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열네 번째 편지를 쓴다.
날씨가 무척 추워졌구나.
어딘가에는 첫눈이 내렸다지?
그래서인지 이번주는
산골에 살 때 생각이 많이 났단다.
생각나니?
눈이 펑펑 내린 날,
우리집 데크에 눈이 제법 쌓였지.
넌 패딩을 입고 장갑을 끼고
모자까지 쓰고 나가더니
데크에 벌러덩 눕더구나.
그러고는 어디서 본 것인지
'러브스토리' 영화를 찍더구나.
팔과 다리를
아래위로 올렸다 내렸다하며
콤파스가 동그라미를 그리듯
눈에다가 네 모양의 동그라미를 그렸지.
옆에다가는
'엄마, 사랑해'라는 글자도 쓰고
하트도 그리고
알 수 없는 그림들도 그렸지.
눈사람도 만들었다.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
데크 난간에 나란히 세워두었지.
엄마, 아빠, 원이라며.
다음날 태양에
눈사람은 금세 녹아버렸지만
데크에 새겨진 눈 모양은
그래도 제법 오래 갔다.
글자가 다 지워지고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우리는 알지 않니?
무슨 글이 새겨져 있는지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
첫눈 소식에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이렇듯 낭만적인 산골 생활을
떠올리던 이야기만을 쓰고 싶었는데
지금 엄마 상태가
그렇지가 못하구나.
산골 생활의 행복을 떠올리는 것으로도
회복되지가 않는다.
그 정도로 힘듦이
지금 엄마 상태란다.
늘 하는 말처럼
일이 힘든 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데
사람이 힘든 것은
어떻게 하기가 참 힘들다고 말이다.
지금이 그렇다.
학기초부터 힘들게 하던 분이
계속 해서 민원 제기를 하며 힘들게 하더니
급기야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었구나.
전무한 일이라 학교도
교육지원청도 야단이다.
직격탄을 맞은 엄마나 옆반 선생님은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될 정도로 답답하다.
속은 시커멓게 타고
얼굴은 시뻘겋게 익고
온몸은 퉁퉁 붓기까지 한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엄마라
더 그런지도 모른다.
지난번 극심한 스트레스로
다리가 찢어질 듯 아팠던 때가 떠오른다.
스프레스가 염증을 유발했다고 했지?
온갖 다리에 통증을 다 느끼지만
살이 결대로 찢어지는 그 느낌은 처음이었다.
앉지도 서지도 심지어 눕지도 못하던 그때.
그것이 스트레스 때문이었다고 해서
참 허망하기도 했지.
갑작스러운 스트레스로
내 몸이 반응한 것이라고.
지금도 그렇게 될까 겁까지 난다.
아니겠지.
그때보다는 멘탈이 강해진 엄마겠지?
다행인 건
옆반 선생님과 서로 위로하며
서로 신세 한탄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다는 거다.
이것은
내일 니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니깐.
선생님은 자신이 담당인데
엄마가 애써준다며 고맙다고 했지만
그건 아니다.
이건 우리의 문제다.
담당이 중요한 게 아니다.
행한 분은 자신이 한 행동으로
사람이 얼마나 피마르며 죽어가는지를 알까?
하긴,
안다면 그러지 않겠지.
상황을 설명하며
최선을 다했건만.
결과는 참 처참하다.
문제는 학교라는 경직된 사회다.
민원이 제일 무섭다고 하더구나.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볶아서 이 일을 덮으려고 한다.
이럴 때마다 회의가 온다.
나름 자부심을 갖고 하는 일이
무참히 부서진다.
대안학교와 해결하는 방식이 너무도 달라
더 힘든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교육이 왜 나아가지 못하는가
절실히 느낀다.
아,
아들아.
어쩌다 엄마의 신세한탄 글이 되어 버렸다.
처음 말한 것처럼
우리 산골 살 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단다.
커다란 양푼이에 밥을 비벼서는
집 뒤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올라가 먹었던 이야기.
마당 한 쪽에 심어놓은 딸기 모종이 자라
딸기가 열렸을 때 무척 기뻐했던 이야기.
딸기가 빨갛게 익을려고 하면
개미가 먼저 먹었던 이야기.
집 지을 때 모종으로 심은 왕벚나무가 자라
봄이면 왕벚꽃잎을 흐드러지게 날리던 이야기.
두 그루 매실 나무에서
매실을 따던 이야기.
그 매실로 매실엑기스를 만들어
여름 내 먹던 이야기.
반딧불이 쫓아 마을 길을 걷던 이야기.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이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지금 엄마는
행복한 추억이 아니라
찌들린 현생에 서글퍼하고 있구나.
아들아,
네가 사는 세상은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사람들도 가득한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얼마나 크게 아픔을 줄 수 있는지
아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걸
너는 이미 알 거다.
그러니 아들아,
어떠한 순간에도 너 자신을 놓지는 마라.
네가 살아온 날들,
네가 꿈꾸어온 날들.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았으면 한다.
너를 괴롭히는 이가 있어도
그것을 네것으로 가지고 오지는 마렴.
법륜스님 말씀처럼
쓰레기는 쓰레기통으로 버리렴.
엄마처럼 쓰레기를 껴안고
힘들어하지 말고.
쓰레기는 쓰레기통으로 버리고
너 자신은 오롯이 너로 존재하렴.
너에게 편지를 쓰다보니
엄마가 지금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겠구나.
쓰레기를 껴안고 있는 거다.
쓰레기인 줄 알면서도 말이다.
그래.
엄마도 이 쓰레기를 버리마.
쓰레기통에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으마.
휴우.
이제 좀 살겠구나.
미안하다. 아들아,
너와 추억을 남기기 위해
쓰기 시작한 이 편지에.
어쩌겠니.
지금 엄마 상태가 이 모양인 것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오늘 편지는
또 엉망이구나.
다음 편지에는
우리 추억 더 많이 만들자구나.
^^*
2025년 11월 21일.
금요일.
수능 끝낸 기념으로
학교에서 이랜드 다녀온 날.
범퍼카랑 롤러코스터 탄 이야기를
신나게 하던 너.
다음에는
이 이야기를 담을 수 있기를~
사랑하는 예쁜 내새끼.
널 너무 사랑하는 엄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