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전기를 다룰 것인가

전력 계통에 대한 이야기

by 강진영

기후 변화 대응에 대해 논할 때, 특히 에너지에 있어

우리는 대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발전 방식으로의 전환”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후 변화’—즉, 가파른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이 초래하는 광범위한 위험—의 주된 원인은 결국 온실가스 배출이고, 발전 방식 중에서는 그것이 기존 화석연료 기반 화력 발전이기 때문이다.


고로 발전원 전환이 논의의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다. 다만, 그것이 곧 전부는 아니다.


지난 두 편 간 우리는 태양광과 풍력을 비롯한 발전원들의 구조적 장점과 한계를 살펴봤다.

특히,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경우, 균등화 발전단가(LCOE) 상으로 꽤 매력적인 수치가 나오더라도 ESS, 송전망 확충, 계통 안정화 같은 보완 인프라의 비용과 제약까지 고려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점도 확인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러한 요소를 ‘발전원 간 장단점’의 관점에서 다루어 왔다.

다시 말하자면, 아직까지는 이들을 '발전원의 문제'로서만 정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은 언제나 시스템의 조건 안에서 실현된다.

우리가 전력 계통 전반에 대해 다루고자 하는 이유는

이러한 문제를 발전원 차원의 문제로서도, 그리고 시스템 차원의 문제로서도 바라보고자 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건 발전 기술 간의 우열을 겨루는 카드게임이 아니다.

'에너지 시스템'이라는 게임판 위에서, 발전원이라는 카드를 뽑는 것만이 우리가 논할 수 있는 것의 전부일 리 없다.


물론, 카드 뽑기 외의 선택지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더 나은 해법이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 선택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더 넓고 유연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전기는 흐르고, 연결되고, 통제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전기는 어떻게 흐르고, 연결되고, 통제되어 왔을까?


우리는 전기를 어떻게 다루어 왔는가


전력 계통(Power System)은 전력을 경제적으로 생산하고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시스템을 의미하며,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 계통과 이를 보내는 송배전 계통으로 구성된다. 여기서는 전통적인 전력 계통 공학의 개론 수준 내용을 바탕으로, 현대 전력 시스템이 직면한 요구와, 이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조건들에 대해 살펴보자.


전력 계통 산업은 국가 경제 활동을 원활히 하는 데 필수적인 기간 산업이다. 특히 ‘전력 중단’은 막대한 사회·경제적 손실로 직결되므로, 전력 계통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


안정적인 전력 계통 운영을 위해서는 주파수와 전압이라는 두 핵심 변수를 모두 관리해야 한다.


주파수는 전력 계통 전체의 발전과 소비 균형을 나타내며, 변동 시 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광역적 특성을 가진다. 간단히 말해, 전력 계통에서는 발전량과 소비량(부하)이 항상 같아야 한다. 발전량이 소비량보다 높다면 주파수가 상승해 과잉 전력으로 인한 시스템 과부하 위험이 생길 수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 주파수가 하락해 전력 부족으로 인한 시스템 불안정, 정전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앞서 광역적이라 언급했던 것과 같이, 주파수는 전력 계통 내의 모든 발전기와 부하에 동시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즉, 특정 지역에서 발전량과 소비량의 불균형이 발생하면 그 영향은 전력 계통 전체로 빠르게 확산되어 전체 주파수가 변동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중앙 급전소(전력거래소)에서는 전력 계통 전체의 발전량과 부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제어하여 주파수를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전압은 전력 계통 내 각 지점에서의 전력 품질을 나타내며, 해당 지역의 부하와 선로 특성에 따라 변동하는 국지적인 특성을 가진다. 전압이 너무 높으면 전기 설비에 손상을 줄 수 있고, 절연 파괴의 위험이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는 전력 기기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전압의 경우 주파수처럼 광역적인 특성을 가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전압 관리의 경우 주로 해당 지역의 배전망이나 변전소에서 변압기 탭 조정, 무효전력 보상 장치(예: 콘덴서) 등을 사용하여 이루어진다.


