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궁 언니와 나물 비빔밥, 그리고 엄마!

by 필이

“밥무러 온나.”


“네, 다음에 놀러갈게요.”


“언지, 오늘 오라고. 내일 되면 나물이 없다.”


“네? 오늘은 일하러 가야 돼요. 우리는 점심시간이 30분밖에 안돼요.”


“어어어, 저녁에 오라꼬. 저녁 무러 오면 되지.”


“네?”


수수께끼 같은 이 대화의 내막은 이러하다.


지난 주말이 짝꿍 언니 남편분의 생일이었다고 한다. 모처럼 딸 아들 모두 모여 맛있는 생일밥을 먹었다고 자랑이다. 이것저것 다 먹고 나물만 남았단다. 무슨 나물 무슨 나물. 언니가 이름을 말하는데 아는 이름 반 모르는 이름 반이다. 언니의 나물 자랑에 군침이 돈 나머지 필이의 속엣말이 튀어나온다.


“맛있겠다. 나물밥 좋아하는데.”


“나물밥 좋아하나? 그라면 밥 무러 온나.”


이때만 해도 진짜로 필이가 짝꿍 언니 집에 가서 나물밥을 먹게 될지 몰랐다. “밥 함 묵자!”는 말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또 만나자' 정도의 인사치레라는 걸 우리는 알지 않은가. 그런데 짝꿍 언니는 인사치레가 아니다. 진심이다. 객지 생활하는 딸자식 좋아하는 나물밥 해주고 싶은 진심이 가득하다. 필이는 언니 집에 가게 된다.

“니는 여 앉아 있어라. 시원하게 가만히 앉아 있어라.”


부엌에서 알짱거리는 필이는 거실로 쫓겨난다. 필이 왔다고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은 거실에서 시원하게 앉아 있으란다. 짝꿍 언니와 시누이, 미순이 언니 둘이서 부엌에서 바쁘다. 뭔가 끓이고 냉장고에서 꺼내고 수박도 썰고.


“양푼이에다가 비벼가 같이 묵자!”


“네, 좋아요. 양푼이 비빔밥. 맛있어요.”


동그란 양은으로 된 밥상에 동그란 양푼이가 놓인다. 거기에 각종 나물이 담겨진다. 밥솥에 밥을 꺼내더니 모두 넣는다.


“너거들 온다고 신랑이 밥을 마이 했다. 다 묵고 가라.”


언젠가 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언니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하면서 남편분이 밥을 해준다고 한다.


“평생 내가 해주는 밥 묵었다고. 이제는 자기가 내 밥 해준다고 하네. 귀찮다고 나가서 묵자고 해도 나가면 묵을 것도 없다면서 그래 내 밥을 해서 주네.”


언니의 말에는 남편분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공존한다.


“내는 하는 일이 없다. 해주는 밥 묵고 놀고 자고 그라면 하루 다 간다.”


평생을 해주는 밥 먹었으니 앞이 보이지 않는 아내를 위해 밥을 하는 남편! 당뇨인 언니를 위해 항상 잡곡밥을 한다는 정성 가득한 남편! 미안하다 고맙다 말하지 않지만, “해주는 밥 묵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언니 말에는 그 마음이 모두 담겨있다.


“여봐라. 상 좀 들고 가자.”


한참을 생각에 빠져있었던가 보다. 미순이 언니의 외침에 얼른 부엌으로 달려간다. 아니 걸어간다. 빠른 걸음으로!


동그란 상에는 동그란 양푼이가 커다랗게 자리를 차지한다. 양푼이 안에는 제맛을 자랑하는 나물이 가득하다. 그것을 보니 저절로 침이 고인다.


“반찬 없어도 이래 묵자. 나물이 맛이 있더라.”


죽순도 박나물도 새송이버섯도 짝꿍 언니가 직접 손질해서 말리고 삶아놓았단다. 미순이 언니와 파란수영장을 다녀오니 요양보호사 언니가 나물 양념을 다 했단다. 이때만 해도 요양보호사 언니가 파란수영장에 안 올 때다. 아니 못 올 때다. 시술한 다리에 물이 들어가면 안돼서 파란수영장을 못오고 있던 때다. 일상생활은 한다고 하더니 짝꿍 언니네 와서 청소며 반찬이며 다 만들어 놓는단다.


