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이 텅 비었다. 아침반 수업이 끝나고 샤워장에는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정작 수영장 안에는 사람이 없다.
‘앗싸, 오늘은 독무대네? 수영 실컷 할 수 있겠다.’
처음엔 신이 난다. 혼자서 이 큰 레인을 독차지하는 기분이 끝내준다. 마치 김일성 전용 수영장인 것만 같다. 들뜬 마음에 발차기고 뭐고 몸도 풀지 않은 채 자유형을 한다.
어푸어푸
얼마 가지 않고 꼬로로록 빠져서는 물을 마시고 만다. 누가 볼 사람도 없는데 얼른 일어나 다시 자유형이다. 언니들이 틈틈이 가르쳐준 방법대로 팔을 쭉 내밀면서 수영한다. 지난번 가르쳐주었을 때는 잘됐었는데 웬일인지 잘되지 않는다.
사람도 없겠다 하고 싶은 것 실컷 해보자. 이번에는 배영이다. 하늘 향해 둥둥 뜨는 기분이 참 좋다. 고 느끼기도 잠시! 또다시 물속으로 꼬로로록 가라앉는다. 팔을 젓지는 못하지만 발은 꾸준히 차고 있었건만. 역시나 발차기 쌤이 말한 것처럼 기본 발차기가 안 되니 이것도 저것도 안 되나 보다. 그러면 어떤가. 혼자 독무대인 수영 레인에서 마음껏 즐기면 되는 것을.
재미있는 것은 아주 잠깐이다. 수영장 레인이 이렇게나 컸었던가. 젊은 날의 기억을 더듬더듬 꺼내본다. 그 시절 친구와 갔던 수영장은 더 길고 컸던 것 같다. 필이가 커진 탓인지도 모른다.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그래도 제 2의 수도라 일컫는 부산에서 갔던 수영장이니 기억이 크게 잘못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나 꾸깃꾸깃 흑백 영화 같은 옛 기억까지 꺼내면서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지금 혼자 있는 수영장 레인이 너무도 길고 크게 느껴진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혼자 독차지 한다고 좋아한 게 참 우습게 느껴진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깊이 깊이 깨닫는 아침이다.
“어? 언니!~~~~”
이게 웬일인가. 짝꿍 언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언니!~~~’ 끝이 요망하게 끌어진다. 콧소리까지 나는 것만 같다. 흡사 이성을 꼬실 때나 사용한다던, 백만 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다던, 그런 요상한 목소리가 나온다. 이게 뭐지? 느낄 새도 없다. 짝꿍 언니가 반가워 목소리가 먼저 달려간다.
요양보호사 언니가 병원에 시술받으러 가고는 며칠 오지 못하던 짝꿍 언니다. 요양보호사 언니가 병원에 가기 전에 간단한 시술이면 이삼일 있다고 올 거라고 한다. 확실한 건 병원 가봐야 안다고 하더니 몇 날 며칠을 보이지 않는다. 안그래도 너무 오래 보이지 않아 걱정하던 차다.
짝꿍 언니는 맞는데 같이 있는 분이 다른 분이다. 짝꿍 언니 만난 기쁨도 잠시 어찌된 영문인지 걱정이 앞선다. 행여라도 요양보호사 언니가 크게 아픈 걸까 걱정이 된다.
“어어어, 퇴원해가 집에 있다. 허리하고 어깨하고 다리하고 뭐 다 했다는데 다른 데는 개안코 다리가 퉁퉁 부서가지고 안있나. 그래가지고도 어데 다니고 다 하는데 물에는 드가면 안된다꼬. 그래가 수영장을 못온다.”
다행이다. 병원에서는 벌써 퇴원한 것이라고 하니 큰 수술은 아니었던가 보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여러 군데 시술을 했고 다리가 퉁퉁 부어 있다는 것, 부은 다리에 물이 들어가면 안 돼서 수영장을 못 온다는 것이다. 그래도 걷고 다니고는 한다니 다행이다.
