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으면 됐다 그거면 된다

by 필이

산불에 이어 수해까지!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파란수영장을 가야 한다. 파란수영장에 가서 언니들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래야 산다. 그래야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세상살이 힘든 일들 언니들과 수다 떨고 물에서 놀다 보면 다 지워진다. 몸에 붙은 먼지가 떨어져 나가듯 아픔도 슬픔도 괴로움도 다 씻겨나간다. 향기 가득한 바디클렌저를 듬뿍 짜서 몽골몽골 거품을 만들어 몸을 씻어내듯 그렇게 고통도 씻어낸다.


파란수영장 언니들과 함께 하다보면 어느새 필이가 가진 암흑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어둠에 빛을 비추니 더 이상 어둠이 아니다. 참 신기하다. 분명 파란수영장 어딘가에 빨간수영장이 되는 마법의 비밀문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수해가 다 지나간 것만 같다. 거짓말 같은 하늘을 째려보며 파란수영장을 간다. 거짓말 같은 하늘이 얄미워 눈이라도 흘겨줘야 한다. 그런다고 하늘이 꿈쩍 하는 것도 아니지만 필이 마음이 그렇다. 지금 하늘이 너무 미우니깐.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어? 78세 영희 언니가 목욕바구니를 들고 나온다. 벌써 수영을 다 하고 나온 건가? 창문을 내려 언니를 바라본다. 필이가 뭐라고 말도 하기 전에 언니가 먼저 필이에게 말을 한다.


“수영장 안한다. 수영 못한단다. 그래가 그냥 간다.”


언니는 이 말만 남기고 차를 타고 가버린다. 언니를 데려다주고 가던 남편분이 다시 되돌아와 언니를 태우고 간다.


무슨일이지?


일단 주차를 한다.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가봐야겠다. 어? 이건 또 누군가? 짝꿍 언니와 요양보호사 언니가 아닌가. 언니도 필이를 봤는지 차를 세운다.


“수영장 안해가 간다.”


요양보호사 언니는 이 한마디 하고는 전화한다고 바쁘다. 필이는 짝꿍 언니 손을 잡는다. 항상 언니에게 인사할 때 손을 잡던 것이 습관이 되었나 보다.


“비 피해는 없나? 야는 집이 없어졌단다.”


짝꿍 언니는 전화를 하고 있는 요양보호사 언니 쪽으로 손을 살짝 돌리면서 말한다.


“네? 집이 없어졌다고요?”


“그래, 산에서 흙이 쏟아져 내렸단다. 지금 사람 부른다고 난리다.”


그러고보니 요양보호사 언니 대화가 예사롭지 않다.


“어, 그래. 장화 갖고 와야 된다. 올 때 그리로 오면 안되고. 어, 그래그래. 그쪽으로 돌아와야 된다. 산사태가 나서 다니던 길이 막혔다.”


언니 집이 초토화가 되었단다. 그런데도 짝꿍 언니 수영장 데리고 온다고 온 거란다.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것이다. 집이 흙으로 뒤덮였는데도 일을 한다.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하더니. 집이 사라졌어도 일은 해야 하는 것인가.


필이는 이상한 기분이다. 죽을 것 같던 고통 속에서도 세상은 잘도 돌아가던 그때처럼 묘한 기분이 온몸을 감싼다. 필이를 가운데 두고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만 같다. 이 안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결계를 치듯이.


“면에서 올 정신이 없다. 막힌 길부터 치아야지. 우리집보다 더한 데가 많다. 우리집은 우리가 치아야지. 우짤끼고.”


언니는 너무도 담담하게 말하고 사라진다. 짝꿍 언니 집에서 요양보호사 일을 마치고 나면 그제야 언니 집을 살려내려 가는 것이리라. 사라지는 차를 보며 마음이 심란해지는 필이다.


다행이다. 샤워는 할 수 있단다. 어떻게 된 건지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샤워장만이라도 열 수 있어 다행이란다. 이마저도 어찌 될지 모르니 얼른 하고 나오라고 한다.