또한, 근본적으로 전기는 저장할 수 없다. 따라서 전력 계통은 항상, 그리고 실시간으로 발전량과 소비량(부하)을 정확히 일치시켜야 한다. 따라서 전력 시스템을 관리하는 측은 예측의 정확성과 빠른 제어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그리고 갑작스러운 발전기 고장이나 수요 증가에 대비한 예비 발전력을 일정량 확보해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전력 계통의 구성인 발전 계통과 송배전 계통 역시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설계되어 왔다.


화석 연료의 온실가스 배출이 문제가 되기 전까지의 전통적인 발전 계통 구성은 다음과 같다.

수력: 값이 싸나 용량이 적어 첨두 부하 담당, 즉 전력 사용량이 최대가 될 때 투입되는 일종의 예비 발전력

가스: 기동 및 출력 조절이 용이하여 전력수급 조절용으로 이용

유류: 가스와 비슷하게 기동성이 좋고 출력 조절이 비교적 용이하여 중간 부하 담당은 물론, 피크 부하 시나 비상 시에 활용되기도 했으나 발전 단가가 원유 가격에 크게 의존

석탄 & 원자력: 발전 단가 저렴, 변동성이 적기 때문에 최소한의 전력 수요인 기저 부하 담당

이렇게 만든 전기는 송배전 계통을 통해 전력을 직접 소비하는 수용가까지 보내져야 한다.


송배전 계통은 송전선, 배전선, 변전소를 주축으로 차단기, 피뢰기, 전압 조정용 콘덴서와 같은 보조 장치들로 구성된다.


송전선로는 발전소에서 생산된 대량의 전력을 고전압으로 장거리 전송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 실제 운용에서는 한 상(phase)을 구성할 때 두 개 이상의 도체로 묶은 복도체(bundle conductor) 방식을 사용한다. (일상적으로는 "한 상 당 두 개 이상의 전선"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엄밀히는 "한 상의 전선을 여러 도체가 구성하는 구조"가 정확하다.)


복도체 방식을 채택하는 주요 이유를 잠깐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도체를 여러 가닥으로 구성하면 전체 단면적이 증가하여 더 많은 전류를 전달할 수 있으며, 전력선의 등가 반지름이 커져 인덕턴스가 줄어든다. 이에 따라 선로의 유도 리액턴스(inductive reactance)가 감소하고, 장거리 송전 시 발생하는 전압 강하가 완화된다. 이는 곧 송전 용량과 효율 모두가 향상된다는 뜻이다.

또한, 장거리 송전에서는 기계적 안정성 또한 중요한 변수이다. 복도체 방식은 여러 가닥의 도체가 장력을 분산시키므로, 강풍이나 착빙과 같은 외부 환경에 대해 보다 견고한 구조적 안정성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고전압이 흐르는 전선 주변의 공기는 절연 성질을 잃고 방전되는 코로나(corona) 현상을 일으키는데, 이는 전력 손실, 통신장애, 소음 등의 문제를 유발한다. 복도체는 도체 간 거리를 확보하고 표면 전위 경도를 낮춤으로써 코로나 발생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이에 따른 손실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그럼에도 왜 고전압으로 송전할까? 같은 전력을 보낼 때 전압을 높이면 전류를 줄일 수 있어(P=VI) 송전 손실(P=I²R)을 크게 줄인다. 반대로, 같은 전류를 유지하면 더 많은 전력을 실어 나를 수 있으므로 회선당 송전 용량이 증가한다.


대한민국의 송전계통의 공칭전압은 1935년엔 154kV, 1975년에는 354kV, 2000년대 이후로는 765kV로 점차 증가해왔다. 이는 전력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산업화 과정에서도 안정적인 대규모 전력 공급이 가능하게 만들었고, 특히 복도체 방식은 코로나 억제, 유도 리액턴스 감소, 기계적 안정성 확보를 통해 고전압 송전망을 안정적·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한 기반 기술이었다.


