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시끌
파란수영장 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시끄러운 소리가 야단이다. 조그만 소리도 크게 들리게 만드는 멀티 서라운드 스피커 물방울들이 실어날으는 소리들로 파란수영장은 잔칫집이다.
팔순 잔치쯤 될까? 아니다. 백수연 잔치다. 백세를 축하하며 장수를 기리는 성대한 잔치! 아니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공주와 왕자의 결혼식이다. 그 정도로 시끌시끌 파란수영장이 들썩인다.
샤워실을 나와 막대스티로폼 하나랑 킥판 하나를 챙긴다. 역시 사람이 많다. 딱 봐도 어제보다 두 배, 아니 세 배는 되겠다. 파란수영장 물 속으로 들어간다. 계단으로는 내려가지 못하니 빙 둘러서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곳으로 간다.
반쯤 걸어갔을까?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이게 누군가? 어제 분명 이제 아침에 안 온다고 했던 짝꿍 시누이 미순이 언니가 아닌가? 침침한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최대한 초점을 맞춰본다. 맞다. 미순이 언니가 맞다. 심지어 필이를 향해 방실방실 웃으며 손을 크게 흔든다. 손이 반갑다고 휘엉청 휘엉청 좌우로 움직인다. 엄청 반갑다한다. 그제야 필이도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미순이 언니가 왔다는 것은 짝꿍 언니가 왔다는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물속으로 들어간다. 아니. 그런데 이게 또 누군가?
초급 레인 끝에 서서 중급 레인 오리발, 호식이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언니는 분명, 요양보호사 언니다. 팔을 뒤쪽으로 살짝 올려두고 여유있는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 요양보호사 언니다. 언니가 맞다. 너무 반가워 나도 모르게 물속에서 뛴다. 오늘따라 물살은 어찌하여 이리도 저항한단 말인가. 필이의 넓은 면적만큼이나 강한 저항으로 필이를 밀어댄다. 그러지 마라. 물살아. 얼른 언니 만나러 가야 한다. 필이 몸이 홀쪽한 멸치라고 생각해주라. 응? 필이는 물살을 달래가며 열심히 물속에서 뛴다. 파란수영장 물방울이 필이 말을 알아듣는다. 물살이 길을 열어준다. 거대한 물소가 홀쪽이 멸치가 되어 물살을 가르며 달려간다.
“언니!”
언니 왼쪽 어깨를 ‘툭’하고 치며 필이를 바라봐 주기를 기다린다. 잠시도 못 기다리는 필이는 또다시 언니 어깨를 톡톡 친다.
“언니, 이제 괜찮은 거예요?”
그제야 언니는 필이를 본다.
“어, 살살 하면 된다.”
그러고는 다시 호식이 아저씨와 이야기한다. 병원 다녀온 이야기가 한창이다. 필이도 궁금하던 것이라 언니 앞에 버티듯 서서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제 언니는 필이를 향해 이야기를 한다.
“무릎이 인대가 끊어졌다는데 그것도 모르고 와이리 아프노 그라고만 있었던 거라.”
“인대가 끊어진 거예요? 완전히? 그라면 수술 했겠네요?”
“인대가 끊어졌으면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이 사람은 수술 안 하고 시술을 했다 카네?”
호식이 아저씨가 대신 대답을 한다. 호식이 아저씨도 올 1월인가? 2월인가? 올해 초에 무릎 수술을 했다고 한다. 양쪽 무릎 모두 인공관절 수술을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리 아픈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한다. 필이 다리도 그냥 놔두지 말고 서울 병원에 가라고 한다. 젊은데 왜이리 내버려 두냐면서. 병원은 꼭 서울로 가야 한다면서. 필이 대신 걱정을 해주신다.
다섯 살에 아빠가 돌아가셨다. 아빠의 정도 아빠에 대한 그리움도 없는 필이다. 만약 아빠가 지금 살아계신다면 이렇게 걱정해주실까?
“필이야, 다리 뻣뻣하고 저리는 거 오래 놔두면 안 된다. 얼른 병원 가자. 서울 병원으로. 서울에 큰 병원 가서 제대로 검사받고 치료받자. 필이야, 아직 젊은데 이 다리로 어짤라고 그라노. 얼른 치료받자. 얼른!”
