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타 툰베리의 기후 변화 대응
“You say you love your children above all else, and yet you are stealing their future in front of their very eyes.”
— Greta Thunberg
그레타 툰베리.
15살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학교에 가지 않는 skolstrejk for klimatet(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 운동을 시작으로, 세계 정상들을 향해 직설적인 연설을 해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녀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리지만, 적어도 그녀가 현대 기후 운동의 상징적 인물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툰베리는 새로운 해결책을 설계하고, 이를 제시하는 이는 아니었다.
그녀는 정확히 말해, 새로운 해법을 만들기보다 이미 제시된 해법이 왜 실행되지 않느냐고 분노하는 입장에 가깝다.
그녀의 주장은 단순한 호소에 그치기만 하는 것일까?
과연 그녀가 원하는 세상은 올 수 있을까?
그녀의 말을 따라가보며 한 번 생각해보자.
“There are no grey areas when it comes to survival. Either we go on as a civilization or we don’t.”
— Greta Thunberg
툰베리에게 기후 변화는 단지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 문명의 존속 여부를 결정짓는 생존 차원의 문제다.
그녀는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회색지대가 없다고 말한다. 기후 위기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흑과 백의 경계 위에 선 문제다.
“The climate crisis has already been solved. We already have all the facts and solutions. All we have to do is to wake up and change.”
— Greta Thunberg
이처럼 툰베리에게 기후 위기는 더 이상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과학은 이미 충분히 경고했고, 기술도 준비되어 있으며, 따라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실행'이라는 단 하나의 선택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기후 위기를 마냥 단순한 문제로만 본 것은 아니다.
“The climate crisis is both the easiest and the hardest issue we have ever faced. The easiest because we know what we must do. We must stop the emissions of greenhouse gases. The hardest because our current economics are still totally dependent on burning fossil fuels, and thereby destroying ecosystems in order to create everlasting economic growth.”
— Greta Thunberg, No One Is Too Small to Make a Difference
기후 위기는 해결책이 명확하기에 가장 쉬우면서도,
그 해결을 실행하기 위한 구조가 너무 복잡하기에 가장 어려운 문제다.
현대 경제는 여전히 화석연료에 깊이 의존하고 있으며,
그 위에 세워진 ‘영속적 성장’이라는 신화는 생태계를 파괴하면서까지 유지되고 있다.
툰베리는 이 이중성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실행 여부만이 유일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이유를 그녀의 입을 빌려 말하자면,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the climate and the biosphere don’t care about our politics and our empty words for a single second.”
― Greta Thunberg
“So we can’t save the world by playing by the rules.
Because the rules have to be changed.
Everything needs to change. And it has to start today.
So everyone out there: it is now time for civil disobedience. It is time to rebel.”
― Greta Thunberg
앞서 말했듯, 툰베리는 새로운 해결책을 직접 설계하거나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단지 ‘기후 변화를 막아야 한다’는 말만 반복해온 것도 아니다.
그녀가 제시한 건 대안이 아니라 방향이다.
그녀는 지금의 체제 안에서 실질적인 기후 대응이 불가능할 경우 그 체제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체제란 이런 것이다:
선거 주기와 지지율, 여론에 휘둘리며 장기적 위기 앞에서는 언제나 미루기만 하는 정치,
탄소세, 기술 보조금, 시장 인센티브처럼 온건하고 점진적인 시장 기반 해법만이 반복되는 경제,
“지속가능”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성장이라는 전제를 결코 의심하지 않는 시스템.
이러한 구조 안에서는 실질적인 기후 대응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그녀는 단언한다.
그래서 그녀는 규칙을 따르는 것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하며,
규칙을 바꾸는 일, 그리고 그 시작으로서의 시민 불복종과 반란을 호소한다.
실제로 그녀는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의 BBC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지금의 체제를
“소위 북반구가 부를 축적하기 위해 자행한 식민주의, 제국주의, 억압, 그리고 집단 학살로 형성된 체제”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 수단이 시민적 불복종이든, 조직된 저항이든 간에—시스템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그녀의 인식은 분명하다.
이상의 분석을 바탕으로, 툰베리의 기후 대응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기후 변화는 생존 차원의 문제이며, 흑백 논리가 적용되는 문제다.
2.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고, 그것을 실행해야 한다.
3. 그러나 현재 질서 안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질서를 바꾸어야 한다.
다만 그녀는 체제 전환만을 최우선으로 외치는 인물은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만, 현재 시스템 내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동시에 시스템 전체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는 그녀의 입장은, 시스템 변화를 포함한 ‘기후 대응 총동원론’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We live in a strange world, where no one dares to look beyond our current political systems even though it's clear that the answers we seek will not be found within the politics of today.
