능성을 제외하면 뚜렷한 단점이 없다고 여겨졌다.
특히 지구온난화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전까지,
화석연료는 현대 문명의 성장을 견인한 핵심 에너지원으로 기능해왔고,
이를 기반으로 한 화력발전을 대체해야 할 명확한 이유도 없었다.
화력발전은 면적 대비 전력 생산량이 크고, 발전소 단위당 출력이 높아
적은 부지로도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이러한 대규모 생산 구조는 규모의 경제 효과를 통해
화석연료 기반 발전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선택지로 만든다.
또한, 화력발전은 연료만 확보되면 24시간 가동이 가능하며,
날씨나 계절에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특히 천연가스 발전은 출력 조절이 용이해, 수요 급증이나 감소 상황에서도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
설비 측면에서도 초기 투자 비용이 비교적 낮아
개발도상국에서도 설치가 용이하다.
물론 석탄 발전의 경우, 분진·황산화물·질소산화물 등 다양한 대기오염 물질이 배출되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대형화된 시설에는 오염 저감 장비를 적용해
이러한 피해를 일정 부분 통제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사고 발생 시 피해 범위나 지속성 측면에서
원자력 발전보다 사회적 수용성이 더 높은 경우가 많다.
화석연료는 이러한 장점들 덕분에 오랜 기간 주요 에너지원으로 자리해 왔다.
수십 년에 걸쳐 관련 기술이 축적되면서,
복잡한 개발 없이도 운용 가능한 설비들이 존재하고,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설계 기준과 운영 매뉴얼도 마련되어 있다.
또한, 화력발전을 전제로 구축된 기존 전력 시스템은
화석연료 기반 운용을 전제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추가적인 시스템 변경 없이도 기존 체계에 즉시 통합이 가능하다.
즉, 화석연료의 물리적 장점뿐만 아니라
그 위에 얹힌 문명적 인프라 전체가
화석연료를 쉽게 대체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나 원자력을 중심으로 한 오늘날의 대체 에너지 담론은,
‘대량 생산’, ‘출력 안정성’, ‘유연한 전력 조절’이라는 전제 위에서 구축된 기존 인프라와 본질적으로 충돌한다.
이는 앞서 8편에서 언급했던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이라는 산업 구조의 특성과도 맞물려 있다.
산업과 인프라는 일단 특정 기술 경로에 정착되면,
그 경로를 벗어나는 데 막대한 비용과 저항이 발생한다.
대체 에너지로의 전환은 바로 이 경로 의존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흐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는 오늘날 물러나야 할 에너지원으로 점점 더 강하게 지목되고 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화석연료를 연소할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유발하고,
그로 인해 다양한 부정적 효과들이 확산되기 때문이다.
기술적·경제적 조건만 놓고 보면,
화석연료는 지금도 이상적인 발전원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외부비용’을 제외한 조건에서만 유효하다.
고전 경제학이 외부비용을 무시한다고 해서,
현실의 경제 시스템까지 그것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인류의 삶은 외부비용이라는 조건 위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한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유니버설 오너(Universal Owner)’ 개념이다.
이들은 한 나라 전체 산업의 주식을 보유한 기관투자자로,
개별 기업의 이해관계를 넘어 경제 전반의 리스크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즉, 단일 기업의 투자자가 아니라
시장 전체의 리스크를 평가하고 자본 흐름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투자 주체다.
예컨대, 화석연료가 발전 부문에서는 가장 저렴한 선택지일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장기적으로 다른 산업의 생산성과 자산가치에 손실을 초래한다면,
유니버설 오너 입장에서는 오히려 투자를 줄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은 시장 전반의 흐름에 실제로 영향을 준다.
결국, 여기서 논의되는 전환은 단순히 윤리적 당위나 기후 정의의 문제가 아니다.
화석연료의 합리성은 외부효과가 반영되지 않을 때만 유지되는 일종의 '착시'에 가깝고,
따라서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에 가깝다.
원자력 발전소는 우라늄(U-235)이나 플루토늄(Pu-239)과 같은 방사성 원소의 핵분열 반응에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시설이다. 핵분열 시 방출되는 중성자는 매우 빠른 속도를 가지며, 현재 운영 중인 대부분의 상업용 원자로는 이 중성자를 ‘감속재’를 이용해 느리게 만든 뒤(열중성자화), 다시 핵연료에 충돌시켜 연쇄 반응을 유도하는 ‘열중성자 원자로(thermal reactor)’ 방식을 사용한다.
감속재로는 경수(일반 물), 중수(중수소 포함 물), 흑연 등이 활용되며, 경수와 중수는 감속재이자 냉각재로서 열 수송 역할도 동시에 수행한다. 흑연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별도의 냉각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발전 메커니즘은 핵분열 → 열 발생 → 냉각재를 통한 열 수송 → 터빈 회전 → 전력 생산으로 이어진다.