“같이 오신 분은 다른 요양보호사인 거예요?”
“어어어, 시누다. 시누! 집에 있은께 깝깝해가지고 살 수가 있나. 그래가 같이 가자 했지.”
손 아래 시누이. 그러니깐 남편분의 여동생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나이는 언니와 동갑이란다. 그래서인지 시누이인지 전혀 모르겠다. 서로 친구처럼 틱틱거리며 이야기하는하는 것이. 경상도 여고 동창생 같다.
언니가 오니 이야기꽃이 활짝 핀다. 레인 끝에서 다리를 쭉쭉 찢기도 하고 물장구 치기도 하고 나름 운동을 하며 이야기한다. 하체는 운동 중이고 상체는 놀고. 재밌다.
이번에는 언니와 깊은 옆 레인으로 간다. 언니는 자전거를 타며 전진을 하고 필이는 콩콩 뛰며 후진 중이다. 서로 마주 보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뜻이다. 신난다. 운동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노는 듯 운동하고. 운동하는 듯 논다.
이 얼마나 좋은가. 파란수영장이 기쁨으로 가득 찬다. 역시 혼자보다는 '함께'가 좋다. 그렇게나 넓어보이던 레인이 이젠 아니다. 언니와 필이의 행복으로 가득해진다. 좋은 것은 그대로 표현된다. 콩콩 뛰는 게 아니라 춤이라도 추듯 흐느적흐느적이다. 필이 몸이 신난다고 저절로 춤을 춘다. 언니도 신나는 듯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여전히 하체는 운동 중이고 상체는 논다. 재밌다.
짝꿍 언니와 이야기 나누다 보니 어느샌가 사람들이 제법 많다.
“언니, 언니, 짝꿍 언니 없는 동안 신입이 들어왔어요.”
“신입이?”
“네, 저보다 나이가 많은 신입인데요. 애교도 많고 언니가 참 좋아요.”
며칠 전 새로 온 신입 언니가 반갑게 인사하는 틈을 타 짝꿍 언니에게 소개시켜준다. 그렇다면 이것은 즉석 소개팅? 파란수영장은 즉석 만남의 장소가 되어 소개팅이 이루어진다. 짝꿍 언니는 보이지는 않지만 목소리만으로 반갑다며 웃는다. 소개팅은 아주아주 짧게 끝난다. 갑자기 언니가 필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장난꾸러기 표정이 된다.
“그라면 우리가 선배가 되는 기가?”
“네? 선배요?”
언니의 표정이 신난다고 야단이다.
“그래, 선배. 저짜가 신입인께 우리가 선배 맞제?”
“어, 그렇네요? 맞아요. 우리가 선배예요. 선배! 하하하하하”
뭐가 그리 웃긴 걸까. '선배'라는 말이 뭐가 재밌다고 이리도 웃음이 나는 걸까. 언니의 짓궂은 표정 때문일까. 사람들로 더 행복해진 탓일까. 모른다. 이 아침에 함께 하는 기쁨이 더 크다는 깊은 깨달음을 얻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좋은 곳이어도 혼자서는 재미없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살아야 그게 사는 것이다. 결국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세상이 아닌가. 우리는 밤티와 곰티가 되어 함께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니는 여전히 입꼬리가 올라간 채 내려올 줄 모른다. 필이는 여전히 춤추듯 흐느적거리며 콩콩 뛴다. 파란수영장이 파란 물결로 가득하다. 물결마다 행복이 춤을 춘다.
파란수영장이 빨간목욕탕이 된다. 빨간목욕탕이 파란수영장이 된다. 행복의 물방울이 이 아침을 채운다. 행복하다. 웃음의 물방울이 터져 몸을 적신다. 웃음이 난다. 이 아침이, 함께 하는 이 아침이. 행복으로 물든다.
오필리아처럼~
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