...
Where everyone can choose their own reality and buy their own truth.
...
We live in a strange world.
But it's the world that my generation has been handed. It's the only world we've got.”
― Greta Thunberg, No One Is Too Small to Make a Difference
그리고 하나 오해할 것 같아 말해두자면, 그녀는 기후 문제를 하나의 정당 노선이나 타협의 대상이 아닌 도덕적·생존적 절박성의 문제로 보기 때문에, 제도정치적 ‘녹색 정치’와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도 정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기후 변화 대응에 있어서는, 그녀는 현 체제 내에서 실현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하려는 실용주의자에 가깝다.
툰베리는 기존의 정치적 언어들 조차 위기를 가리는 수사학적 장치로 간주한다.
다음은 그 대표적인 예다.
“Then we start talking about a circular economy and rewilding nature and the need for a just transition. Then you don’t understand what we are talking about.”
― Greta Thunberg, No One Is Too Small to Make a Difference
그렇다면 툰베리가 제시한 '기후 대응 총동원론'이 현실로 환원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번에는 '국제 협력의 실패'나 '이해관계의 충돌'과 같은 흔한 장애물은 잠시 옆에 치워두고, 만일 전 인류가 전적으로 협력하기로 한 경우, 즉 툰베리의 호소가 완전히 실현된 세계를 상상해보자.
과연 그 사회는 정말로 이상적일까?
먼저, 우리는 현재 누리는 것을 온실가스 배출 없이 계속 누릴만큼의 기술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물론 재생에너지와 원전과 같은 기술로 대체 가능한 영역도 존재한다. 그러나 반대로, 아직 기술적으로 대체가 어려운 분야도 분명히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철강·시멘트·플라스틱 같은 고탄소 공정 산업, 장거리 항공운송, 대량 육류 생산, 글로벌 물류 체계, 기계화 농업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질소비료와 화석연료 기반 공급망 등이 그러하다.
툰베리 본인은 탈화석연료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CCS와 같은 탄소 포집 기술에 대해서는 "지저분한 현실 세계에서의 실패작", "화석 연료 사용이 지속되고 있다는 환상을 수사학적으로 포장하는 마법"과 같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면, 툰베리가 상정하는 기후 대응은 현재 우리가 누리는 삶의 일부를 포기하거나, 근본적으로 삶의 형태를 전환하는 것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너무 극단적으로 가정한 것 같은가?
그러나 이는 결코 비현실적인 과장이 아니다.
오늘날의 물질적 풍요와 글로벌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지속적인 탄소 배출을 전제로 성립한 체제다.
그리고 툰베리의 급진성은 근본적으로,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외치는 과학적 경고를 최우선 가치로 두었을 때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결론이다.
즉, 문제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급진성의 기준은 상대화될 수 있다.
그녀는 “The climate crisis has already been solved. We already have all the facts and solutions.” 이라 말한 바 있다. 이 문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현재 상용화된 기술 수준 또는 근미래 전망 기술로 그 'solutions'를 구성한 다음 실제로 이를 모두 실행한다고 가정하면, 우리가 살아가게 될 삶은 다음과 같이 전망할 수 있다.
■ 철강·시멘트·플라스틱 사용은 최소화되고
■ 항공 여행은 극단적으로 제한되며
■ 고기 섭취는 거의 금지되다시피 하고
■ 저탄소 생태농이 기본이 되며
■ 소비와 경제 활동은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 지역 자립성과 공동체 중심의 삶이 강조될 것이다.
즉, 여기까지 본다면 산업화 이후의 삶과 산업화 이전의 삶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새로운 사회가 구성될 것이라 전망할 수 있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에너지·자원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지역 중심의 공동체와 자립성을 복원하며, 생산과 소비가 아니라 관계와 지속 가능성을 삶의 핵심 가치로 삼는 새로운 사회'이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근대 이전의 불편함으로 회귀한, 산업화 이후 인류가 쌓아온 수많은 기술·문화·경제 시스템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사회'다.
물론 우리 삶의 필수적인,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선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온실가스 배출을 툰베리가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 단편 영화에서 그녀는 기술적 해결책 대신, 이미 제시된 자연 기반 기후 해결책인 숲, 맹그로브, 해초지와 같은 살아있는 생태계를 보호하고 복원하는 것을 이용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즉, '근본적으로 배출을 안하는 것'밖에 답이 없는 건 아니다.
