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수영장이 레인보우로 둥둥 떠다니겠어요.”
필이는 레인보우 머리가 두둥실 떠다니는 수영장을 상상하며 혼자 실실 웃는다.
아이 시험이 끝나고 늦게 가기 시작한지 2주 정도 지난다. 그러니 이젠 이 시간에 만나는 언니들이 있다. 빨간목욕탕과는 다르게 필이보다 어린 사람들도 많다. 이젠 언니를 대명사처럼 쓸 수가 없다. 뭐라고 해야 하나? 새삼스레 호칭에 대해 고민한다. 그래도 나이까지 주고받은 분들 중에 필이보다 어린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아직은 언니를 대명사처럼 써도 되겠다.
누구 마음대로?
필이 마음대로!
중급 레인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얼른 옆 레인으로 넘어간 필이.
‘앗싸, 깊은 물에서 발차기한다.’
속으로 외치며 신이 난다.
레인 끝을 잡으려고 팔을 쭈~욱 뻗는 순간 이게 누군가. 똥글이 언니가 아닌가. 분명 똥글똥글 똥글이 언니가 맞는데 뭔가 다르다. 평소에는 몸은 밝은색으로 빛나고 -그래서 몸을 더 동그랗게 만들어주고- 머리는 짙은색으로 눌러줬던 것 같은데 오늘은 어찌 반대다.
“언니, 수영복 샀어요?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원래 입던 거구만.”
옆에 있던 78세 영희 언니가 대답한다.
“그래요? 왜 전 처음 보는 것 같죠?”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수영복이 맞음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수영복이 어데 한두 개가? 못해도 서너 개는 되는데. 요새 안 입다가 입고 왔네.”
언제 미희 언니가 중급 레인으로 건너온 걸까? 항상 마스터 레인에서 수영하는 3인방 언니들이 모두 옆에 와 있다. 도대체 언제 넘어온 걸까? 언니들이 물에서 축지법 같은 걸 쓰는 걸까? 궁금할 사이도 없이 미희 언니가 계속 말한다.
“수영복 한두 개 가지고 되나? 안되지. 내는 보자. 다섯 갠가? 아니다. 여섯 개는 되는데? 그래도 만날 입는 것만 입어진다. 하하하.”
마스터 반에서 함께 넘어온 진숙이 언니를 보고 웃는다. 맞는 말이라는 듯 맞장구를 쳐달라는 듯 바라보며 웃는다.
“그래 편한 것만 입어지제. 그래도 수영복은 많다.”
맞장구친다. 찰떡궁합이다.
미희 언니가 필이를 가로질러 똥글이 언니 곁으로 바짝 다가선다.
“모자 예쁘네. 그것도 아레나 꺼가?”
“몰라, 어데 건지.”
“색깔이 예쁘네. 알록달록한 게. 내 수모 바꿀 때 됐는데 그걸로 하나 살까? 다른 색깔도 있나?”
“ ‘레인보우’ 치면 다 나온다. 색깔이 쫘악~~~ 나오거든. 거기서 아무 꺼나 하면 된다.”
‘쫘악~~~~~~~’ 할 때, 똥글이 언니는 눈앞에 레인보우 수모가 펼쳐져 있는 것처럼 손을 착 펴고 팔을 쭈욱~~ 뻗으며 설명한다. 의기양양. 자신의 레인보우 수모가 주목 받으니 똥글이 언니 머리에서 빛이 난다. 아니다. 무지개가 뜬다.
“그래? 수모도 다 늘어났는데 하나 사까?”
“수모도 몇 개가 있는 거예요?”
“하모, 수모는 함 보자. 세 개? 네 갠가? 아, 세 개다. 이거꺼정.”
미희 언니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한다. 그러다 다시 관심이 똥글이 언니에게로 향한다.
“그거는 잘 신어지나?”
“잘 신어지고 안 신어지고 뭐 있노. 쫙 늘카가 신으면 되지.”
???? 신는다니? 수모를??? 머리에 쓰는 모자를 신는다고?? 아니, 양말도 아니고 모자를 신는다고? 어리둥절.
필이는 미희 언니 한 번, 똥글이 언니 한 번, 진숙이 언니 한 번, 영희 언니 한 번, 3인방 중 아직 인사 니누지 못한 언니까지 다 쳐다본다. 아무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혼자 이상하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필이가 묻는다.
“언니, 수모를 신어요? 모잔데. 머리에 쓰는 모잔데.”
말끝이 내려간다. 왠지 다 아는데 혼자만 모르는 것 같다.
“그라면 수모를 신어야지. 덮어쓰나? 양말 맨치로 꽉 끼아갖고 신어야 될거 아이가. 모자 쓰듯이 쓰면 수영을 우예 하노?”
앗! 역시. 수영장 다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나 보다. 수영장 초보, 필이만 이상했나 보다. 수모를 신는다니. 아무리 그래도 신는다니. 미희 언니 말이 맞다면서도 자꾸 양말을 신는 상상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머리에 양말을 신는 상상이 필이도 모르게 배를 간지럽힌다. 혼자 킥킥거리며 웃고 있는데 요양보호사 언니가 온다.
“언니, 수영복이 몇 개예요?”
“내는 두 개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못 봤을지 몰라도 요양보호사 언니는 처음부터 친해져서 수영복이 바뀌면 바로 안다.
“언니 수영복 이것밖에 못 봤는데?”
“집에 있다 아이가. 잘 안 입는다. 다 늘어나가지고. 이거 락스물이거든. 조금만 입으면 수영복이 얄량얄량 늘어나가지고 못입는다. 그래도 버리기는 아까바가지고 갖고 있지.”
언니는 '얄랑얄랑'이라고 할 때 검지손가락을 들어 좌우로 흔든다. 재미있어 필이도 따라 한다.
“얄랑얄랑이요?”
“하모, 락스물에 얄랑얄랑 늘어나지.”
수모는 신는다. 수영복은 수영장 물에 얄랑얄랑 늘어난다. 수영장만의 언어가 빛난다.
“레인보우 모자 하나 사까?”
“나도 하나 사까? 이거는 못났다.”
언니들은 벌써 레인보우 모자에 폭 하고 빠져버린다. 머리가 무지개빛으로 빛난다. 수영장에 온통 레인보우 머리가 떠다니는 상상을 하게 된다. 얼마나 예쁠까? 커다란 유리창으로 햇살은 들어오는데~ 무지개가 둥둥~
필이야 말로 수영에 필요한 풀세트를 사야 할 판이다. 머리에 신을 수모부터!
오필리아처럼~
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