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장에 들어서는데 바로 보이는 낯익은 얼굴들. 요양보호사 언니와 짝꿍 언니다.
언니들은 들어서면 바로 있는 입구 쪽에 서로 등을 마주 보고 씻고 있다. 그 한 칸 건너 맨 안쪽으로 간다. 구석진 자리. 아직은 샤워할 때 이 자리가 좋다. 칸막이로 되어 있어도 양쪽에 언니들이 있으면 뭔가 부끄럽다.
한쪽이 벽인 이 녀석과 함께 씻는 게 편하다.
“어? 언니 수영복 또 샀어요? 왜 이 디자인으로 샀어요? 삼각팬티처럼 된 게 편하다면서요.”
“내가 안 샀다. 언니가 사줘가 안 그렇나. 다음에는 그런 걸로 사달라 해야겠다.”
요양보호사 언니는 필이가 새로 산 반신 수영복을 입었다. 그러다 발차기 쌤이 삼각형, 아니 원피스로 된 것이 편하고 수영이 더 잘 된다고 말한 이후로 언니는 원피스 수영복을 입는다.
“이기 진짜로 편하네. 이거 입고 나면 다리 붙은 거는 못 입겠다. 진짜 편하다.”
오래된 거라 다 늘어났다는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는 감탄에 감탄을 더한다. 그런데 오늘 다시 필이가 새로 산 것과 같은 반신 수영복을 입은 것이다. 그것도 못 보던 새것으로!
“잘 봐라. 여까지 와가 팔을 끼우면 돌돌돌돌 말려가지고 안 입어진다. 이만큼 올려가지고 팔을 끼아야 안 말리고 입어진다. 알겠제?”
언니는 반신 수영복을 처음에는 허리만큼 올리고 다음에는 가슴께까지 올린다. 그리고 마무리는 팔을 뒤로 뻗어 말리는 부분이 없도록 올린다. 깔끔하다.
“니맨치로 허리에서 팔을 끼우면 옷이 말리가 엉망이다. 입어지지도 않고. 해봐라. 여까지 올리갖고. 이래이래.”
언니는 연신 팔을 뒤로 돌려 수용복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 기예단 공연을 보는 듯 필이는 신기하게 쳐다본다.
“언니는 팔이 어째 그래 유연하노? 내는 팔이 그래 안된다. 봐라. 여기. 여~~기까지. 아야.”
필이는 돌아가지 않는 팔을 억지로 뒤로 돌리다 팔이 꺾어지는 고통을 느낀다.
처음 수영복을 사서 입는데 뒤가 올라가지를 않는다. 요양보호사가 언니 말대로 억지로 팔을 끼우니 돌돌 말려가지고 등이 올록볼록 아기배처럼 튀어나온다. 처음에 헐크였던 바로 그 등이다. 창피함을 무릎쓰고 옆에서 샤워하던 낯선 언니에게 뒤쪽 수영복을 끌어올려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벌어진다.
요양보호사 언니는 필이의 이 말을 기억하고 자신의 반신 수영복으로 입는 방법을 전수해주는 것이다. 아니 전수해주고자 하는 것이다.
“니는 팔이 그기 안되나? 그래밖에 안 올라가? 아가 생기다 말았나. 밤티네 밤티!”
“하하하하하. 맞아요. 맞아. 밤티예요. 옷 하나 제 손으로 못 입고, 밤티 맞아요. 밤티.”
샤워하다 말고 갑자기 밤티(모자란다는 의미) 밤티, 노래를 부른다. 그게 뭐가 웃기다고 웃음이 나는 걸까. 샤워장에 떠다니는 물방울이 겨드랑이라도 간지럽힌 걸까? 아니다. 마음을 간지럽힌 거다. 살살살살.
“우리는 밤티고 니는 곰티고. 밤티가 몬하면 곰티가 도와주면 되고. 안 그렇나?”
“맞다. 맞다. 그래 곰티가 이래 안 도와주나? 이리 앉아봐라. 밤티야.”
짝꿍 언니도 필이와 같은 밤티가 된다. 동지가 생겼다며 좋아하는 필이 눈에 자리에 조심히 앉는 짝꿍 언니가 보인다. 더듬더듬 안테나를 세우고 수영복 바지를 입으려고 애쓴다.
곰티(곰팅이 '미련곰탱이'를 줄여서 하는 말, 이것도 모자란다는 의미로 사용)가 된 요양보호사 언니가 수영복 바지를 동그랗게 구멍을 만들어 거기에 짝꿍 언니가 발을 끼울 수 있도록 해준다. 아기에게 옷을 입힐 때처럼 말이다. 양쪽 발을 끼우고 난 짝꿍 언니는 앉은 자리에서 옷을 끌어올려 입다가 살살 일어나 수영복을 마저 입는다. 마무리는 곰티 언니 몫이다.
“짝꿍 언니는 애기네. 애기. 바지를 입혀줘야 하고. 맞지요? 애기. 내는 다리는 끼우니깐. 음……. 조금 더 큰 어린이다. 어린이.”
“애나 아나, 밤티끼리. 똑같다.”
곰티 언니가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자신이 수영복을 입을 때처럼 깔금하게. 짝꿍 언니도 필이도 우린 둘 다 밤티다. 밤티! 다른 사람 도움받아야 하는 밤티.
“밤티면 어떻노. 이래 곰티가 도와주는데. 곰티 없으면 안된다. 곰티.”
짝꿍 언니는 곰티 곰티 노래를 부른다. 물방울이 언니 겨드랑이를 간지럽힌 게 틀림없다. 웃음이 노래하는 걸 보면 말이다.
“시끄럽다. 드가자.”
곰티, 요양보호사 언니가 밤티, 짝꿍 언니 손을 잡는다. 아장아장 걸음마 하는 아기처럼 손을 꼭 잡고 걷는다. 그 손을 놓치면 안된다며 짝꿍 언니도 손을 꼭 잡는다.
“먼저 가요. 내도 금방 갈게요.”
필이 밤티도 얼른 씻고 언니들을 따라간다.
알을 깨자마자 보이는 사람이 엄마인 줄 알고 따라다닌다는 오리처럼 필이 밤티도 짝꿍 밤티도 요양보호사 언니가 엄마인 줄 아는가보다.
곰티는 밤티를 만나 엄마가 된다. 손을 꼭 잡고 간다. 찻길에 나선 아기 손을 잡고 가듯 요양보호사 언니는 짝꿍 언니 손을 꼭 잡고 반걸음 앞서 걷는다. 짝꿍 언니도 그 손을 꼭 잡고 걷는다. 한쪽 손은 벽을 더듬으면서. 그렇게 두 사람은 천천히 파란수영장 안으로 들어간다. 필이 밤티도 아기 오리가 되어 그 뒤를 따른다.
세상에는 많은 밤티와 곰티가 산다. 모든 걸 혼자서 하고 살 수 없는 세상이니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모자라는 부분 채워주고 서로 챙겨가며 사는 세상. 밤티와 곰티가 사는 세상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밤티와 곰티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서로가 서로의 빛이 되는 존재로 그렇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밤티와 곰티가 사는 세상. 아름답게 빛나는 세상이다.
오필리아처럼~
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