햇빛을 머금은 물방울에 아빠 얼굴을 그려본다. 형체도 없이 빛만 반짝이는 물방울. 그곳에 아빠가 있는 듯 잡아본다. 물방울이 '톡'하고 터져버린다. 역시 아빠는 어렵다. 함께 한 기억 그 무엇도 없으니 그리움도 없다.
'아빠'라는 이름 자체에 대한 그리움만이 허공에 맴돈다. 내것이 아니라는 듯. 아빠에 대한 그리움은 필이것이 아니라는 듯 그렇게 날아가 버린다.
그래도 좋다. 호식이 아저씨의 걱정어린 말에 잠시나마 아빠를 떠올릴 수 있었으니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분명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이리 걱정해주셨을 테니. 그렇게 상상 속에서 아빠의 사랑을 받는다. 그것이면 된다.
“니는 수영 좀 늘었나?”
필이의 상상을 깨듯 요양보호사 언니가 필이를 향해 묻는다. 언제 언니 병원 다녀온 이야기가 끝이 난 걸까? 허리는 협착으로 시술 후 아주 상태가 좋아졌다고 한다. 다리도 지금은 붓기도 다 빠지고 통증도 거의 없다고 한다. 언니는 어찌 된 게 회복도 이리 빠른가? 악기며 수영이며 배우는 것도 빠른 언니가 몸에 구멍을 내서 시술을 하고도 이렇게 회복이 빠르다. 참말로 신기한 능력자 언니다.
“실력이 늘기는요. 아직 발차기도 못 하고 반 정도 겨우 가는데요.”
“내 말 안 하더나. 발차기만 해서 끝까지 가는 거가 더 힘들다고. 팔을 이렇게 있제? 팔만 돌리지 말고 어깨를 이렇게 쭉 내미는 거라. 그라면 앞으로 쭉 간다. 팔만 이라면 앞으로 안가. 그라고 숨쉬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제? 숨쉬기만 되면 앞으로는 그냥 간다.”
하하하하하.
역시 언니다. 언니는 오자마자 필이에게 수영 강습을 해준다. 팔을 휘저어가며 어깨를 쭉 내밀어 가며 숨쉬기를 해가며 리얼한 가르침이다.
언니의 가르침에 힘입어 필이가 수영을 시작한다. 두 발을 모아 살짝 올린 뒤 레인 벽을 박찬다. 그 힘으로 앞으로 쭉~ 나가는 필이, 발차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왼팔부터 돌리고 어깨를 쭈욱, 오른쪽 어깨를 살짝 들며 숨 쉬고 팔을 쭈욱, 어쩐일이지? 필이가 앞으로 나간다. 어설프긴 하지만 앞으로 앞으로!
앞장 섰던 언니가 레인 끝에서 필이를 기다린다. 필이도 한 번도 쉬지 않고 레인 끝에 다다른다.
성공이다! 성공이다!! 성공이라고!!!
마치 승리를 거머쥔 선수처럼 기쁨에 가득 찬 얼굴로 허덕인다. 숨을 몰아쉬면서도 얼굴은 기쁨으로 어쩔 줄을 모른다.
“잘하네? 많이 늘었다.”
언니가 칭찬한다.
“신기해요. 언니가 오니깐 바로 되네요? 계속 몸도 무겁고 안됐거든요. 반도 겨우 갔는데. 우와. 언니가 오니깐 되네. 이제야 되네.”
필이가 신난다. 성공한 기쁨에 신이 난다. 요양보호사 언니가 돌아와서 기쁘다. 회복한 몸으로 파란수영장으로 돌아와서 기쁘다.
역시. 역시다.
요양보호사 언니가 돌아오니 이제야 수영장이 제대로 돌아간다. 있어야 할 사람이 다 있으니 이제야 파란수영장이다.
파란수영장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필이가 파란수영장에 오고 난 이후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는 듯하다. 그것마저 기쁨이다.
“역시 사람이다. 필이는 사람이 좋다.”
수영을 마치고 나오는 길,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실실 웃는다.
요양보호사 언니가 돌아왔다.
파란수영장으로!!
언니가 돌아왔다.
오필리아처럼~
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