샤워장에는 필이처럼 수영하러 왔다가 샤워만 하는 언니들이 있다. 저마다 비 피해 없는지 이야기가 한창이다. 무슨 이야기 끝인지 발차기 쌤이 얼마 전에 온 신입이 경희 언니를 안는다.


“고생했다. 고생했어.”


“무슨일인지 몰라도 내도 안아줄게요. 고생했어요. 언니.”


필이도 얼른 경희 언니를 안는다. 얼마 전에 왔어도 이미 필이와는 친해진 사이다. 언니는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는지 이야기를 이어간다.


“카메라기기 있든지 말든지 사람들이 보든지 말든지 그게 뭔 상관이고. 내 평생 살아가 그때만큼 남편을 꼭 안아본 건 처음이다. 얼마나 세게 안고 울었는지. 평생 울 거 그날 다 울었다.”


남편분은 25톤 차를 운전하신다고 한다. 집 가까이 국도에서 갑자기 물이 들이치더니, 한순간, 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물이 가슴까지 차올랐단다. 언니에게 물에 갇혔다는 말을 하고는 그 뒤로 통신이 끊겼다. 몇 시간 불통이던 그때였던가 보다.


언니는 그 길로 119에 전화를 했단다. 119 전화마저 불통이더란다. 쉴 새 없이 전화하다 순간 한 통이 연결되어 남편을 살려달라 소리쳤단다. 안된다고 했단다. 그곳에 물이 불어나 차량이고 뭐고 그 무엇도 진입이 되지 않는다고 한단다. 언니는 욕이라는 욕은 다 퍼부었단다. 남편이 물속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그딴 소리나 하느냐고 살다살다 처음으로 온갖 욕을 퍼부었단다. 정신이 돌아오고 나서야 미안하다고 사과했단다.


기다릴 수만 없던 언니는 차를 몰고 나왔단다. 하지만 경찰이 길을 막았단다. 언니는 울부짖었단다. 내 남편이 저기에 있는데 왜 못가게 하느냐고 소리소리 쳤단다. 내 남편이 물속에서 살려달라는데 왜 안 살려주느냐고 고함을 쳤단다.


그 옛날 따듯한 엄마를 왜 냉동고에 넣느냐고 울부짖던 그때의 필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눈물이 차오른다. 그때의 필이가 되어 울부짖게 될까 입술을 깨물고 손으로 입을 막는다.


결국 경찰차에 태워진 채 언니는 최대한 가까이 갈 수 있었단다. 그 사이 언니 눈에 살아나온 남편이 보였단다. 이번에는 경찰차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쳤단다. 알다시피 경찰차는 안에서 열리지가 않는다. 범죄자들이 문을 열고 탈출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인지 바깥에서만 문을 열 수 있다. 그것을 모르는 언니는 그 짧은 시간, 문이 열리지 않는 그 순간조차 억만금의 시간이 흐르는 것만큼 길게 느껴져 견딜 수가 없더란다. 바로 저기 남편이 보이는데 살아나온 남편이 온몸에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작은 사람이 더 작은 사람이 되어 서 있는데 가지를 못하니 미칠 것만 같더란다.


경찰차 문이 열리자마자 뛰었단다. 남편분을 꼭 안았단다. 한때 농구선수였던 언니보다 작은 키의 남편이 더 작아져 있더란다. 언니는 엉엉 울었단다. 살았다고. 다행이라고. 엉엉 엉엉 울었단다. 카메라가 돌든지 말든지 사람들이 쳐다보든지 말든지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더란다. 살았으니깐 됐다고. 그거면 됐다고!


오전 11시에 물속에 갇혀 살아나온 시간은 오후 6시! 7시간을 물속에 갇혀 있었다고 한다. 전화도 그 무엇도 안 되던 그 시간. 가슴까지 차오른 물에 숨조차 쉬기 힘들던 그 공포의 시간.


필이는 부끄러워진다. 9시간의 정전, 5시간의 통신 두절. 세상과의 단절이라며 철저한 고립이라며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괴로워한다. 이중 구조를 자랑하는 샤시문이 단 한 방울의 물도 집 안으로 들이지 않는 튼튼한 아파트에서, 단지 세상과 단절되었다는 고립되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고독사를 맛본다며 힘들어한다.


