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잘 커준 내새끼!

by 필이

아들아,

여덞 번째 편지를 쓴다.

나중에는 이 숫자가 의미 없을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엄마의 현재 목표는

내년 2월,

네가 엄마와 있는 날까지의 기억을

기록해놓고 싶은 거란다.


지난 번 네가 말한

우리 추억 만들기로 말이다.


넌 엄마와 여행을 가자고 했고

엄마는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쓴다고 했지.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을 쓰고 싶다 약속한다.

엄마 스스로에게 말이다.


지난 주 토요일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싶구나!


전날 금요일에

고려대학교에 갔을 때만 해도

엄마 마음이 이렇지는 않았단다.


학교가 너무 좋다는 생각만 했다.

그날 날씨가 너무 좋았지 않니?


카메라만 갖다 대면

작품이 되는 그런 날씨에

그렇게나 멋진 교정!


엄마는 거기에 빠져

다른 생각은 깊이 하지 못했단다.


네가 벤치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더구나.

그때서야 마음이 이상해지더구나.


그 건물이 다음날

네가 면접 볼 건물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넌, 그때 무슨 생각을 했니?

어떤 마음으로 앉아 있었니?


단순히 면접을 잘 보게 해달라는 것

같진 않더구나.

네 표정이 너무 진지했거든.


엄마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카메라도 내려놓은 채

엄마 또한 숙연한 마음으로 있었단다.


엄마도 무슨 마음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면접 잘 보게 해달라고 한 것 같진 않다.

누구에게인지 알 수 없지만

네가 가는 길을 축복해달라고 했던 것 같다.


다음날이지?

면접 당일 말이다.


7시라 일찍 도착했다 생각했는데

벌써부터 줄이 길더구나!


고려대 선배들이 나와서

깃발을 흔들며 큰소리로 응원해주는 모습에

저절로 힘이 났지.


너도 내년이면 저 자리에서

네 후배들을 응원해주면 좋겠다고 했지.


나란히 줄을 섰는데

부모님들은 옆으로 빠지라고 하더구나?

수험생들만 줄을 선다고 말이다.


함께 줄 섰던 부모들이

모두 옆으로 비켜났지.


엄마도 비켜나야 했단다.

너를 꼭 안았지.


잘 할 거라고

사랑한다고

엄마가 함께 한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목에 눈물이 차오르더구나.


말을 할 수가 없어 안고만 있는데

네가 엄마를 꼭 안아주더구나.


엄마 마음 다 안다는 듯이

그렇게 말이다.


눈물을 겨우 참는다.


너와 주먹 인사를 하고는

널 두고 옆으로 나왔단다.


혼자 서 있는 너를 보는데

어찌 그리 눈물이 나냐.


네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먹었단다.


마지막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서도

엄마는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더구나.


부모들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서도

계속 서성였단다.


그러다 의자에 앉아 있는 부모들 틈에

엄마도 앉아서 기다렸단다.


그순간 알았다.

엄마 눈물의 의미 말이다.


엄마라고 해준 게 정말이지

하나도 없더구나.


넌 중학교 3학년,

아니다.

고등학교 1학년 4월,

지금 있는 작은 아파트로 이사오기 전까지

넌 네 방도 없었다.


15평 산골 작은 집에서

사느라 네 방이 따로 없었지.


어릴 때는 엄마와 안방에서 지냈지.


커서는 네 방이 없어 걱정하는 엄마에게

넌 거실에 네 침대만 있어도 좋겠다고 했지.


정말로 그러고 살았다.


거실도 작은 공간이라

싱글 침대 하나 두고

그 테두리로 3단 책장으로 막아

방을 만들었다.


현관 문만 열면 바로 네 침대가 있고

거실 유리창으로는 네가 다 보이는

그런 곳이었지.


그것으로도 그리 행복해하던 너다.


책상도 둘 곳 없어

식탁에 앉아 공부하던 너.


그런데다

엄마의 긴 병원 생활.

그 동안

넌 혼자서 지냈지.


여름 방학 3주면 온다던 엄마가

그 길로 입원해

4개월이 넘는 병원 생활을 해야 했지.


산골에서 혼자 지내며

넌 학교를 다녔다.


다행히도 통학버스 기사님이

너를 잘 챙겨주셨다.


우리 마을 입구까지 통학버스가 다닐 때라

정말 다행이기도 했다.


하루는 말이다.

네가 버스 타러도 안 오고

전화도 안 받는다는 연락을 받고

엄마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넌 분명히 일어났다고

엄마 전화를 받았는데 말이다.


옆 옆집에 사는

엄마 학교 선생님에게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거실 창으로 들여다보니

네가 자고 있다더구나.


유리창을 두드려 깨워주었다.


버스 기사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택시를 불러주셨다.


넌 얼른 챙겨서

택시를 타고 학교를 갔지.


참 마음이 아프더구나.


