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꿍 언니는 자전거 타기를 하고 필이는 마주 보고 뒤로 걷기를 한다. 어느 날부터인가 짝꿍 언니와 이렇게 걸으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어째 이래 안될꼬. 죽기 전에는 되겄나?”
“하하하하하. 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요?”
짝꿍 언니와 필이는 하루도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로 하루를 시작한다. ‘누가 누가 못하나’ 내기 말이다. 한참을 웃다 생각한다. 미래로 간 짝꿍 언니와 필이를.
찰나의 순간, 언니와 필이는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간다. 필이가 60이 넘고 언니는 80이 갓 넘는다. 10년 후 파란수영장이다.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뒤로 걸으며 마주 보며 이야기 중이다.
"어째 이래 안될꼬? 우리 죽기 전에는 되겄나?“
"하하하하하. 언니도 참. 언젠가는 되겠지요. 하하하하하.“
지금처럼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10년이 지나서도 똑같이! 상상하는데 웃음이 터진다. 짝꿍 언니는 필이 머리 위에 말풍선이 떠오르면서 팡팡 웃고 있는 것은 못보고 갑자기 심각하게 말한다.
“그래도 이만한 게 어데고. 이래 내 다리로 걸어댕기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
필이도 얼른 상상주머니를 밀어버리고 현실로 돌아와 언니 말에 맞장구친다.
“맞아요. 아유. 휠체어 타고 목발 짚고 겨우 걷던 거 생각하면. 이만하면 감사한 거지요. 맞아요.”
“그래, 내 눈이 안 비도 두 손 두 다리 멀쩡한 것만도 고맙다. 처음에 눈이 안 빌 때는 사람이 죽겠더만……. 인자는 조금 적응할라 한다.”
빨간목욕탕 언니들도 그렇더니 파란수영장 언니도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어찌 이리도 담담하게 하는 걸까. 그러니 오히려 슬픈 건 필이몫이다.
"어느날 갑자기 안 보인 거예요?“
상상이 가지 않는다.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눈이 안 보이는 분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만나는 것도 처음이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만났지 이렇게 곁에서 이야기나누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병원 생활 오래 하며 수없이 많은 환자분들을 만났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분은 처음이다. 그러니 언니와 짝꿍이 되던 날, 손을 먼저 잡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 아닌가.
이제는 다가가기 전에 큰 목소리로 "짝꿍, 저 왔어요."라고 한다. 그러면 언니가 손을 소리가 나는 방향, 즉 나를 향해 내민다. 그러면 손을 꼭 잡는다. 무슨 의식 같다. 언니와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
"내가 원래도 당뇨가 있었거든. 그래도 보이는 건 문제 없었는데. 딸자식 먼저 보내고 그 길로 눈이 안 비데. 얼마나 울었는가 모른다. 날마다 울어가. 타월을 짜면 물이 나올 정도로 그래 울었다. 큰 타월 있제. 그게 다 젖을 정도였다. 눈이 퉁퉁 붓고 그래 울었다.“
딸자식 먼저 보낸 엄마의 심정이 어떨까. 심장을 도려내는 고통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딸을 먼저 보낸 눈물인지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눈물인지. 아님 둘 다인지도 모른다. 커다란 타월을 다 적실만큼, 눈이 퉁퉁 부어 아래위 눈꺼풀이 붙어버릴만큼, 눈물을 흘린 이유가.
남편분은 일을 가고 홀로 남겨진 집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어둠. 딸자식을 심장에 묻고 가슴을 치며 애통해했을 언니를 감히 상상할 수가 있는가. 없다!
"꼼짝도 몬하고 집에만 있었다. 어델 나갈 수가 있나. 딸내미 따라 가고 싶더만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되는 기라.“
무슨 말을 하겠는가. 넋두리 같은 언니 말을 듣고만 있는다. 물의 기운이 가라앉는다. 언니 목소리도 가라앉는다.
“운명인기라. 운명. 딸자식 그리 간 것도 운명이고. 내 눈이 이래 된 것도 다 운명인 기라. 운명.”
운명이 무엇인가. 운명은 타고 나는 것인가, 만들어 가는 것인가. 타고난 운명은 바꿀 수 없는 것인가. 타고난 운명 따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인가.
한참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떻게 결론을 내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 운명을 언니에게서 듣는다. 딸자식 먼저 보낸 아픔을, 자신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된 한탄을, 그저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달래보려는지도 모른다. 운명에게 떠넘기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그 죽음을 그 어둠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
“함보자. 딸자식 제사를 세 번 하고 올해 네 번째니깐. 눈이 안 빈지도 4년 됐네. 그라이 이제 쪼매 적응이 될라 한다.”
상상할 수가 없다. 상상력이 풍부하다 못해 건들면 툭 하고 튀어나올 정도로 상상 자동 제조기인 필이조차 상상할 수 없다. 자식의 제사를 준비해야 하는 엄마의 심정을!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너무 담담히 말하는 언니의 모습을 보며 혼자 눈시울 붉힌다.
“저 아 와가지고 그래도 이래 수영장도 댕기고 이제는 살만하다. 집에만 있으면 안된다꼬 이래 델꼬 나오네. 물에서는 넘어져도 안 다치니깐. 내도 이래 나오니깐 좋고.”
요양보호사 언니가 어디쯤에 있는지를 알기라도 하듯 짝궁 언니는 요양보호사 언니 쪽을 바라본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내 눈에. 내 가슴에.
“야아~! 여태 발 땅에 안 댔다. 이까지 오려면 한 번씩 쉬야 되는데, 니랑 말하면서 오니깐 그냥 와지네? 앞에서 허연 게 보이니깐 누가 있다 싶어가 무서운 것도 없고.”
파란수영장 물이 떠오른다. 발차기를 세차게 해서 물방울이 튀어 오르듯 언니 목소리도 높아진다.
“허연 귀신 같은 게 앞에서 보이니깐요?”
“아이다. 니가 귀신이라는 게 아니고 귀신 나올 때 맨치로 그래 빈다고.”
“하하하하. 그니깐요. 그니깐 허연 귀신인 거지요. 하하하하.”
“하하하하. 내가 여 와가지고 이래 니를 만난 것도 운명인기라. 운명. 눈 안 비니깐 여 와서 이라고 있지. 안 그라면 여 올 정신이 어딨노. 여 오니깐, 니같이 좋은 동생도 다 만나고. 운명이다. 운명.”
“언니랑 만날 운명.”
언니는 운명예찬론자라도 된 것인가. 아니 필이가 운명예찬론자가 되어 버린다. 짝꿍 언니를 만난 것이 운명이라면, 그렇게 되게 정해져 있었다면, 그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언니에게, 앞이 보이지 않는 언니에게,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언니에게, 아주 조금 아주아주 조금이라도 빛이 될 수 있다면. 그저 "짝꿍"하는 인사로 마주 잡은 손으로. 이것만으로 언니에게 빛을 선물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얼마든지 할 것이다. 더 큰 소리로. 더 반갑게. 그렇게 인사할 것이다.
“이거 했다고 그래도 댄갑데. 집에 가면 밥 묵고 한숨 잔다. 그게 내 일이다. 인자 일도 몬하고 팔자 폈다. 팔자가. 하하하하.”
“대지요. 물에서 이래 노는 게 얼마나 힘든데요. 그런데 살은 와 안 빠질까요?”
“그라게 말이다. 살은 와 빠질꼬?”
한바탕 웃음이다. 언니도 나도. 그렇게 웃는다. 서로의 빛이 되는 그런 운명이 되어. 짝꿍 언니도 필이도 그렇게 웃는다.
오필리아처럼~
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