따라서 '산업 붕괴' 수준이 될 것이라 전망하기보다는, '최소화' 수준이 될 것이라 전망하는 것이 적절하다.
물론 자연 보전을 하면 당연히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토지와 자원은 줄어들기에, 앞서 언급했던 가정들―철강·시멘트·플라스틱 사용 최소화 등―은 여전히 유효하다. 즉, 성공적으로 전환한다면 우리의 사회는 물질적 풍요를 상당부분 포기한 대신 관계와 지속 가능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를 포기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좀 더 현실적으로 상상해보자.
지금 우리에게 스마트폰, 노트북, 컴퓨터 같은 디지털 기기는 사실상 생필품이 되었다. 그런데 이 기기들은 단지 ‘전기만’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생산 과정에는 철강, 시멘트, 플라스틱 등 고탄소 공정이 필수적이며, 희귀금속 채굴이나 글로벌 물류도 빠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설령 인터넷을 구동하는 서버 전력이 100% 무탄소 전원(재생에너지, 원전 등)으로 전환된다 해도 디지털 기기의 제작 과정은 여전히 다량의 탄소를 수반한다.
대량 생산, 빠른 교체를 전제로 하는 지금의 전자기기 소비 체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이 된다. 그렇다면 과연 전환 후에도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하나씩 갖는 사회는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아마도 ‘필요한 사람에게만 제공되는’ 체제로 바뀔 것이다.
이러한 상상은 스마트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전제품, 일회용품, 의류, 심지어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대부분의 생활용품까지, 고탄소 공정이 얽힌 모든 물건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전환을 결정할 때에는 이를 선택할지 몰라도 전환이 이뤄지고 난 이후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없는데, 어떻게 쓰겠는가?
이제 옆으로 치워두었던 ‘국제 협력의 실패’나 ‘이해관계의 충돌’과 같은 익숙한 장애물들을 다시 정면으로 들여다보자. 물질적 풍요의 포기, 체제 수준의 전환, 그리고 기존 질서의 재조정은 단지 기술적 과제가 아니라, 철저히 정치적이고 심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는, 그리고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 선택지를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신의 지지율을 걸고, 눈앞의 경제성장을 희생하며 국민에게 불편과 불안을 감수하라고 말할 정상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니, 애초에 정말 그런 선택을 내려도 되는걸까?
앞서 언급했던:
선거 주기와 지지율, 여론에 휘둘리며 장기적 위기 앞에서는 언제나 미루기만 하는 정치,
탄소세, 기술 보조금, 시장 인센티브처럼 온건하고 점진적인 해법만이 반복되는 경제,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성장이라는 전제를 결코 의심하지 않는 시스템.
이 아래에서는, 이러한 해법은 아마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툰베리는 거듭 강조한다.
기성 질서의 정상적 기능을 전제로 해서는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고.
그녀가 말한 ‘시민 불복종’은 단지 제도 바깥에서의 저항이 아니라,
제도 정치가 기후 위기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직시하자는 요청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 시민으로서의 당신에게 묻고자 한다.
이 리스크는 과연 당신에게 감당 가능한 수준인가? 아니면, 또 다른 시각이 필요한가?
요약
답안:
기후 위기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흑과 백의 경계 위에 선 생존의 문제이며, 기후 대응은 더 이상 지식의 문제가 아닌 의지의 문제다.
풀이:
툰베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 시스템은 장기적 위기를 대응하기에 구조적으로 무력하며, 따라서 현 체제 내에서 가능한 전환을 실행함과 동시에, 그 체제 자체에 대한 변화 역시 요구된다.
그녀가 말하는 기후 대응은 탈화석연료, 식민주의·제국주의적 착취 체제의 구조적 전환, 그리고 이 모두를 아우르는 기후 대응 총동원론이다.
얻는 것:
기후 재난으로부터의 회피 가능성
공동체 중심의 관계적 삶으로의 전환
경제 성장 프레임에 대한 탈중심화
잃는 것:
지금까지의 물질 중심 생활양식 전반
‘편리함’과 ‘속도’를 전제로 한 현대 소비자적 삶의 구조
요구되는 것:
물질적 풍요 감축에 대한 사회적 합의
국제 협력의 실패, 이해관계 충돌이라는 정치적 난제의 해결
시작으로서의 시민 불복종과 연대, 그리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가치 재정립
다음 편에서는, ‘친환경’의 상징적 단체로 알려진 그린피스는 기후 변화 대응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그들의 방식이 갖는 한계와 가능성은 무엇인지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