엄마 전화를 잠결에 받고는

그대로 다시 잠든 너를.

버스 기사님이 전화를 해도

받지 못할 정도로 잠에 취한 너를.


엄마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는지 모른다.


엄마가 곁에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데.


다리도 쓰지 못하는

엄마 몸이 그렇게나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교복 빨래 다 해가며

네 손으로 밥해먹으며

4개월이 넘는 기간을

넌 혼자서 살았다.

아니 살아냈다.


네가 중학교 2학년 때다.


담임 선생님도 이 사실을 나중에야 알고

너를 무척 칭찬해주었지.

대단한 아이라고 말이다.


그래, 맞다.

넌 정말 대단한 아이다.


엄마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중학교 2학년 나이에

혼자서 산골짝에 살면서


통학버스 타러 마을 입구까지 오르내리며

내 손으로 교복 빨아 입고 밥해먹으며

청소하고 챙겨서 학교를 다닐 수 있을까?


주변이라고는 숲과 하늘이 다인

그런 산골에서 말이다.


살 수 있다 말하지 못한다.

아니,

살 수 없다 말한다.


그런데도 넌 살아냈다.


그것도 엄마 걱정할까

늘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목소리 조차 밝게 그렇게 말이다.


택배 조차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

그것도 밤 12시에 마을 회관에 가져다 놓지.


넌 필요한 게 있으면 엄마에게 말하고

엄마는 택배를 시켜주지.


토요일 오전이면

넌 이마트 장바구니를 들고

마을회관으로 택배를 가지러 가지.


차도 없이

그 오르막을

택배를 들고 걸어갔을 너를 생각하니

이또한 마음이 아프다.


4개월 넘는 병원 생활 끝에

엄마라고 집에 돌아왔어도 다리를 절며

제대로 생활을 할 수 없는 엄마로 돌아왔지.


그것도 마음 아파하며

엄마 걱정을 했다.


집이 엉망이라며 제대로 못 치웠다고.

너무도 당연한 말을

넌 엄마에게 미안해하며 말하더구나.


너무 빨리 커버렸다.

널 너무 빨리 어른이 되게 한 것만 같다.

아픈 엄마로 인해

평범하지 못한 가정으로 인해

넌 너무 빨리 어른이 되었다.


이것 또한 마음이 아프다.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넌 마음이 따듯한 어른인 거다.


나이만 먹고 몸만 자란 어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챙길 줄 알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그런 멋진 어른이 되었다.


엄마 넘어질까

손 꼭 잡고 다니는 너의 따듯한 마음.


이번 서울에서도 말이다.

서울은

어찌 그리 계단이 많으냐?


가는 곳마다 지하철을 갈아타야 해서

여간 애먹는 것이 아니다.


엘리베이터 찾는 것도 힘들고

하는 수 없이 계단을 오르내려야 할 때마다

넌 엄마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엄마, 발 밑을 보고 걸어. 계단이 미끄러워."


어린 아이 챙기듯 엄마를 챙기더구나.


가만 생각해보니

서울 어디를 가도 넌 엄마 손을 꼭 잡아주었다.


어릴 적

엄마가 잡아주던 손을

이젠 네가 엄마를 잡아주는구나!


어느새 엄마보다

키도 손도 더 커버린 아이야,


고맙다.

너무도 잘 커줬다.

그렇게나 못한 환경에서도

넌 이렇게나 잘 커줬다.


그래서였다.

그 아침 네가 면접가는 모습을 보며

엄마 목에 차올랐던 울음은

바로 너에 대한 미안함.


그런 환경에서도

너무도 잘 커준 너에 대한 대견함.


학원 하나 다니지 않고

면접 준비도 혼자 다 하면서

당당히 면접장으로 향하는 네 모습.


비록 엄마 혼자지만

너를 든든히 지켜줄 거야.


니가 아무리 엄마보다 덩치가 더 커져도

마음 품만은 엄마가 더 클 거다.


그러니

비록 아프고 삐거덕거리는 엄마라도

엄마를 믿고 세상을 살아가렴.


네 곁에는 든든한 엄마가 있다는 걸

기억해.


아이야,

엄마보다 더 커버린 아이야,


사랑한다.

넌 잘 할 거다.

엄마가 늘 함께 한다.


목이 차올라 하지 못했던 말.

지금 한다.


어제 연세대도

1차 합격 발표가 났다고 신나 했다.


자!

이번 주는 우리 연세대로 출동하자구나!


네 덕분에

촌엄마가 서울 대학 구경 잘 한다.


고맙다.

아이야,

정말 고맙다.


잘 커줘서.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줘서.


정말 고맙다.

예쁜 내새끼야.




2025년 10월 28일

화요일 밤 9시 44분


에잇!

안 울랬는데


오늘도 편지 쓰며

훌쩍훌쩍 거리고 있는 엄마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