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행을 다녀온다. 바다를 실컷 보고 온 날 글을 쓴다. 글에는 바다가 담긴다. 바다가 좋다며 찬양한다. 해뜨는 바다도 해지는 바다도 한낮의 바다도 한밤의 바다도 좋다며 감탄에 감탄이 더한다.
그러다 생각한다. 그 언젠가도 아이와 함께 바다를 가고 바다를 찬양하며 글을 썼던 기억이 있다는 것을!
그러다 생각한다. 엄마는 바다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아이는 바다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없다는 것을! 아이가 깨면 묻기로 한다. 바다를 좋아하느냐고!
"원아, 니도 바다 좋아하나?"
아이가 일어나자 마자 묻는다. 조식을 먹으러 가기 위해 조금 일찍 깨운 탓인지 아이는 아직 잠에 취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다. 당연히 엄마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대답조차 없이 찌푸둥둥 엄마만 바라본다.
"아니, 니도 바다 좋아하냐고. 어제 저녁에 노을지는 바다 보자고. 니가. 그래가 한참이나 돌계단 그 차가운데 앉아가지고 바다 실컷 봤잖아. 그러니깐 니도 바다 좋아하는가 하고……."
"아……."
아이는 이제야 엄마의 질문을 이해한 듯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눈곱도 떼어내고 마른 세수를 하듯 손으로 얼굴도 비비면서. 잠이 다 깬 듯 아예 침대에서 일어난다.
"산이냐? 바다냐? 둘 중에 골라라고?"
"말하자면 그렇지."
"그럼, 난 산!"
"어? 산?"
이번에는 엄마가 어리둥절 아이의 말을 이해 못하는 표정이다. 당연히 '바다'라고 할 줄 알았다. 어제만 해도 그렇게나 바다에 오래 앉아있지 않았는가. 춥다고 가자고 그래도! 엉덩이 차갑다고 일어나자고 그래도! 하늘빛이 변하는 모습을 봐야 한다며. 하늘빛이 바다를 물들이는 걸 봐야 한다며 얼마나 오랫동안 앉아 있었던가.
이번만이 아니다. 작년에도 바다에 무척이나 오래 있었다. 자주 있었다. 엄마 다리가 아프다고 그러면 손을 잡고 챙겨주면서도 기어이 바다로 데리고 간다.
이번에도 그렇다. 해운대 바다가 얼마나 긴가. 그 바닷가를 얼마나 걸었는가 모른다. 엄마가 다리 아파하거나 힘들어하면 엄마를 쌀포대 짊어지듯 어깨에 걸치고 가겠다며 그 거리 한복판에서 쌀포대 짊어지는 시늉을 하며 엄마를 걷게 만든 아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는 또 어떤가.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진 엄마가 '바다바다' 노래 부르다 가까운 삼천포 바다를 가지 않았나. 해운대 바다처럼 넓고 파도치는 바다가 아니라 실망하는 엄마에게 잔잔한 바다도 좋다며 오히려 다정하게 위로해준 아이가 아닌가.
그러니 당연히! 너무도 당연히! '바다'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산이라니! 엄마의 어리둥절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
"어? 산이라고? 그런데 너 왜 만날 바다로 가자고 그래? 이번에도 니가 해운대 오자고 했잖아."
"그건, 엄마가 산에 못가니깐 그렇지. 바다도 좋지만 산이 좋아."
"아!"
엄마의 대답은 아주 짧게 끝난다. 그랬구나. 엄마가 산을 가지 못한다. 그러니 당연히 바다를 선택한 것이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바다만큼 산에 많이 갔다. 울 아이가 여섯 살 때 지리산을 다녀왔고 제주도 여행에서는 항상 오름을 오른다. 엄마가 오름을 좋아해서 한때 제주도 오름 모두를 아이와 함께 오르며 그것으로 책을 내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자연휴양림도 참 자주 다녔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휴양림에서 보낸 적이 많았음을 기억한다. 여름에는 계곡물에서 물놀이를 하고 겨울이면 꽁꽁 언 산에서 논다.
아이는 엄마 배 속에서부터 산을 다닌다. 집이 산골이니 마을 한 바퀴만 돌아도 산이요. 뒷산으로 조금만 가면 저 아래 마을까지 다 보이는 전망좋은 곳이 나온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산과 함께이다.
아이가 조금 자라 엄마 손 잡고 걷기 시작할 때부터 뒷산으로 어슬렁거리며 산책을 다닌다. 길을 오가는 모든 것이 아이에게는 놀이터다. 나무작대기 주워다가 지팡이처럼 짚고 가기도 하고 그러다 그 작대기로 흙을 파기도 하고. 놀멍 걸으멍 걷다 보면 어느새 우리가 늘 가는 산 중턱에 다다른다. 전망좋은 넓은 곳!
이곳에 작은 돗자리를 깔고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는다. 도시락이라고 해도 집에 있는 밥과 반찬으로 싸온 것이라 정말 별것 없다. 그래도 그 맛은 꿀이라도 발라놓은 것마냥 맛있다는 걸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다 알 것이라 믿는다. 보온병에 타온 따듯한 차와 함께 하면 이곳이 낙원이요, 무릉도원이 된다.
기억 저 편 속에 밀어둔 산에 다녔던 추억들. 그믈에 멸치가 걸려 줄줄이 달려 올라오듯이, 고무마 뿌리에 고구마가 쪼로롱 달려 함께 올라오듯이, 그렇게 떠오른다.
왜 몰랐던가. 산도 좋아하던 엄마였다는 걸.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배 속에서부터 산의 품에서 놀았다는 것을 왜 잊고 있었던가. 꽁꽁 숨겨둔 비자금처럼 찾지 못하는 추억이 되어 버렸던가.
엄마가 다리 수술하고 나서부터구나! 엄마 다리가 예전의 다리로 돌아가지 못하면서부터 산을 밀어냈구나! 처음부터 바다만을 좋아했던 것처럼 산이라는 존재 자체를 숨겨버렸구나!
그걸 이제야 안다. 아이의 말을 듣고서야 이제야 알아채는 엄마다.
다리 아픈 엄마를 위해, 바다만을 좋아했던 것처럼 기억을 지워버린 엄마를 위해, 언제나 바다로 여행을 가자고 하는 아이라니!
바다도 좋아하지만 산을 더 좋아한다는 아이의 말에, 엄마가 산을 못가니 당연히 바다를 여행지를 한다는 아이의 말에, 또다시 코가 찡해오는 엄마다. 한꺼번에 사이다를 잔뜩 마신 것처럼 코가 아리아리해온다. 속눈썹에는 또다시 물방울이 매달리고야 만다.
이제는 갈 수 없는 산. 이제는 오를 수 없는 산의 품. 그것을 대신하듯 엄마는 바다만을 찾아왔다. 처음부터 바다만 사랑한 사람처럼! 산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처럼! 산도 사랑한 엄마였음을, 어쩌면 아이의 기억 속에는 산과 함께 한 추억이 훨씬 더 많음을 이제야 이제야 알고마는 엄마다.
마음이 이상하다. 산과 바다. 전혀 다른 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의 자연으로 하나의 우주로 이어진다. 그러니 이젠 산을 가지 못해도 바다에서 산의 품을 느낄 것이다. 아이가 일깨워준 산의 사랑을 이제는 밀어내지 않겠다. 이젠 꽁꽁 숨기지 않겠다.
산이냐 바다냐
둘 다다!
아이가 일깨워준 우주에는 산도 바다도 모두 다 있다. 그것을 알게 해준 아이에게 너무도 고마운 밤이다.
오필리아처럼~
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