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하늘

by 필이

아들아,

열일곱 번째 편지를 쓴다.

편지가 차곡차곡 쌓이는 게 신기하다.


만날 보는 네게

무슨 할말이 이리도 많은 건지.

참 이상도 하다.

^^;;


꿈만 같다.

너와 함께 한 북토크라니!


든든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부산 여행에서

우리의 유일한 일정인

탱자나무 431에 갈 때였지.


부산에서 버스를 타본 것도

넘 오랜만이라

엄마는 추억에 옴빡 젖었단다.


맨 뒤쪽에

너와 나란히 앉았다.


의자가 높고 창문이 낮아

조금은 답답했지.

시야가 가려

바깥 풍경이 다 보이지 않아서 말이야.


앞쪽에는

무릎을 많이 구부리고 앉는 곳이라

앉을 수가 없었지.


너와 나란히 앉고 싶은데

오랜만에 탄 버스는

쉽지가 않더구나.


그래도

우린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갔다.

서로 손을 꼭 잡고.


엄마 젊었을 때 말이다.

아니

어렸을 때였을까?


친구들과 어딜 가면

이렇게 맨 뒤에 앉아서 가는 걸 좋아했단다.


나란히 앉아 손을 잡고서

수다 떨며 가는 길.


때론

서로의 어깨며 머리에

기대어 가기도 하고 말이다.


한 사람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면

다른 사람은 그 머리에 살짝 기대게 된단다.


엄마가 덩치가 있었던지

보통 내 어깨에 머리를 많이 기대더구나.

그러면

엄마는 머리를 살짝

그 친구 머리에 기대는 것이지.


이걸 떠올리는 것만으로

엄마는 이미 청춘 여행을 떠난다.


젊은날이라는 것이

이렇듯 평생의 추억을 만든다.


젊은 날의 시작인 아들아,

더 많은 추억 만들며 살렴.


인생

뭐 있겠니?

지금은 두려움이 더 클 수도 있다.

엄마도 그랬으니깐.


어른이 된다는 것에 설렘과 기쁨.

그리고 두려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기도 하고

무엇을 해야 할까 두렵기도 하고.


엄마가 스무 살이 되던 어느 날

누군가가 그러더구나?


스무 살의 하늘은 어떤 모습이냐고?


그땐

그 질문을 한 사람이 이상하다 생각했다.


스무 살의 하늘이 하늘이지 어떤 모습이냐니

이상한 질문이 다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스무 살의 하늘은

다른 것이야.


늘 다른 하늘 맞다.

어제가 다르고

잠시 전과 다르고

한시도 쉬지 않는 하늘이니

당연히 다르다.


하지만

스무 살의 하늘이란.

네 스스로 우뚝 선 채

바라보는 하늘이 될 게다.


분명 다를 것이야.

그렇고 말고.


넌 이제 네 삶의 첫발을 내딛는 것이야.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남겼다는

닐 암스트롱이 대수겠니?


네 삶의 길에

첫 발을 내딛는 것인데 말이야.


네가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는 삶,

네가 만들어가는 진짜 삶,


멋지다.

내새끼.


언제 이렇게나 큰 것인지.

대견하고 또 대견하다.


버스에서 말이다.

이젠 엄마가 네 어깨에 기대게 되더구나.

살짝만 기울였을 뿐인데

든든한 네 어깨가 엄마를 안아주더구나.


이렇게나 자란 것이야.

이렇게나 큰 것이지.


기특하고 기특하다.


엄마 지금 마음은

뿌듯함으로 가득하다.


네가 서울로 가고 없는

텅 빈 집을 떠올리는 건

뒤로 하마.


그건

떠올리지 않아도

실컷 느끼며 살게 될 테니깐.


지금은

네가 이렇게나 잘 커준 것만 생각하련다.


정말이지 잘 커주었다.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도 아니고

엄마와 단 둘이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더군다나

수술에 치료에

병원생활을 그렇게나 하는 엄마와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산골에서 살 때는

자연에서 누리는 추억 한가득 주고 싶었건만,


정작 산골에서

넉 달을 넘게 혼자 살아야 하는

기억만을 남긴 것 같아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어떻게 살았니?

가로등도 하나 없는 깜깜한 산골에.

네 손으로 밥해먹고

네 손으로 빨래해가며

어떻게 그렇게 살았니?


엄마 병원에 있는 넉 달 동안

어떻게 혼자 자고 혼자 깨어

학교를 다니고

어떻게 그렇게 살았니?


엄마는 못할 것 같다.

겨우 중학교 2학년 나이에

혼자서 어떻게 그 산골에서!


이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지금도 이 생각을 하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네게 너무 미안해서.

네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어서.


그런데도

그런데도

어쩜 이렇게 잘 커주었니.


엄마는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원망할 것 같다.

원망하며 미워도 할 것 같다.


그런데

넌 그러지 않았다.

아픈 엄마를 더 걱정했지.

목발을 짚으며

겨우 한 걸음씩 걷는 엄마를 챙겨주었지.


지금도

잘 넘어지고 잘 다치는

엄마 손을 꼭 잡으며 챙겨주지.


아,

어떻게 하다가

이야기가 또 이렇게 흐르는 것이냐.


분명 오늘은

웃으며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네가 너무 대견해서.

너와 함께 한 부산 북토크가

너무도 든든하고 좋아서.


그 이야기만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가 이야기가…….


고맙다.

내새끼.

이렇게나 마음 따듯한 아이로 자라주어서.


고맙다.

내새끼.

고맙다.


마무리 해야겠다.

신파극이 되기 전에 말이다.


어제 저녁 너와 나눈 이야기.

이번 네 생일, 크리스마스.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이런 이야기까지 해서

행복한 글만 쓰려고 했건만

이것참.


어쩔 수 없구나.

네게 너무 고맙고

네게 너무 미안하고.


아,

이제 그만 하마.


오늘도 우리에게는

신나는 하루가 주어졌으니

이 하루를 행복하게 살자.

그래 그러자.


이렇게

하루하루를 신나게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그렇게 살자꾸나.

^^*


역시 끝이 좀 이상하다.

^^;;;



2025년 12월 2일.

화요일.

바람이 무척 많이 부나 보다.

바람 소리가 환기구를 통해

여기까지 들어온다.

옷 따시게 입고 가자.


오늘도

널 너무 사랑하는

엄마가.

^^*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