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위한, 먹고 사는 방식.
농식품 분야 또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꽤 많이 배출한다.
2024년 세계은행이 발표한 보고서 "Recipe for a Livable Planet:Achieving Net Zero Emissions in the Agrifood System"에 따르면, 농식품 분야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물론 연구마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전세계 차원의 농식품 공급 체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농식품 분야가 온실가스를 적지 않게 배출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 농식품 분야는, 이와 같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타 분야와 달리 생태계와 토양을 통해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함으로써 기후 변화 대응에 추가적으로 기여할 수도 있다는 특이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위 보고서에서는 농식품 분야에 대하여 "The agrifood system is a huge, untapped source of low-cost climate change action"라 언급하기도 했다.
조금 추상적인가? 그러면 이 위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얹어보자.
2004년에 발간된 일본 농림수산성 환경보전형 농업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농지에 퇴비, 볏짚 등 유기물을 사용할 경우 화학비료만 사용했을 때보다 연간 탄소저장량이 약 220만 t 증가할 수 있다고 한다.
이때 화학비료는 주로 질소비료를 의미한다. IPCC나 FAO에 따르면 농업 온실가스의 약 40% 이상은 질소비료 사용에서 기인하는데, 암모니아 합성 공정 중 많은 화석연료가 사용되는 것도 많은 이유들 중 하나로 칠 수 있겠으나 직접적으로는 비료에 들어있는 질소가 토양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아산화질소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아산화질소의 경우 가장 유명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보다 약 270배 강한 온실 효과를 지닌 기체다.
따라서 여기서는, 농지에 유기물을 사용하는 편이 화학비료만 사용하는 것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줄일 수 있고 흡수량은 늘릴 수 있다고 판단해볼 수 있다. 이때 농지에 유기물을 사용하는, 즉 유기 농법을 채택하는 것은 기후 변화 대응에 "더 큰 기여"를 한다고 볼 수 있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만)
물론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이야기를 했으나, 이 사례가 모든 경우에서 성립하는 것 역시 아니다. 만일 화학 비료 등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면 생산량이 적어질 수 있고, 그렇다면 같은 양을 생산하는데 더 넓은 토지가 필요하니 이 과정에서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 산림을 태운다면 이는 오히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꼴이 되며, 더 넓은 토지를 사용함에 따라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면 이 또한 오히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꼴이 된다.
그렇다면 화학비료를 쓰냐/쓰지 않냐의 관점에서 벗어나 토양의 탄소저장량 자체를 늘리는 것에 주목해볼까?
무경운 농법이란 토양을 깊게 뒤집거나 갈아엎는 전통적 경운 방식 대신, 경운을 최소화하거나 하지 않는 농법을 통칭한다. 이 경우 토양 교란이 감소해 그 과정에서 질소 산화 및 분해 촉진으로 인한 아산화 질소 배출 증가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또한 무경운 환경에서는 유기물의 분해 속도가 더 느릴 수 있고, 토양 상층에 잔류 유기물이 쌓이며 탄소 저장량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경운 작업이 적을수록 트랙터 등 농업 기계 사용 빈도와 연료 소비가 줄어드니 추가적인 탄소 배출 감소가 가능하다.
한국 및 한국과 유사한 조건 아래에서의 연구들을 보면, 무경운 농법이 온실가스 저감 효과를 낸다는 증거가 꽤 존재한다. 고추의 무경운 재배를 연구한 2012년 연구나 무경운+로터리 처리와 경운+로터리 처리구를 비교한 국립농업과학원의 2014년 연구보고서, 무경운 및 녹비 재배 방식이 경작지에서 발생하는 아산화질소 배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2019년 보고서 역시 존재한다. 이러한 실증들은 무경운이 적절히 관리될 경우 상당한 감축 효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토양의 종류, 수분 조건, 온도, 작물 종류, 비료 관리 방식 등이 모두 변수로서 작용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몇몇 연구에 따르면, 무경운이 장기적으로 토양 내부의 공극 구조나 수분 분포를 바꿔 어떤 지점에서는 아산화질소 배출을 더 낼 수 있다는 관찰 역시 존재하고 벼농사와 같이 물이 잠기는 조건에서는 무경운 농법이 토양 내부의 통기성 등 물-공기 교환 구조를 바꿔 메탄 발생을 유리하게 할 수 있다는 보고 역시 존재한다. 즉, 필연적으로 토양 특성과 기후 조건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특정 농법이 해답이 아니라면 과연 어떻게 해야할까? 앞서 언급했던 WB의 보고서 내용을 다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고소득 국가는 농식품 부문에서 재생 에너지를 장려하고 더욱 지속가능한 식단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또한 자원을 활용해 저소득 및 중소득 국가가 저탄소 농식품 관행을 채택하도록 더 많은 지원을 제공한다.
