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열세 번째 편지를 쓴다.
오늘이 13일,
수능시험 날인데
열세 번째 편지라고 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괜히 의미를 붙이는 거겠지.
그렇지?
오늘은 그렇구나.
의미 붙이는 거 좋아하는 엄마지만
오늘따라 더 그렇구나.
마음이 이상하단다.
수시전형 지원해서 대학 가는 것이기에
수능시험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던 너였다.
수능을 안 쳐도 되는데도
수능을 친다고 말이다.
왜냐고 묻는 엄마에게
넌 그래도 이 나이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
시험을 치고 싶다고 답하더구나.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버렸다.
그러면서 넌 그랬지.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 기대된다고.
앗!
이런이런
이 말을 듣고 엄마는 덜컥 했단다.
요리 못하는 엄마라
수능 도시락통을 구입할 때부터
엄청 부담이 되고 있었단다.
그나마 잘 끓이는 국은 미역국인데
수능날 미역국을 끓일 수도 없고 말이다.
너와 의논 끝에
숙주넣은 소고기국이랑
그나마 엄마가 자신있게 만드는
잔멸치볶음을 하고
무우말랭이를 조금 사서 가기로 했다.
달걀프라이 하나 밥에 얹고 말이다.
네가 갑자기 멸치볶음 말고
소고기 장조림이 먹고 싶다고 하더구나?
소고리 장조림은
엄마가 해본 적도 없는 것이다.
한 번씩, 어쩌다 한 번씩
사서 먹는 반찬이다.
그걸 먹고 싶다고 하더구나.
결국
어제 퇴근하며 장을 봐왔다.
무우말랭이무침이랑
소고기장조림을 사고
혹시나 해서 일미무침도 샀다.
모든 것이 만들어진 반찬이지.
숙주랑 소고기만이
유일하게 엄마가 만드는 음식의 재료구나.
생각해보면 달랑 국 하나 끓이는 건데
엄마는 몹시도 분주했다.
오랜만에 하는 음식에
집에는 음식 냄새가 가득하다.
넌 엄마가 해주는 밥 먹는다며
좋아하더구나.
졸업하기 전까지
네가 이 집을 떠나기 전까지
엄마가 해주는 밥 실컷 해줄게
장난처럼 말했지.
속으로는 얼마나 뜨끔했는지 모른다.
요리 못한다고
음식 못한다고
만들어봤자 만날 남고
안 먹게 된다고
온갖 핑계와 변명으로
점점 더
음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철저히 느낀 것이야.
음식 솜씨 좋은 엄마들을 보면
아이를 위해, 가족을 위해
정성껏 요리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부럽기만 하다.
그렇게 못해주는 엄마라
미안한 마음만 잔뜩 쌓이고 말이다.
음식은 안하니 더 안해지더구나.
더 솜씨도 없어지고 말이다.
이 말을 이렇게나 길게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네가 수능시험장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 뒷모습을 보는데
엄마는 그 자리에서 떠날 수가 없더구나.
발이 땅바닥에 딱 붙어버려
돌아올 수가 없더구나.
계속 들어오는 차들에
엄마 차라도 얼른 빼줘야 하건만
네가 들어가서 보이지도 않는 학교 건물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다.
한참이 지난 후에나
엄마는 돌아올 수 있었단다.
뭔지 모를 마음에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차라리 몸을 움직이자며
설거지를 하고 밥솥 정리까지 다 해버렸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더구나.
멍하니
멍하니
그러다 뉴스를 들었다.
역대 만점 받은 아이들의
수능도시락에 대해 나오더구나.
평소 먹는 순두부나 맑은 국,
달걀말이 같은 것이었다고 하더구나.
고기는 소화에 부담스러울 수 있어서
피해야 한다고 말이다.
아차 싶었다.
엄마가 끓인 건 소고기국이니깐.
맑은 국으로 끓인 것이지만 괜찮을지.
네가 먹고 싶다고 해서
사긴 했지만
어제 저녁으로 먹어보고 좋아한 너지만
그래도 수능 도시락으로 소고리 장조림이라니.
그것도 손수 만든 것도 아니고
마트에서 산.
엄마 마음이 다시 덜컥 하고 내려앉았다.
그제야 알았단다.
네가 수능을 안 쳐도 되는데
치고 싶다고 했던 마음을.
넌
수능치는 날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일생에 단 한 번 있는
중요한 시험을 친다는 긴장감,
시험을 끝내고 났을 때의 시원함.
이런 것들을
느끼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처음엔
여기까지만 생각했단다.
하지만
도시락 이야기를 듣고
다시 생각되었다.