다만, 송전된 전기를 수용가 인근의 변전소에서 적정 전압으로 낮춰 개별 소비자에게 최종적으로 공급하는 배전선로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배전선로는 저전압·근거리 전송으로, 전력량과 전압이 송전선로에 비해 훨씬 낮다. 따라서 복도체의 구조적 장점이 크게 필요하지 않고, 대신 구조가 단순해 초기 설치비와 시공 복잡도가 줄어드는 단도체 방식이 이 구간에서는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송전선로 단계에서는 고전압으로 전송을 하고, 배전선로 단계에서는 저전압으로 전송할 수 있었을까?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변전소다. 변전소는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송전받아 전압을 조정하는 시설로, 발전소 인근에서는 전압을 높여(승압) 손실을 줄이고, 수요지 인근에서는 전압을 낮춰(강압)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전력 계통은 지금까지 석탄·원자력 기반의 기저 부하, 가스·유류 기반의 출력 조절, 수력 기반의 첨두 대응으로 구성된 발전 계통과 송전선–변전소–배전선으로 이어지는 송배전 계통을 바탕으로 운영되어 왔다. 특히 석탄·원자력의 안정적 기저 부하와 가스·유류의 유연한 조정력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가능하게 했으며, 복도체 기반 송전선로는 변전소 단계에서의 고전압 승압을 가능하게 하여 산업화 과정에서 폭증한 전력 수요를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게 했다.


기후 변화라는 새로운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바뀐 조건, 어려워진 게임


"에너지부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5년간 104기가와트(GW)의 기저부하 전력이 폐쇄되면서 2030년 전력 부족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개발 중인 태양광·풍력 발전 설비 209GW가 완공되더라도 전력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일반 기상 조건에서 미국인들이 2030년 평균 817.7시간(34일) 동안 정전을 겪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폭염이나 폭풍 등 극한 기상 상황에서는 정전 기간이 최대 55일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했다. 발전소 가동 중단이 없는 상황에서도 수요 증가만으로 269.9시간(11일)의 정전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때문에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재생에너지가 석탄·가스 발전을 대체하는 미국 중부 지역에서 전력 부족 현상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 "美 전력망 '대정전 카운트다운'…재생에너지 역효과 현실화 우려", 글로벌이코노믹, 2025


앞서 말했듯, ‘기후 변화’의 주된 원인 중 하나는 화석연료 기반의 화력 발전이다.

그리고 기후 대응의 공통 구호인 ‘탈석탄’에서 말하는 ‘석탄’은 곧 기저 부하 발전원 중 하나다.


에너지 전환의 맥락에서 재생에너지는 석탄·가스·유류 같은 화석연료를 대체할 카드로 제시된다.

그러나 안정적인 출력을 제공하는 석탄과, 출력 조절이 용이한 가스·유류를,

변동성이 크고 단독으로는 안정적이지 않으며 제어도 까다로운 태양광과 풍력이 과연 대체할 수 있을까?


전력 계통은 “전력 중단은 곧 막대한 사회·경제적 손실”이라는 전제와

전기의 비저장성이라는 고질적 특성 때문에, 수요 변동을 예측하고 그에 맞춰 공급을 조절해 왔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여기에 공급 측 변동성이라는 새로운 난제를 추가한다.


전통적으로는 안정적인 발전원 아래에서 수요 변동을 예측하고 공급을 조절했다.

전력 수요가 낮을 때는 석탄·원자력 같은 기저 부하원을 가동하고,

중간 변동 구간에서는 가스·유류 발전을 투입해 조정하며,

수요가 최고조에 달할 때는 수력 발전까지 동원하면 됐다.


하지만 여기서 석탄이 완전히 빠지고, 그 자리를 단순히 태양광·풍력 같은 가변형 재생에너지로 채운다면 어떨까? 기저 부하가 낮아지는 것은 물론, 수요가 가장 높을 때 전기가 충분히 생산되지 않으면 막대한 사회·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수요가 낮을 때 전기가 과잉 생산되면 상당량을 버려야 한다.