중소득 국가는 가축과 쌀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을 줄이고, 건강한 토양에 투자하며, 식량 손실과 낭비를 줄인다.
저소득 국가에서 농식품 배출량의 절반 이상은 산림을 경작지나 목초지로 전환하는 데서 쓰인다. 산림을 보존하고 복원함으로서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몇 가지 지점들을 다시 점검해볼 수 있다.
농식품 부문 자체에서의 재생에너지 전환은 일부(농기계, 가공, 유통 단계)만 해당 가능하다. 대부분의 온실가스는 생산 단계에서 메탄과 아산화질소의 형태로 나오므로, 재생에너지 전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물론, 스마트팜과 같이 전기를 소모하는 형태의 농법 전환을 이룬다면 이 대책의 효과가 커질 수 있다.
여기서의 지속 가능한 식단이란 단순히 개인의 건강을 넘어서, 환경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영양적 균형을 충족하는 식단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바로 육류 소비 감소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직접적인 온실가스 배출 문제다. 가축, 특히 소와 같은 반추동물은 장내 발효 과정을 통해 메탄을 다량 배출한다. 메탄은 단기적으로 이산화탄소보다 수십 배 강력한 온실 효과를 가지는 기체다. 또한 축산업은 분뇨 관리, 사료 생산, 운송 과정에서도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따라서 육류 소비는 곧바로 농식품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과 연결된다.
둘째, 생산 체계의 구조적 비효율성이다. 가축은 사료로 공급받은 식물성 에너지의 일부만을 고기나 우유 형태로 전환한다. 예를 들어 곡물 100 단위가 주어졌을 때, 사람에게 직접 공급하면 거의 그대로 활용할 수 있지만, 이를 소나 돼지에게 먹이고 다시 고기로 섭취하면 열량·단백질 전환 효율이 크게 줄어든다. 이는 “에너지 전환 과정의 손실”이며, 결과적으로 같은 양의 식량을 얻기 위해 더 많은 경작지, 물, 비료, 에너지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즉, 인간이 직접 식물성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훨씬 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애써 키운 농작물을 동물에게 먹이고, 다시 그 동물을 도축해 섭취하는 과정은, 에너지와 자원 소모를 늘리고 온실가스를 더 배출시키는 “우회적인 식량 생산 방식”이다.
물론 이러한 이유로 육류 소비를 줄이자는 논리는 이론적으로 명쾌하지만,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식단은 단순한 영양학적 선택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소비자 선호 등과 같은 변수들이 깊이 얽혀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또한 저소득 국가에 대해 산림 보존을 추구하라는 말은 굉장히 이상적일 수 있다. 산림 보존이 온실가스 감축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라는 점은 사실이다. 산림은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거대한 탄소 흡수원으로서 기능하며, 생물다양성 보전에도 기여한다. 그러나 저소득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산림 보존은 곧바로 실행 가능한 해법이 되지 못한다.
저소득국은 단기적으로 농경지 확대와 목초지 전환을 주요한 생존 및 개발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인구 증가와 식량 수요 확대, 경제 성장을 위한 현금 작물 생산 등은 토지 전환 압력을 높이는 요인이다. 대체 경제 모델이나 충분한 보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산림 보존은 오히려 지역 주민의 생계와 개발 기회를 제한하는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개발권, 생존권과 직결된 사안이다.