요양보호사 언니 이름에 나물이 더 맛있어 보인다. 만나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언니가 만들어놓은 나물을 먹게 되니 괜히 더 반갑다. 타향에 가면 고향 까치만 봐도 반갑다더니, 요양보호사 언니가 다녀갔다는 말만으로도 이렇게나 반갑다.


“친정집에 온 것 같아요. 우리 엄마도 자식이 많아가지고 양푼이에 이래 비벼가지고 잘 줬어요. 비빔국수도 양푼이에 한거 비벼가지고 먹고 나물 비빔밥도 양푼이에 이래 가지고 먹었어요.”


“엄마가 아직 젊겠네?”


미순이 언니가 나물밥을 밥공기에 담아 준다. 가득가득 담아준다.


“엄마, 돌아가셨어요.”


“어? 벌써 돌아가셨나? 나이도 그래 안 많겠구만.”


“네, 너무 젊어서 돌아가셨어요. 칠십도 안된 나이에…….”


말을 끝맺지 못한다. 짝꿍 언니도 시누이 언니도 71세다. 지금 언니들보다 더 어린 나이에 엄마는 떠난 거다. 너무도 어린 나이에. 뭐가 그리 급해서 빨리 가셨을까. 아니, 뭐가 그리 급해서 울 엄마를 빨리 데리고 간 걸까. 파란수영장에서도 빨간목욕탕에서도 60대면 어린 나이인데 뭐가 그리 좋다고 빨리도 데리고 간 건가. 하늘에 대고 묻는다. 아무런 답도 들려오지 않는 하늘에다 대고.


“마이 무라. 먹고 더 무라.”


“네. 많이 먹을게요.”


“반찬 없어도 마이 무라.”


“이게 반찬이지 뭐예요? 나물이 종류별로 다 있그만요. 죽순이랑 버섯이랑 박나물이랑 처음 먹어보는 게 너무 많아요. 이래 귀한 거를. 이거 먹으면 힘이 불끈불끈 나겠어요.”


“내가 눈만 보이면 반찬을 만들어다 좀 줄낀데.”


영락없이 딸 걱정하는 엄마다.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친정엄마다.


“아입니더. 이래와서 밥 묵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요. 친정집에 온 거 같고…….”


또 끝을 맺지 못한다. 도대체 눈물 버튼은 어디에 있는 건가. 왜 이리 수시로 눌러지냐 말이다. 얼굴 곳곳에 있는 건가. 바람에 스치기만 해도 버튼이 클릭되어 눈물이 나오도록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하여 자꾸 울컥하느냔 말이다. 맛있는 나물 비빔밥을 먹으면서.


필이가 좋아하는 나물에, 미역국까지. 이날 필이는 배가 빵빵하게 나오도록 밥을 먹는다.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래도 이거는 들어갈 데가 있다. 시원하게 하나 무라.”


짝꿍 언니는 기어이 필이 입에 수박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야 만다. 소리로 분명 보았을 것이다.


짝꿍 언니가 앞이 안보이깐 집에 오면 가만히 앉아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평생을 살아온 언니 집이다. 언니는 더듬더듬 더듬으며 가스불까지 켜서 국을 데운다. 역시 언니의 베이스 캠프는 집이다. 언니 집에서는 눈이 안 보이는 것도 불편함이 덜하다. 언니 집 자체가 언니에게 힘을 주는 것이 틀림없다. 역시 집이 좋다. 언니는 나물이며 떡까지 싸주고서야 필이를 보내준다.


“내 나물 하면 또 무러 온나.”


“네, 그럴게요. 그때도 와서 두 그릇 먹을게요.”


“그래 그래. 잘 묵어서 좋다.”


성심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할 때도 잘 먹는다고 칭찬을 듬뿍 받는다. 한센인으로 멸시받으며 살아온 세월. 누군가가 함께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어르신들에게는 기쁨이다. 필이가 가장 잘하는 것이 이것이다. 밥 맛있게 먹기! 그래서인가 보다. 성심원에서도 사랑받던 것은. 이제 짝꿍 언니에게도 사랑 가득 받는다. 밥 잘 먹는 필이를 더 예뻐하니. 이 이상 얼마나 더 사랑을 받을래나. 상상할 수조차 없다.


나물밥 한 그릇에 사랑이 가득 담긴다. 그 옛날 자식 배불리 먹이던 엄마표 나물 비빔밥. 엄마표 사랑이 고소하다.




오필리아처럼~

필이~^^*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