원자로 기술은 등장 시기와 기술적 완성도에 따라 보통 네 세대로 분류된다. 이 구분은 비용 효율성, 운전 안전성, 핵비확산성, 전력망 적합성, 상용화 가능성, 핵연료 주기 관리 등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1세대 원자로는 1950~60년대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활용하려는 시험적 시도로 개발된 초기 설비로, 미국의 쉬핑포트(Shippingport)와 영국의 마그녹스(Magnox) 원자로가 대표적이다. 2세대 원자로는 상업용 발전을 목적으로 1960년대부터 본격 도입되었으며,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한국의 고리 1·2호기와 월성 원전도 이에 포함된다.
3세대 원자로는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TMI) 사고 이후, 안전성과 경제성을 강화하려는 요구에 따라 기존 원자로를 개량해 개발된 ‘개량형 표준 원자로’다. 1980년대부터 개발되어 1990년대 이후 상용화되었으며, 한국의 APR1000, 미국의 AP600, CANDU 6형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후 등장한 3세대+ 원자로는 사고 대응 능력, 수동 안전 시스템, 냉각 기능 등 기술적 안정성을 대폭 강화한 설비로, 한국의 APR1400, APR+, 소형모듈원자로(SMART), 미국의 AP1000, 유럽의 EPR 등이 포함된다.
현재 세계 각국은 기존 방식과는 다른 기술 기반의 차세대 원자로인 4세대 원자로를 개발 중이다. 이들 원자로는 연료 활용 효율이 이론적으로 수십 배 높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양이 적으며, 방사능 반감기도 짧은 것이 특징이다. 주요 개발 노선에는 소듐냉각고속로(SFR), 초고온가스로(VHTR), 가스냉각고속로(GFR), 납냉각고속로(LFR), 초임계수냉각로(SCWR), 용융염로(MSR) 등이 있으며, 한국은 현재 한국원자력연구원을 중심으로 SFR과 VHTR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적으로 ‘더 안전한’ 3세대 원자로가 개발되던 시기인 1986년,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1세대 RBMK형)에서 대규모 사고가 발생했다. 물론 새로운 세대의 원자로가 설계되었다고 해서, 전 세계의 모든 원전이 즉시 최신 기술로 교체되는 것은 아니므로, 기술 진보가 현실에 반영되기까지는 언제나 일정한 시간차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현재 시점의 선택지로서 원자력 발전은 어떨까?
원자력은 여전히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 중 하나다.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날씨에 좌우되지 않고, 석탄이나 가스처럼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지도 않는다. 한 번 가동되면 수십 년 동안 기저부하 전력(기본적인 전력 수요)을 꾸준히 공급할 수 있어,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에너지 시스템 내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탈원전 논의에서 살펴보았듯, 원전이 완벽한 선택지라고 보기는 어렵다. 원전의 구조적 한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폐기물 처리 문제, 기후 리스크, 경제성 및 계통 유연성 부족이다. 지난 편에서 다룬 내용을 다시 인용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폐기물 처리 문제다.
한국은 현재 한·미원자력협정과 NPT의 규제 아래 파이로프로세싱 등 재처리 기술을 독자적으로 활용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매년 700톤이 넘는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하고도 이를 원전 내부 저장조에 임시로 보관하는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 저장조 자체가 2030년경부터 포화에 직면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특히 전남 영광 한빛 원전부터 순차적으로 포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미 국내 원전의 저장 공간(일명 '사일로', 원래는 곡물이나 사료 저장고를 의미하나 여기선 방사성 물질 저장 구조를 지칭함)은 이미 포화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2025년 2월 국회를 통과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은 다음과 같은 계획을 담고 있다:
- 2050년 이전까지 중간저장시설 운영 개시
- 2060년 이전까지 처분시설 운영 개시
- 이를 위한 고준위 방폐물 관리위원회 설치, 부지 선정을 위한 공론화 절차 및 주민 지원 대책 등
당초 한국수력원자력은 중간저장시설 완공 전까지 각 원전 부지 내에 건식 저장 시설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부지 확보와 주민 반대 등의 현실적 장애물이 크고, 포화 시점이 머지않은 현실이 그 계획의 실효성을 압박하는 중이다.
둘째, 기후 변화에 따른 취약성이다.
2022년 유럽이 가뭄을 겪던 당시, 프랑스의 56기 원자로 중 절반 가까이가 가동을 중단했다. 주요 원인은 응력 부식 균열(SCC), 그리고 하천 수위 저하로 인한 냉각수 부족이었다. 물이 부족하면 원자로를 냉각하기 어렵고, 배출수의 온도조절 문제로 인해 가동을 줄일 수밖에 없다. 또한 해안에 위치한 원전은 해수면 상승과 폭풍 해일, 염분 침투 등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일부 원전도 이 조건에 해당한다. 이는 기후 변화가 심화될 수록, 원전 또한 입지와 냉각 시스템 설계에 따라 구조적으로 기후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셋째, 경제성과 계통 유연성의 한계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40년 유럽 LCOE 전망에 따르면, 신규 원전은 1MWh당 110달러인 반면, 풍력과 태양광은 각각 65달러 수준이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재생에너지를 새로 짓는 것이 또 다른 원전을 새로 짓는 것보다 경제적일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재생에너지의 확대를 위해 필요한 계통 유연성 측면에서도 원전은 한계가 있다. 출력 조절이 어렵고 고정 출력 중심의 원전은, 간헐적 발전 특성을 가진 재생에너지와 충돌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 외에도, 긴 건설 기간이라는 전략적 취약성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신규 대형 원전은 2026년까지 부지를 확정하더라도, 환경영향평가(환경영향평가법), 실시계획 승인(전원개발촉진법), 건설허가(원자력안전법) 등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후에도 건설과 시험운전을 포함하면, 빠르면 2037년경에나 준공이 가능하다.