더욱이 산림 파괴의 원인을 저소득국 내부의 행위로만 환원하는 것도 옳지 않다. 대두, 팜유, 소고기와 같은 글로벌 농산물에 대한 수요는 주로 고소득 및 중소득 국가에서 발생한다. 다국적 기업의 공급망과 국제 교역 구조는 저소득국에서의 산림 전환을 사실상 유도하거나 압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저소득국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만 규정하는 것은, 어찌보면 책임 전가에 가까울 수 있다.
따라서, 이 또한 완전한 답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여기서 제시된 방안들의 '답인 부분'들을 맞추어 나간다면 농업 부문에서의 온실가스 저감 역시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2편에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후 변화는 '자연에서 얻는 것'들의 동시다발적인 공급 변화를 강제한다. 그리고 원자재의 공급 변화는 자연스레 그 원자재를 기반으로 하는 물자 전체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농작물을 예로 들면, 통계청의 지난 5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이상 기후에 따른 작황 부진 등의 영향으로 가격이 찹쌀은 26.2%, 무는 26.7%, 마늘은 20.7% 정도 급등했다. 이런 식으로 기후 변화로 인해 원자재의 공급이 줄어들면, 물가는 올라가고 이는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킨다.
또한 18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숲과 농업은 모두 같은 토지라는 자원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늘어나면 다른 한쪽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산림 면적이 확대되면 농경지는 축소되고, 이는 곧 식량 생산량 감소로 이어진다. 단순한 통계상의 감소에 그치지 않고, 국제 곡물 가격의 상승과 공급망 불안정으로 연결되며, 특히 취약한 사회계층과 저소득 국가일수록 그 부담을 더 크게 떠안게 된다.
그렇다면, 기후 변화로 인해 변해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변함없이 먹고살 조건은 다음과 같이 추려볼 수 있다.
첫째, 외부 기후에 상관없이 식량을 공급할 수 있을 것.
둘째, 토지 효율적인 식량 공급을 수행할 수 있을 것.*
(*이는 기후 변화 대응의 맥락에서, 산림 보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두 조건을 구현할 수 있는 대안으로는 종자 개발, 무역 다변화 등 역시 존재하나, 대표적으로는 스마트팜 정도가 떠오른다.
스마트팜은 ICT(정보통신기술), IoT, 인공지능, 센서 등을 활용해 온실·수경재배·실내 농업 환경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체계로서 기온, 강수량, 일조량 같은 외부 기후 조건과 무관하게 작물 생육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할 수 있다. 또한, 이 기술은 수직농장 및 고밀도 수경재배 같은 기술을 포함하기에 같은 토지 면적에서 단위당 생산량을 극대화할 수 있고, 공간을 수직적으로 활용하여 토지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초기 투자비가 크고 유지·관리 비용도 상당하기 때문에, 소규모 농가나 저소득 국가에서는 접근하기 어렵다. 첨단 기술을 다룰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중요한 제약 요인이다. 또한, 외부 기후와 무관한 인공적 재배 환경을 유지하려면 상당한 전력이 필요하고 이 전력이 화석연료 기반이라면 온실가스 저감 효과가 크게 상쇄될 수 있다. 결국 스마트팜의 지속 가능성은 그 전력을 공급해줄 무탄소 에너지원과의 결합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문제가 안 그렇겠냐만은, 기후 변화 속 먹고사는 문제 역시 완화와 적응을 동시에 풀어야 하는 다층적 과제다. 다만 앞선 논의가 ‘전 세계’에 동일하게 적용되는지는 점검이 필요하다.
고소득 국가는 육류 소비와 국제 공급망을 통해 농식품 부문의 배출을 크게 늘려왔지만, 동시에 스마트팜·재생에너지 등 대응 기술을 도입할 자원과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반대로 저소득 국가는 생계를 위해 산림을 경작지·목초지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전환이 다시 기후 변화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스마트팜 같은 기술에 접근할 자원이 부족해 적응 능력도 상대적으로 제약된다.
이를 단순히 적자생존의 관점에서 본다면, 당연한 귀결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렇게 작동한다”라는 지점에서 멈춰도 되는 걸까? 현실이 그렇다는 사실이 곧 “현실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뒷받침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결과만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과정과 가능성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다. 따라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이 물음에서라면, '먹고사는 문제'에서의 격차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닌, 분배와 책임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소위 ‘정의’라는 렌즈로 기후 변화를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