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암만, 나도 갈 거라예

솔도밴드로 재활치료하는 춘자

by 필이

춘이님!

솔도밴드 팬 카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규칙 잘 숙지하시고요.

규칙 잘 지켜서 깨끗하고 안전한 팬 문화 만들어 가도록 해요.

마지막으로 규칙 잘 읽으셨는지

아래에 체크해주세요.

다시 한 번 더 환영합니다.


‘무신 규칙이 이래 많노? 함보자. 이것도 하면 안 되고. 저것도 하면 안 되고. 이거는 뭔 말이고? 뭔 말인지 몰겄고, 죄 안되는 거뿐이네. 아고마, 잘 모르니까 가만히 있어야겄다.’

‘잠깐만 있어 보자. 체크? 이거가? 뭐꼬? “규칙을 숙지했으며 규칙을 잘 지킬 것을 서약합니다?” 규칙이 뭔 말인가도 모르겠는데. 일단 이걸 체크해야. 옴마야!’

춘이님!

솔도밴드 팬 카페, 회원가입이 승인되었습니다.

규칙, 잘 지켜서 즐거운 팬문화 만들어요!

“아, 예예. 규칙! 잘 지킬게예. 우와, 내가 드디어 팬 카페에 가입한 거가? 우리 솔도밴드 팬 카페에? 우와! 어데 보자.”


핸드폰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춘자, 솔도밴드 팬 카페 구경에 한창이다. 자신은 곧 수술을 해야 하는 환자라는 것도 잊은 채.


“춘자님, 수술은 ……. 마취가 깰 때까지 움직이면 안되시구요. 물은……. 머리는 절대……. 춘자님. 춘자님? 듣고 계세요?”


하모예, 잘 듣고 있지예.”


수술을 제법 많이 한 춘자다. 아무리 많이 해도 수술을 앞두고 무서운 건 당연한 것이다. 그것이 간단한 수술이건 간단하지 않은 수술이건. 수술실에 들어가 누워 있으면 기분이 참 요상하다. 아니다. “수술실 들어갑니다.” 하며 머리에 수건을 덮어씌울 때부터 마음이 두방망이질을 시작한다.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들어가면 그 긴장감은 말을 못한다. 보이는 것은 하얀 천정뿐이고 들리는 것은 간호사들의 말소리뿐. 그러다 수술대에 도착하고나면 이제 긴장감은 절정에 이른다. 침만 꼴딱꼴딱 삼킨다. 금식으로 침도 모자랄 판인데 있는 침 없는 침 다 모아다 꼴딱꼴딱 넘긴다. 침을 넘기는 것만이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일한 것인 것만 같다.


하얀 벽에 하얀 천정에, 하얀 조명에, 이대로 하얀 옷을 입고 그대로 눈 감을 것만 같다. 거기에 써늘한 기온은 마음마저 떨게 만든다. 그 옛날 따듯하던 엄마를 냉동고에 넣는 것과 같다. 이대로 얼어버려 다시는 깨지 못할까 두렵다. 춘자도 모르게 턱이 떨린다. 달달달달달. 간호사가 춥냐고 묻는다. 춥다고 대답을 한 모양이다. 간호사 따듯한 무언가를 틀어준다. 따듯한 바람이 이곳이 냉동고가 아님을 알게 해준다. 그제야 춘자는 안도한다.


“거는 수술방 들어간다는데 어째 웃고 있노? 뭘 그래 본다꼬?”

“솔도밴드라고예. 좋아하는 밴든데 노래를 얼매나 잘하는지 몰라예. 이거 듣고 있으니깐 무서운 것도 없네예.”


“요상타, 수술실 들어간다는 사람이 저래 웃는 거는 처음 본데이. 아무튼, 수술 잘 하고 온나.”


“야, 댕겨올게예.”

수술실 들어가는 입구까지 춘자는 이어폰을 꽂고 솔도밴드 노래를 듣는다. 무서운 마음이 올라오기도 전에 노래에 흥을 맞춘다. 춘자는 이미 예감한다. 솔도밴드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것을!


오늘 공연

실시간 방송해요.

