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또는 허상
In an era defined by environmental imperatives and increasing regulatory scrutiny, sustainability has emerged as a key driver of corporate innovation and growth. What was once regarded as a moral obligation has now become a strategic necessity, shaping the way businesses operate and compete.
Many corporates are reimagining their supply chains, procurement policies and innovation strategies to align with a sustainability-conscious world. By integrating sustainability into their core operations, these companies are not only addressing global challenges, but also unlocking avenues for value creation and long-term growth.
- "Unlocking green growth: Sustainability as a key driver of corporate innovation", WEF, Jan 2025
‘지속 가능한 발전’은 기후 변화 시대의 대응 기조로서 자주 언급되며, 이에 따라 ‘지속 가능성’은 오늘날 기업 경영 전략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많은 기업들이 공급망, 조달, 혁신 전략을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목표에 맞추어 재편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기업 담론이 전제하는 그 성장 자체는 정말로 지속 가능한가?
1798년, 맬서스는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답했다.
그의 저서 《인구론》에서 제시한 논지는 두 가지 전제를 기반으로 한다.
첫째, 식량(즉, 후생)은 인간 생존에 필수적이다.
둘째, 남녀 간의 정열—즉 성적 충동—은 인간 본성상 불가피하며, 지금(1798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로 지속된다.
이 조건 아래에서 인구는 약 25년마다 두 배씩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만 증가한다. 맬서스의 비유대로라면, 인구는 1, 2, 4, 8, 16,…으로 늘어나는 데 반해 식량은 1, 2, 3, 4, 5,…에 머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구 증가 속도를 식량 생산이 따라잡지 못한다면, 인류는 빈곤과 기근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이른바 맬서스 트랩—기술 발전으로 삶의 질이 개선되면 인구가 증가하고, 다시 삶의 질이 악화되면서 인구가 줄어드는 순환—은 아일랜드 대기근과 같은 역사적 사례에서 자주 목격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프리츠 하버의 공중질소 고정법 발명으로 인공 질소 비료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인류에게 사실상 식량 공급의 절대적 제약은 사라졌고, 맬서스가 말한 ‘식량 한계론’은 무너졌다.
기술이, 불가능해 보였던 문제—식량 증산—를 해결하며 다시 성장의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따라서 맬서스의 “식량 한계론”은 결과적으로 틀리게 되었다.
다만 이것이 틀렸다는 사실이 곧 ‘기술혁신만 있으면 성장은 계속된다’라는 명제를
자동으로 완전한 참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 이후 전개된 여러 성장 이론들을 살펴보자.
경제 성장을 설명하는 초기 모형인 해로드–도마 성장이론은 저축률과 자본계수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지만, 기술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외생적인 성장만을 설명한다는 한계를 가졌다. 이 모형에서는 저축과 자본의 관계가 조금만 어긋나도 성장이 불안정해지며, 침체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었다. 즉, 성장은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며, 단순히 저축이나 자본을 늘린다고 해서 지속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경제는 장기적으로 성장해왔고, 이는 해로드–도마 모형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단순히 저축과 자본만으로는 불안정한 균형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인으로 앞서 설명했던 질소 비료 개발과 같은 ‘기술 진보’를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1956년 솔로우와 스완이 각각 발표한 경제 성장 모형은 기술 진보를 성장의 핵심 요인으로 도입했다. 솔로우–스완 모형에서 장기 성장률은 저축이나 자본 축적이 아니라,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 진보율에 의해 결정된다. 이 전환은 성장 논의에서 “기술”을 단순한 보조 요소가 아니라, 장기적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 동력으로 자리매김시켰다.
이 모델이 성립하기 위한 세 가지 가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람들은 버는 소득의 일정한 비율을 항상 저축한다.
둘째, 인구, 그리고 노동력의 증가율은 외부 조건에 의해 주어진다.—즉, 외생적으로 정해진다.
셋째, 산출은 자본과 노동의 함수로 결정되며, 이 함수는 규모에 대해 수확불변이다.
(*생산함수가 규모에 대해 수확불변이라는 말은, 생산량이 투입량의 비율적 증가에 따라 동일 비율로 증가한다는 뜻이다.)
이 세 가지 가정 아래, 이 모델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놓는다.
먼저, 한계 수확 체감이 존재하므로 한 사회의 자본량이 균형점에 미치지 못할 경우(즉, 현재 경제가 본래의 균형 수준보다 낮을 경우)에는 균형으로 수렴하려는 힘에 의해 빠른 속도의 성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균형에 도달하고 나면 자본 축적만으로는 추가적인 성장을 이끌어낼 원동력이 점차 소멸한다.