가변형 재생에너지의 가장 큰 한계는 변동성이다. 이는 재생에너지가 ‘열등한 기술’이어서가 아니라, 대체재로서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이 변동성을 해소하지 못하면 재생에너지는 결코 기대 받았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그럴 경우 원자력이 기저 부하뿐 아니라 출력 조절 역할까지 떠맡아야 하는데,

원자력은 본래 출력 조절에 적합하지 않은 발전원이다.


따라서 재생에너지가 아무리 저렴해지고 효율적이게 되더라도,

변동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대안’에 머물 수밖에 없다.


-까지가 본래 우리가 해왔던,

‘재생에너지가 계통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을 발전원 간 장단점의 관점에서 다룬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발전원 차원이 아니라 전력 시스템 전체의 차원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우리는 전기를 어떻게 다루고자 하는가


전기를 저장할 수 없다면, 출력이 불안정한 재생에너지는 기존 전력원을 대체할 수 없다. 이는 우리가 오랫동안 전제해왔던, ‘전기는 저장할 수 없다’는 가정이 유지될 때의 이야기다.


그러나 만약 전기가 저장 가능하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재생에너지를 논할 때 ESS(에너지 저장 시스템), 수소 저장, 양수 발전 등 보완 기술이 항상 함께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저장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고 실현된다면, 이론적으로 재생에너지도 기존 전력원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언급했듯, 재생에너지가 전력 시스템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핵심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기저 부하 공급자출력 조절자다.


먼저 재생에너지가 기저 부하 역할을 수행하려면, 재생에너지의 간헐적인 출력을 대규모·장시간 저장하여 필요할 때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수소 저장은 매우 유리하다. 수소는 에너지를 몇 주, 심지어 몇 달 동안 저장할 수 있으며, 필요할 때 이를 연료로 변환해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양수 발전의 경우에도 물을 높은 위치에 저장해두었다가 필요할 때 발전에 활용함으로써 에너지를 대규모로 저장하는 것이 가능하며, 수일에서 수주 단위의 장주기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가 출력 조절 역할을 수행하려면, 무엇보다 수요 변동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ESS, 특히 배터리 기반 시스템은 충·방전 속도가 매우 빨라 수요 급증이나 주파수 불안정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양수 발전 역시 비교적 빠른 기동 및 정지 시간이 강점이다. 발전량 조절이 용이하므로, 실시간 전력 균형 조절에도 활용 가능하다.


물론 이들이 현재 완전한 해답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부족하다고 답하고 싶다.


단순히 보자면 먼저 ESS, 수소 저장, 양수 발전은 그 자체로 각각의 제약이 있다.


ESS는 태양광처럼 설치가 비교적 유연하고, 배터리 가격 하락으로 경제성이 개선되면서 현재 에너지 저장 분야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되는 기술이다. 그러나 안정성 문제와 핵심 자원 조달 불확실성이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수소 저장은 장기 저장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술 성숙도와 변환 효율이 낮고 생산·저장·운송 과정의 비용 부담이 커 상용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양수 발전은 기술 성숙도와 효율이 높아 대규모 장주기 저장에 유리하나, 적합한 지형이 제한적이고 환경·입지 규제가 까다로워 대규모 확장이 쉽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보자.

저장 장치의 성능과는 별개로, 이들 역시 발전원과 마찬가지로 전력 계통에 포함되어야 한다.


ESS나 소규모 태양광과 같은 분산형 전원이 늘어난다는 것은, 각지에서 다양한 전원이 계통과 전력을 양방향으로 주고받게 된다는 의미다. 단순히 송전만 하거나 수전만 하는 구조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전력을 보내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구조로 바뀌는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 기존 전력망은 중앙집중식 대규모 발전소에서 소비자로 전력이 일방향 흐르도록 설계되었다. 따라서 재생에너지와 이를 보조하는 설비가 확대되면, 기존 체계와는 다른 운용 방식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물리적인 송·배전망 확충뿐만 아니라, 보호계전과 전압조정 장치 같은 기술적 보완도 필수적이다.