부끄럽다. 길에 갇혀 10시간 만에 탈출해서 돌아왔다던 지인 남편분의 이야기에도 부끄러웠다. 하지만 잠깐이다. 아무런 상황을 모른 채 길에 갇혔다가 탈진해서 돌아왔다는 그 말에 잠시 부끄럽고는 지나가버린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언니가 말해주는 그 상황 속에 필이가 함께 있다. 그래서이다. 남편분이 느끼는 그 고통이 그 공포가 그대로 느껴지며 필이 숨을 움켜쥔다. 필이가 고통스러워한 그 다섯 시간이 너무도 부끄럽게 느껴진다. 필이는 눈물을 토하고 만다.


“내가 수영이고 뭐고 안 올라고 했는데 9시에 강습 있잖아. 남편이 수영 배우고 오래. 자기가 이번 일 겪어보니깐 수영을 할 줄 알아야 하겠더래. 남편은 하사관 출신이고 수영을 할 줄 알거든. 그래서 살았다고. 수영해서 차 밖으로 나와가지고 비닐하우스에서 떠내려온 막대기 하나 찾아가 땅 짚어가면서 걷다가 수영하다가 그래 살았다고. 나더러 얼른 수영 배우고 오란다. 그래서 왔지. 안그라면 어떻게 오겠노. 남편이 밥도 못 먹고 있는데.”


언니 남편분은 그 일 이후로 쇼크가 와서 아직 제대로 밥을 드시지 못한다고 한다. 언니가 이것저것 좋아하는 걸로 만들어줘도 목에서 넘어가지가 않는다고 한단다. 죽음에서 살아왔으니. 그 공포 속에서 살아왔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9시간의 정전으로 냉장고 안에 있던 음식 다 버리고 살아났음을 자축하며 아이와 소고기를 맛있게 먹던 필이와 대조를 이룬다. 이것조차 부끄럽다 말하고 싶진 않다. 그땐 울아이와 정말로 살아있음에 기뻤으니깐. 둘이서 안고 서로 토닥이며 "고생했다"고 말할 정도로 기뻤으니깐. 살아있다는 것이. 무사하다는 것이.


언니 남편분이 탈출하던 장면이 드론 카메라에 잡혔단다. 경남권 방송을 타고 생생하게 전달되었단다. '용감한 시민'이라는 타이틀을 타고 뉴스마다 나와서 사람들이 전화를 그렇게나 한단다.


“나보고도 장례 치를 뻔했다면서. 잘못했으면 장례식장에서 만날 뻔했다고…….”


“그런 말 하지 마라. 장례니 뭐니. 장례식장 이야기 하면 안 된다. 지금 장례식장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리 하면 안돼!”


경희 언니가 말을 채 끝맺지도 않았는데 발차기 쌤이 정색을 하며 이야기한다. 처음이다. 발차기 쌤이 이렇게나 무서운 얼굴과 무서운 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처음 본다.


“맞다. 맞다. 그런 말 하면 안 된다. 살아온 것만 해도 기적인데. 얼마나 감사한데.”


듣고만 있던 필이가 조심히 묻는다. 아무래도 하루가 넘도록 식사를 못하고 있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쇼크가 컸을 텐데.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도 검진도 받고 해야……. 밥도 못 드신다는데…….”


이번에도 필이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발차기 쌤이 정색을 하고 말을 한다.


“지금 그거 갖고 병원에 가면 욕 먹는다. 병원에 환자가, 환자가 얼마나 많은데. 지금 말도 못한다.”


“네?”


필이가 모르는 무슨 일이 또 있는가 보다. 물속에서 7시간 만에 살아 돌아온 이야기보다 더 무섭고 놀라운 이야기가 있다는 건가?


있다.

더 무서운 이야기가 필이를 기다리고 있다.



**

그동안 파란수영장을 사랑해주신 독자님!

고맙습니다.


파란수영장은 현재

출판사와 정식 출간 계약을 한 상태입니다.

부득이하게

이번 화까지만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와

퇴고로 더욱 더

잘 다듬어진 파란수영장

내년 봄 종이책으로 만나겠습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




오필리아처럼~

필이~^^*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