이러한 균제 상태(steady state)에 도달한 이후에는 오직 기술 수준의 향상, 즉 생산 함수 자체가 위로 이동하는 경우에만 성장이 지속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단순한 자본 축적만으로는 1인당 소득의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하기 어렵고, 장기 성장의 핵심 동력은 기술 진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 모형은 기술 발전을 단지 외부에서 주어지는 변수로만 취급했다. 성장의 가장 중요한 원인인 기술 진보가 어떻게 싹트고, 누가 그것을 이끌어내는지는 끝내 말해주지 못한 것이다.
또한 이 모형에 따르면, 자본이 부족한 나라일수록 자본의 효용이 크기 때문에 부유한 나라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결국에는 소득 격차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1970년대 이후 다수의 개발도상국이 성장 동력을 상실한 반면, 선진국은 여전히 성장세를 이어갔다는 점에서 단순한 수렴 가설은 성립하지 않았다. 이러한 괴리로 인해 이후 연구자들은 솔로우 모형의 기본 틀을 확장·수정하며, 기술 발전을 경제 내부의 메커니즘으로 설명하려는 내생적 성장 이론으로 나아가게 된다.
1980년대 이후 등장한 내생적 성장 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은 기술 발전을 단순히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투자·교육·연구개발(R&D)·지식 축적 같은 인간 활동의 산물로 설명했다. 지식과 혁신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경제 체제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기에 성장 역시 제도, 정책, 사회적 선택에 따라 더 오래 이어질 수도, 반대로 정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지식과 기술에 대한 투자가 곧 장기 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국가 간 성장률 격차가 왜 장기간 지속되는지 설명할 수 있으며, 동시에 정부의 교육 및 연구개발 정책이 성장의 핵심 동력이 된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수많은 이론들이 지금까지 축적되었음에도, 왜 우리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남겨놓는가? 기후 변화라는 변수 또한 단순한 ‘한계’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가?
식량 한계는 특정 재화의 절대적 부족 문제였다. 맬서스는 이 한계가 기술로는 극복되지 못할 것이라 보았지만, 앞서 말했듯 하버-보슈법의 개발로 인해 결국 부정되었다.
반면 기후 변화는 성격이 다르다. 경제 활동 전체가 배출하는 부산물이 기후 시스템의 안정성을 흔들고, 그 결과 다시 경제 시스템에 되돌아오는 형태의 문제다. 따라서 이를 완화하기 위한 기술의 역할은 특정 재화의 더 많은 생산이 아니라 부산물의 배출을 줄이는 것이어야 한다.
두 문제의 가장 큰 차이는 시간적 제약의 유무다. 식량 한계론은 1798년에 제기되었고, 20세기에 이르러 해결되었다. 물론 더 일찍 해결되었다면 인류의 발전 속도와 생존 가능성은 높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늦게 해결되더라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 자체”가 즉각적으로 위협받지는 않았다.
우리가 맞닥뜨린 기후 변화라는 문제는 시간적 제약을 갖는다. 여기서 말하는 시간적 제약이란, 경제 시스템이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온실가스라는 부산물을 배출하고 있으며, 이 부산물이 대기 중에 머물러 지속적으로 축적됨으로써 문제의 정도가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데서 비롯되는 속성이다.
이 축적은 단순히 환경적 불편을 넘어선다. 일정 임계점을 넘어설 경우,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 자체—예컨대 안정적인 기후를 전제로 한 농업, 산업, 도시 생활—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후 변화는 늦게 해결한다고 해서 단순히 발전의 기회를 놓치는 문제가 아니라, 존속 자체를 위협하는 문제다.
그렇다고 이 축적을 막는 일이 반드시 ‘더 우월한 문명’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기후 변화 대응은 위험을 줄이고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게 하지만, 그것이 곧 인류가 더 높은 수준의 풍요와 진보를 자동으로 성취한다는 보장은 아니다. 대응은 어디까지나 리스크 관리이고, 생존 조건의 유지에 가깝다.
따라서 기후 변화 문제의 본질은 단순한 기술 과제나 성장의 지연이 아니다. 축적의 속성 때문에 대응 시점을 늦출수록 상황은 기하급수적으로 악화되고, 이 축적이 임계점을 지나면 되돌릴 수조차 없다. 바로 이 때문에 기후 변화의 시간적 제약은 우리에게 다른 문제들과 구별되는 실존적 성격의 리스크로서 다가오는 것이다.