태양광과 ESS를 예로 들어보면, 과거의 태양광 전용 ESS는 충전 전원이 오직 태양광 발전뿐었기에 충·방전이 날씨와 시간에 크게 좌우되었다. 반면, 배전망 연계 ESS는 계통 전체에 독립된 전력원, 즉 계통 자원으로 편입되어 시간과 관계없이 충·방전이 가능해져 실질적인 간헐성 대안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계통 자원으로 편입된 ESS는 충·방전 전력 모두가 전력망을 거치기 때문에, 송·배전망 용량이 부족하면 운용이 제약된다.


또한 태양광 발전과 같은 재생에너지는 근본적으로 제주처럼 바람이 강하거나 일사량이 좋은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전력 수요는 도시와 산업단지에 몰려 있으므로, 생산된 전력을 소비지까지 안정적으로 보낼 송전망 용량이 부족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잉여 전력을 다른 지역으로 효율적으로 이송하지 못하면 재생에너지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이를 보조하는 ESS와 같은 저장 장치의 효용성도 함께 낮아진다.


결국 송·배전망 확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ESS를 비롯한 에너지 저장 장치는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없다. 또한 각지에 다양한 전원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일방향과 양방향의 문제가 아닌, 에너지 수요와 공급 간 관리 또한 어려워짐을 뜻한다. 따라서 기술적 보완은 기초적인 보호계전과 전압조정 장치 등을 넘어 운영 체계적인 차원까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들이 이 위에 얹어지고 있을까?


앞서 언급했던 '기존 체계와는 다른 운용 방식'이라는 말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먼저, 재생에너지의 본질적 특성을 최대한 살리는 방법인 분산형 전력망을 떠올릴 수 있다. 기존 전력망이 대규모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장거리 송전으로 수요지에 보내는 중앙집중식 구조를 전제로 설계되었다면, 분산형 전력망은 전력을 지역 내에서 생산·저장·소비·거래함으로써 장거리 송전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활용률을 높인다.


발전원이 소비지 가까이에 위치하므로 초고압 장거리 송전의 필요성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대규모 송전망의 규모와 중요성은 감소하는 반면, 배전망이나 중압 송전망의 비중은 커질 수 있다. 이는 복도체 방식의 전선 사용 빈도를 줄여 새로 전선을 설치할 때 초기 설치비와 시공 복잡도를 어느정도 완화하고, 복도체 특유의 꼬임 현상·소도체 충돌·페란티 현상과 같은 문제 발생 가능성도 낮출 수 있다.


그러나 지역별 전력 생산과 소비의 실시간 균형을 맞추려면 양방향 전력 흐름 제어, 계통 보호계전, 전압 조정 등 추가적인 인프라가 필요하다. 또한 분산형 자원이 늘어날수록 데이터 수집·제어 시스템과 표준화된 통신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다. 더불어 재생에너지 자원이 지역별로 고르게 분포하지 않기 때문에, 대규모 송전 인프라가 완전히 불필요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접근 방식으로는, 분산형 전원을 개별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하나의 통합된 발전소처럼 다루는 가상발전소(VPP, Virtual Power Plant)가 있다. VPP는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태양광, 풍력, ESS, 전기차 등 흩어져 있는 다양한 에너지 자원을 연결하고, 이를 실시간으로 통합·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운영 방식에 따라 VPP는 세 가지로 구분된다. 태양광·풍력과 같은 발전 자원을 묶어 운영하는 공급형 VPP, 수요반응(DR) 자원을 통해 부하를 조절하는 수요형 VPP, 그리고 양쪽을 결합한 융합형 VPP다. 공급형 VPP는 분산형 발전 자원을 전통 발전소처럼 구동할 수 있게 하며, 수요형 VPP는 전력 수요가 높을 때 부하를 줄이거나 저장 전력을 방출하고, 수요가 낮을 때 잉여 전력을 저장하는 방식으로 전력 수급을 조율한다.


