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없지. 오답은 있어도!"
"삶에 정답이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아들의 대답이다.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데 어떻게 정답이 있을 수 있냐"며 당연한 걸 묻는다는 반응이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평소 이와 같은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니 아이의 생각을 안다. 다음 말이 압권이다.
"오답은 있지. 남을 해치거나 범죄를 저지르거나, 남을 괴롭히고 사는 건 오답이지. 그건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삶에 오답이 있다는 건 생각해보지 못했다. 아이의 말에 깨달음을 얻는다. 저마다의 삶이 다 소중하다. 삶의 주인공은 '나'다. 내 인생의 무대 위에 내가 주인공이 되어 삶을 펼친다. 그러니 정답이 없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이의 말처럼, 남의 슬픔 위에 올라선 삶이라면? 남을 아프게 하는 삶이라면? 이건 생각해볼 문제다.
정답이라는 말 속에는 맞고 틀림이 존재한다. 내 삶이 정답이라면 네 삶은 틀린 것이 된다. 그러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현명한 대답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정답이 있는 듯이 달려가는 걸까? 모두가 한 길만 바라보며 달리기를 한다. 이 길만이 정답이라며 아이들을 내몬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한 길로 향하는 교육은 더 치열해진다. 길에서 이탈하게 될까 전전긍긍한다. 동무마저 경쟁자로 내몰며 한 길만을 고집한다.
삶에는 한 가지 길만 존재할 수 없다. 인구수만큼의 길이 존재한다. 저마다의 길이 있다. 다른 길은 오답처리하며 오직 하나의 길만이 정답이라고 한다. 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다. 정답만 강요하는 사회에서 아이들의 다양함은 모두 오답이다. 정작 오답은, 우리 아이가 말한 것처럼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얻어낸 삶인데 그걸 가르쳐주는 곳이 어디에도 없다.
삶에 정답이 없다는 걸 가르쳐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의 생각을 묻는 것이다. 그리고 경청한다. 아이는 자신의 삶에 주인공이 되어 마음껏 '자신'을 펼치며 살게 된다.
제시어: 정답
타자수: 999자
오필리아처럼~
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