유튜브로 보실 수 있어요.

공연장에 못 오시는 분들은

라이브 방송으로 만나요.


‘뭐? 실시간 방송이라고? 오메 떨려라. 처음이다. 처음! 실제로 공연하는 거 이래 보는 거 처음이다. 오메 떨려라. 우짜노. 공연장에 간 것도 아닌데 이래 떨리뿌면 공연장에서 직접 보면? 오메오메 떨려라. 생각만 해도 좋네. 흐흐흐흐. 가만 있어보자. 이어폰 준비됐고. 커튼을 닫고.’


“거 벌써 잘라꼬?”


“아입니더. 솔도밴드 라이브 방송해가 그거 볼라꼬예.”

“뭐? 솔? 뭐? 니 만날 들여다보고 웃고 하는 그거?”

“예, 라이브로. 그라니까 생방송으로 보여준다고 합니더. 그랑께 여 문닫고 조용히 볼게예.”

“그래라. 문 일찍 닫아뿌고 실컷 봐라. 좋아하는 거 실컷 봐야지. 사는 거 뭐 벌거가? 얼른 드가라.”


“예.”


춘자가 있는 곳은 4인실이다. 수술을 끝내고 재활치료병원에 입원 중이다. 아래층은 암 환자들 병동이다. 춘자가 있는 곳은 춘자처럼 다리나 허리 등 외과 수술을 한 사람들 병동이다. 4인실이라 해도 일반 병원보다 넓고 시설이 좋다. 잘 때 커튼만 살짝 치고 자면 자기만의 방이 만들어진다. 여기서는 이것을 문 닫는다. 문 연다고 말한다.


춘자는 문을 닫고 핸드폰을 켠다. 이어폰을 양쪽 귀에 꽂는다. 소리도 높이고 넓은 화면으로 채운다. 준비완료다. 시간은 어쩜 이리도 금방 흐르는가. 마지막 솔님의 멘트로 공연이 막을 내린다.


“너무 재밌었다. 그쵸? 우리 다음에도 만나서 신나게 놀아요.”


“네!”

춘자는 자신도 모르게 대답을 하고 만다.

‘꼭! 갈 거라예. 솔님! 기다려주이소. 솔도밴드 분들요! 기다려주이소. 내 춘자, 재활치료 열심히 해갖고 솔도밴드 분들 보러 갈 거라예. 내도 저렇게 놀고 싶습니더. 같이 춤도 추고 같이 노래도 부르고. 목이 터져라 떼창도 부르고. 내도 저래 해볼랍니더. 기다려주이소. 내, 춘자! 꼭 갈 겁니더. 꼭!’


나풀거리는 하얀 옷이 조명빛에 춤을 춘다. 하얀 고깔모자는 ‘하얀’이 아니라 ‘하이얀’이라고 불러야만 할 것 같다. 삼각형이 입체를 이루며 머리를 감싸고 있는 그 자태가 ‘하얀’이 아니라 ‘하이얀’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고운 손짓과 신나는 몸짓,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오르는 것만 같다.


마지막 무대는 관객과 함께 뛴다. 다 같이 손을 잡고 신나게 뛴다. 폴짝폴짝. 어린 시절 신나면 저절로 중력의 힘을 거스르며 높이 뛰듯이, 사람들이 신나서 높이 높이 뛴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다. 남녀노소 모두 청춘의 그 어느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다. 어쩜 저렇게도 즐겁게 뛰어노는가. 어쩜 저렇게도 행복의 춤을 추는가.


춘자는 자신이 그 자리에 있는 것만 같다. 들썩들썩. 이곳이 한 평 남짓 병원 침대라는 것도 잊은 채 황홀경에 빠진다. 그러면서 결심한다. 반드시 저곳에 함께 하겠다고! 재활치료 열심히 해서 반드시! 반드시! 공연장에 가고야 말 것이라고! 솔도밴드 오프 공연에 꼭 가고야 말 것이라고! 결심에 결심을 한다.


춘자의 인생 그래프에 높은 점이 찍히는 밤이다. 새로운 막이 열릴 춘자의 밤이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