그러나 VPP의 성능은 데이터 수집·분석 속도, 통신 인프라의 안정성, 참여 자원의 제어 가능성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실효성을 높이려면 이러한 기반 기술의 고도화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VPP의 전략적 가치는 커지고 있으며, 미국·유럽·호주 등에서는 이미 상용 규모의 VPP가 전력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 역시 ‘소규모 전력중개시장’이라는 형태로 VPP를 운영하며 실증과 확산을 병행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대규모 송전 인프라가 여전히 필요하다면, 재생에너지도 장거리 송전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기술이 초고압직류송전(HVDC, High Voltage Direct Current)이다.


HVDC는 교류(AC)가 아닌 직류(DC)로 전력을 보내는 방식이다. 같은 전압이라도 직류 송전은 교류보다 손실이 적어, 장거리·대용량 송전에 특히 유리하다. 앞서 복도체 방식이 송전선 한 상을 여러 도체로 묶어 전류 용량을 높이고 손실을 줄이는 물리적 구조의 개선이었다면, HVDC는 송전 전압과 전류의 파형 자체를 직류로 바꿔 손실을 줄이는 전기적 방식의 전환이다. 두 접근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오히려 HVDC의 고전압·장거리 송전 특성상 복도체 구성이 함께 적용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 기술은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에서 생산한 전력을 내륙 수요지로 보내거나, 국가 간 전력망을 연결하는 데 특히 강점을 발휘한다. 반면, 변환소 구축과 초기 투자비용이 크고, 기존 교류망과의 호환을 고려한 연계 설계가 필수라는 점은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현재 유럽은 북해 해상풍력 전력을 대륙으로 이송하기 위해 다수의 HVDC 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중국도 서부 수력·태양광 자원을 동부 산업지대에 공급하기 위해 초장거리 HVDC 노선을 가동하고 있다. 한국 역시 동해권 해상풍력과 주요 재생에너지 발전 단지를 수도권 부하 중심지와 연결하는 방안에서 HVDC 도입을 검토 중이다.


재생에너지가 진정으로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의 대체재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대안들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중앙집중형 전력망과 분산형 전력망이 혼재될 수 있는 현실에서 분산형 전력망의 확대, HVDC 기반 대용량 송전, 그리고 이를 조정하는 VPP와 같은 제어 시스템은 모두, 재생에너지와 저장원이 기존 시스템에 안정적으로 편입되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다.


세 편의 전력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앞서 말했듯, 기술은 언제나 시스템의 조건 안에서 실현된다.

전력 계통 또한 기술에 의해 구성된 시스템이기에, 시스템의 조건을 바꾸는 것 역시 기술로 가능했다.

재생에너지는 기존 조건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비저장성'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카드들이 필요했고,

그 조건을 바꾼 이후에도 기존 시스템에 편입되려면 몇 가지 장치들이 추가되어야 했다.


전력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다룬 11편에서는 이런 말로 시작했다.


이 세 발언은 대중 담론 속 에너지 논쟁의 이분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재생에너지는 이상적이지만 비싸고, 원전은 현실적이지만 위험하다는 식이다.
각 진영은 상대의 약점을 부각시키며, 상대 주장을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한다.


이제는 같은 말이라도, 조금 다르게 풀어볼 수 있겠다.


재생에너지를 주력 에너지원으로 보는 관점과, 보조 에너지원으로 한정하는 관점은

재생에너지가 기저 전원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다.


앞서 언급한 모든 조치, 특히 에너지 저장 기술이 기술적으로 충분히 성숙한다면,

재생에너지는 원전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재생에너지는 이상적이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를 보조 전원으로만 운용한다고 해도 이러한 조치들은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주력 전원으로 삼을 때와 비교하면 요구되는 스케일이 훨씬 크기 때문에,

주력 전원으로 삼고, 보다 큰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더 많은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재생에너지는 비쌀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원전은 여전히 ‘현실적’일 수 있다.