그것보다 더 큰 것은
수능날이라고 챙겨주는
엄마표 도시락을 먹는 재미를
느껴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수능날이라고
분주하고 긴장된 그 모든 것을
느끼고 싶었던 거라는 그런 생각.
그것을 깨닫고 나니
엄마가 너무도 미안하더구나.
집에 돌아와 국을 살짝 맛 봤단다.
혀만 살짝 대보았지만 여전히
엄마 입에는 짜더구나.
단식한다고 간 보는 것도
너에게 맡겼지.
넌 괜찮다고 맛있다고 하더구나.
단식하는 엄마 입에는
혀만 대보아도 짜기만 한데 말이다.
하필, 왜 이 시기에
단식을 한다고 했을까
그제야 후회를 했단다.
수능을 마치고 온 너와
맛있는 것도 먹고 축하도 해줘야 할텐데.
왜 지금 이 시기에 단식을 한 건가.
정말 후회했단다.
시험을 안 쳐도 되는데 치는 것이라고
엄마가 너무 쉽게 생각해버렸다는 것을!
네가 어떤 마음으로
시험을 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이야기를 좀 더 나누어야 했다는 것을
이제야 이제야 후회하며 깨닫는다.
너에게 미안한 마음이
끝이 없구나!
아침부터 생선 굽는 냄새며
맛있는 음식 냄새를 풍기는
옆집을 지날 때마다
너에게 미안한 마음이 큰데 말이다.
오늘이야 말로
미안함의 결정체인 듯하다.
안되겠다!
음식 투정도 없이 잘 먹는 울 아이,
너를 위해서
남은 날 우리 밥 많이 해먹자!
엄마표 밥을 많이 많이 해줄게.
엄마가 유튜브를 보고 배워서라도 한 번 해볼게.
주중에는 닭가슴살 샐러드를 먹는 너이기에,
주말에나 한 끼 잘 먹는 너인데,
그런 것도 엄마가 잘 못해주었다니.
하긴
주말마다 엄마가 많이 바쁘긴 했구나!
이것 또한 새삼 미안하다.
어쩌지.
안되겠다.
이번 편지는 여기서 급 마무리를 해야겠다.
너에게 자꾸자꾸만
미안한 마음이 올라와서 안되겠다.
성인이 되기 전 마지막 관문처럼
넌 수능 시험장으로 들어간다.
그걸 왜 몰랐을까.
너에게 오늘이 어떤 날인지.
어떤 의미로 시험장에 가는지.
고대 연대 면접갈 때와는
완전히 달랐던 엄마 마음.
정말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남은 날이라도 우리 해보자!
미숙한 엄마지만,
솜씨 없는 엄마지만,
네가 도저히 못 먹겠다고
하지 말라고 할 때까지
네가 먹고 싶은 거 물어보고 다 해줄게.
그래 그러자.
휴우~
이제야 살겠구나!
네게 미안함이
자꾸 자꾸만 커져서
엄마가 감당이 되지 않았거든.
사실
편지를 쓰다가 도저히 안돼서
잠깐 쉬었단다.
정목스님의 명상을 틀어놓고
숨쉬기도 하고 지금은
정목스님의 싱잉볼 영상에
마음을 내려놓고 있단다.
지난 날,
오늘 아침까지도,
네게 미안한 건 어쩔 수가 없으니
지금 이순간 이후부터라도
최선을 다하자고 말이다.
음식 솜씨 없어도
엄마가 해주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는 너인데.
이제 더 많이 해서 먹자.
주말 일정도
지금 정해진 건 어쩔 수 없지만
최대한 잡지 않을게.
너와 더 많은 시간 보낼게.
그래, 그러자. 아이야.
네가 함께 있는 날 동안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아끼고
더 많이 노력할게.
'못하는 것도 나'라고 핑계대지 않을게.
못해도 해보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줄게.
이건 너에게 하는 약속이며
엄마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이야.
쉬었다 와서인지
글이 너무 길어졌다.
이제 그만할게.
아이야,
19년 시간 동안 애 많이 썼다.
오늘 하루로 모든 것이 결정이 된다거나
마무리 되는 건 아니라는 거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그럼에도 이젠 정말
미성년으로서의 시험은 마지막이구나!
축하한다.
네가 돌아오면 더 세게 안아줄게.
아침에 안아준 것보다 더 꽉 안아줄게.
그리고 우리 축하하자.
엄마는 아직 단식중이라 먹지 못하지만
네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함께 축하할게.
그래도 되겠니?
고마운 내새끼.
예쁜 내새끼.
2025년 11월 13일.
목요일. 낮 12시 28분.
점심 시간 냄새가
엄마를 유혹하는구나!
하지만 엄마는
단식 마무리를 잘 할 거야.
엄마가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그렇지? 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