전통적 성장 이론은 기후 변수를 적절히 설명하지 못한다. 이는 해당 이론들이 경제 성장 경로와 장기적 생활수준 결정 요인에 주된 관심을 두었고, 환경 제약을 단순한 외부효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반면 기후 변화는 전 지구적이며 비가역적인 성격을 지니기에 자연스레 이러한 분석 틀 밖에 놓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통적 성장 이론이 기후 리스크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곧장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하는 것 역시 성급하다.
오히려 ‘어떤 조건이 충족된다면 기후 리스크 속에서도 성장이 가능할 수 있는가’를 탐색하고, 그 조건들의 현실성을 검토해보아야만 비로소 성장이 지속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성장의 지속 가능성을 묻는다는 것은 곧 성장을 전제로 한 자본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묻는 것이며, 따라서 이는 듣는 사람에 따라 인류 문명의 존속 가능성에 대한 질문일 수도, 또 현 체제를 넘어서는 전환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논의를 한 편의 글로 다 담을 수는 없다. 다만 이 자리에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기후 변화 속에서 작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무엇인지 간단히 짚어보자.
‘지속 가능한 성장’은 흔히 ‘지속 가능한 발전’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을 살짝 변주해 정의하자면, “미래 세대가 그들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기반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현 세대의 요구를 충족하는 형태의 성장”이라 할 수 있다.
기후 변화라는 맥락에서 이 정의를 적용하면, 결국 “부산물(온실가스)의 배출을 줄이는 기술이, 제한된 시간 안에, 현 세대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환원된다.
이를 다시 나누면 세 가지 조건으로 정리할 수 있다.
기술적 가능성: 해당 기술이 실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적 타당성: 기술이 충분히 빠른 시점에 작동해야 한다. 적어도 '기후 대응'은 수 세대 뒤의 문제가 아니라 2030년, 2050년 같은 명확한 시간표를 가진 현재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세대 간 정의: 기술이 미래 세대의 기반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 세대의 필요를 충족해야 한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면 ‘완전한 의미의 지속 가능성’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기술적 해법이 부재하다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보완되어야 하고, 그마저 불가능하다면 해당 영역은 지속 불가능하다. 기술이 가능하더라도 제때 구현되지 못한다면 실질적으로 무의미하며, 기술이 제시간에 작동한다 해도 미래 세대를 희생시킨다면 역시 해답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특정 영역에서 이러한 조건들을 만족하는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영역은 현재로서는 지속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만약 그 영역이 현 체제 유지에 필수적이라면, 체제 자체의 존속 가능성 또한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 결론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기술적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합의가 가능하더라도, 그것이 제 시간에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전망과 가치관에 따라 이견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단순한 조건 논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몇 가지 보강해야 할 지점 역시 존재한다.
첫째, ‘지속 가능성’의 정의 자체가 모호하다. “미래 세대의 기반을 해치지 않는다”는 말은 직관적으로 이해되지만, 그 기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생태적 한계인지, 경제적 기회인지, 혹은 사회적 제도인지—관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둘째, ‘제 시간에 작동한다’는 조건은 단순히 기술 성숙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기술이 원리적으로 가능하다 해도, 제도적 장치와 정치적 합의, 경제적 유인 체계가 함께 마련되지 않으면 현실에서 구현되기 어렵다. 기술적 가능성과 사회적 조건은 결코 분리해서 볼 수 없다.
셋째, 현실은 ‘조건이 모두 충족되면 지속 가능, 하나라도 빠지면 불가능’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불완전한 해법이더라도 일정 기간 체제를 유지하거나, 특정 지역·계층에 한정된 부분적 지속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전체 체제는 위기에 놓이면서도, 리스크를 외부로 전가하거나 전환하는 방식으로 존속할 수 있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논한다는 것은 결국 기술적 성숙 여부를 넘어, 어떤 사회를 어떤 정의의 원칙 위에서 유지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가치 판단의 문제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세대 간 형평성, 제도적 합의, 그리고 불평등의 외부화와 같은 요소들이 얽혀 있다.
다만 지금 이 자리에서 이 모든 문제를 다룰 수는 없다. 우선은 단순화된 논리 틀을 통해 각 산업별 조건들을 점검하고, 그 과정에서 지속 가능성이 실제로 성립할 수 있는지, 혹은 어디서 한계에 부딪힐 수 있는지를 드러내고자 한다. 결국 거시적 가치 논의 또한 이런 구체적 조건 검토 위에서만 설득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 편에서는, 이미 다룬 에너지 영역 외의 다른 산업들에 대해서도 간단히 검토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