전통적인 전력 계통과의 궁합이 좋고, 사용후핵연료 처리나 해체 비용까지 고려한 총비용(TCO) 기준으로 보더라도 현재로서는 매우 높은 경제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세 편 동안의 설명을 모아보면, 이제는 이 명제의 반대면도 함께 볼 수 있다.


재생에너지가 반드시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금속 자원에 대한 의존, 자원 편재 문제, 그리고 범위를 확대했을 때 드러나는

기후 변화 대응 수단으로서의 기술 생태계의 미성숙, 생태계와의 충돌 가능성 등은 그 한계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재생에너지는 앞으로도 계속 비쌀까?

ESS의 핵심 재원인 배터리는 최근 급격하게 가격이 하락하고 있으며,

태양광과 같은 기술은 경험 곡선 측면에서 가격 하락에 유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로 의존성까지 고려했을 때, 현재의 가격만을 이유로 이를 비싼 선택지로 치부해야 할까?


반대로, 원전은 앞으로도 현실적일까?

원전은 느리다. 그리고 모든 문제가 비용으로 환산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사용후핵연료 포화 문제가 큰 리스크로 남아 있고,

이에 따른 부지 확보, 주민 반대 등은 단순한 경제성 이상의 난관이다.

현실성을 오직 비용의 관점에서만 판단하는 것은 오히려 비현실적일 수 있다.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같은 기술이 이상이 될 수도, 또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기준을 결정하는 건 기술이 아니다.

기술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다만 단지 그뿐, 실제로 '하는' 건 우리다.


우리는 발전원이라는 미시적 관점에서 출발해,

이제는 전력 계통이라는 시스템적 관점으로 시선을 넓혀왔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술의 언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서술되는

보다 거시적인 시스템의 이야기로 전환할 때다.


다음 편부터는, “지속 가능한 성장은 과연 가능한가?”라는 질문 아래서 시작하자.


요약


기존 전력 계통 구조

전력 계통: 발전 계통 + 송배전 계통.

안정성 변수: 주파수(광역)와 전압(국지).

발전원 역할 분담: 석탄·원자력 (기저 부하), 가스·유류(중간 부하/조정), 수력(첨두 부하)

송전: 고전압·복도체 방식 (송전 효율 및 용량·유도리액턴스·코로나 현상 억제·기계적 안정성 때문).

변전소를 통한 승압·강압으로 송전·배전 병행.


조건 변화와 도전 과제

기후 대응으로 석탄(기저 부하) 제외 → 변동성 높은 태양광·풍력이 대체 가능?에 대한 의문.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은 ‘열등함’이 아니라 시스템 조건 미충족의 결과.

변동성 해결 없이는 재생에너지는 주력 전원이 될 수 없음.


저장·보완 기술의 가능성과 제약

ESS, 수소 저장, 양수 발전: 각기 장점과 한계(경제성·자원·입지).

저장 장치도 전력 계통에 통합되어야 함.

분산형 전원 확대 → 양방향 전력 흐름, 배전망·보호계전·전압조정·통신 인프라 필요.

송전망 부족 시 잉여 전력·저장 장치 효용 저하.


새로운 운용 방식과 인프라 변화

분산형 전력망: 지역 내 생산·저장·소비·거래, 장거리 송전 의존도 감소.

VPP(가상발전소): ICT로 분산 자원 통합·제어(공급형·수요형·융합형).

HVDC: 장거리·대용량 송전의 핵심 기술, 해상풍력·국가간 전력망 연결에 유리.

중앙집중·분산형 전력망 혼재, HVDC, VPP가 함께 작동해야 재생에너지 편입 가능.


+

재생에너지 주력 vs 보조 전원 논쟁은 ‘기저 전원 가능 여부’ 인식 차이.

저장·보완 기술 성숙 시 재생에너지도 주력 가능, 그러나 그 규모는 비용 증가와 직결.

원전은 전통적 계통과 궁합·경제성은 높지만, 속도·사용후핵연료 문제 등 비경제적 리스크 존재.

이상과 현실은 기준에 따라 달라지며, 기술은 가능성을 줄 뿐 선택은 인간의 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