즉, 지금 당장 착공하더라도 10년 이상 소요되며, 이는 현재의 전력 수요나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고려할 때 시기적으로 늦은 대응이다. 결과적으로, 신규 원전은 기저부하 공급원으로서 중장기적인 전략적 가치는 있을지언정, 단기적 대응 수단으로는 기능하기 어렵다.
물론 원전 기술이 이러한 한계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살펴본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기술은 여전히 진화 중이며, 정부 역시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현재 한국형 소형모듈원자로(i-SMR)의 개발 및 사업화가 추진 중이며, 다양한 노형의 국내 시장 진입을 위한 제도 기반도 정비되고 있다. 계통 유연성 부족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정부는 무탄소 전원의 확대에 따라 전력계통의 불안정성이 심화될 것으로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30년대 중반까지 대형 원전의 ‘탄력운전 기술’을 상용화할 계획이다.
이는 기존 원전이 고정 출력과 연속 운전을 전제로 계통 내에서 역할을 수행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수요 변동성과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전환을 시도하겠다는 의미다. 이러한 흐름은 2025년도 에너지기술개발사업의 연구개발과제기획 등에도 반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결국 시간의 문제다. 이러한 대책들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까지는 2030년대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크며, 새로운 세대의 원자로가 설계되었다고 해도 기존 원전을 즉시 대체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들 기술 역시 중장기 전략으로서의 가치는 분명하지만, 단기적 대응 수단으로는 여전히 한계를 가진다.
이처럼 장점과 단점을 균형 있게 짚어보는 이유는 단순히 ‘느리니 포기하자’는 결론을 내리기 위함도, 원자력 기술의 선악을 판단하기 위함도 아니다.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면 다른 대안의 상대적 장단점을 냉정히 고려해야 하며, 사용한다면 얼마나,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2편에서 언급했듯, 이러한 판단이 오가는 세계 속에서
덜 못 살기 위해서라도, 더 잘 살기 위해서라도,
또 정합한 대안을 제시하거나, 주어진 대안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라도—
일단, 알아두는 편이 여러모로 나을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정의에 따르면, 재생에너지는 소비 속도보다 더 빠르게 자연적으로 보충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에너지다. 대표적인 재생에너지원으로는 태양광, 풍력, 수력이 있으며, 국가에 따라 바이오에너지나 지열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러한 재생에너지원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날씨나 시간에 따라 출력이 달라지는 태양 에너지과 풍력 같은 ‘가변형 재생에너지원(variable renewable energy source)’, 다른 하나는 필요에 따라 출력을 조절할 수 있는 수력, 바이오매스, 지열과 같은 ‘제어 가능한 재생에너지(controllable renewable energy source)’다.
현재 한국의 재생에너지 전략은 주로 전자인 태양광과 풍력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렇다면 후자인 제어 가능한 재생에너지원은 왜 전략의 중심축이 되지 못했을까?
수력 발전은 원칙적으로 큰 낙차와 충분한 유량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산악형 지형과 일정한 강수량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데, 한국은 이미 주요 댐 수력 자원을 대부분 개발한 상태다. 추가 개발은 환경 훼손, 지역 갈등 등의 이유로 제약이 크다. 규모를 줄인 소수력 발전 방식 또한 고려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발전 용량과 경제성 측면에서 태양광·풍력보다 경쟁력이 낮다.
지열 발전은 화산 활동이 활발한 특정 지질 조건에서만 실질적인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
그러나 발전량을 감당할 만큼 활발하면서도 안전하게 건설할 수 있는 지형은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입지 탐사와 발전량 예측에 필요한 비용과 불확실성 역시 높아, 상용화의 문턱이 높다.
바이오에너지는 ‘재생가능’하다는 특성과 ‘저탄소’라는 속성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산림의 재생 속도가 배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오히려 ‘탄소 부채’를 유발해 기후 대응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
또한 바이오에너지의 경우 국내 자원 수급에도 한계가 있다. 산림 벌채를 늘리지 않는 이상 안정적인 연료 공급이 어렵고, 대규모 사용을 위해 자원을 확보하려 할 경우 생물다양성 훼손이나 토지 이용 문제와 충돌할 가능성도 크다.
정리하자면, 이들 에너지원은 태양광과 풍력에 비해 산업적 성장 잠재력이 낮고 외부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며, 단위 발전당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보급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다만, 태양광과 풍력이 선택받은 이유는
이들보다 기술적으로 ‘우수’해서라기보다는
성장성, 자립성, 경제성 측면에서
‘더 유리한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태양광과 풍력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는,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므로 바로 다음 편에서 이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