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언니가 있다

영화 <8월의 고래>를 보고 떠오른 언니 생각

by 필이

나에게는 언니가 있다. 다섯 살 많은 언니다. 장녀로 두 어깨 가득 무거운 짐을 살아온 언니다. 평생을 자기 먹을 거, 자기 입을 거,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지 못하고 살아온 언니다. 아니, 하지 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았다.


할 수 있었다. 일찍부터 직장을 다니며 경제적인 능력이 있었으니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하지 않았다.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챙겨야 했던 걸까? 그것이 맏딸의 숙명이라도 되는 건가? 그 시대 맏딸이 다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언니는 그러했다.


막내는 알 수 없는 무거움이 언니에겐 있었다. 막내임에도 막내이지 못한 삶을 살았기에 언니 삶을 생각해보지 못한다. 내 삶만으로도 허덕허덕 벅찼기에 언니 삶은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다. 그런데 이번에 언니 이야기를 듣게 된다.


출퇴근을 위한 긴 시간, 새벽 4시 30분에 집을 나서는 그 발걸음, 새벽 첫 기차를 타고 바라보는 풍경,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무표정하게 앉아 함께 하는 그 길을 듣고야 말았다.


어떤 마음일까?

그 옛날 어둠도 가시지 않은 길을 걸어가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가로등 희미한 불빛만이 길임을 밝혀주던 그 어두운 골목길을 무거운 발을 이끌고 걸어가던 엄마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지금도 눈 앞에 펼쳐지는 것만 같은 겨울 새벽 차가운 어둠이 언니의 말에 떠오르는 건 왜일까? 한 번씩 모진 마음까지 먹어지더라던 언니의 말에 엄마의 이 시린 뒷모습이 떠오른 건 왜일까?


자식이되 자식이 아닌, 가장의 무게를 지고 살아야 했던 언니다. 그 삶이 어떠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일찍부터 공부를 잘했고 일찍부터 예뻤던 언니. "언니 반만 닮아라"는 엄마 말에 마음이 비뚤어져 미워하기도 한 언니. 나의 언니.


오십이 훌쩍 넘어서야 언니의 삶을 생각해본다. 이제서야 언니의 삶을 생각해본다.


그 시대에 장녀로 산다는 것, 아니 살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어려운 형편, 가난한 집이었으니 얼마나 더 힘들었을지. 사람조차 가난한 그 집에서 맏딸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이었을지.


자기 한몸 살아가기도 힘들었을텐데 동생들이며 홀로인 엄마며 비뚤어진 오빠까지. 그 모든 짐을 혼자 지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막내인 필이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8월의 고래>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언니를 떠올렸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과 우리의 삶이 전혀 달라보이면서도 결국 살아가는 우리 인생은 닮지 않았을까?


서로가 힘든 순간에 함께 하며 함께 늙어가는 자매를 보며 언니를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언니와의 여행을 꿈꾼다. 장난처럼 한 말이지만 진심이다.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언니의 지난 삶을 안아주고 싶다. 영화처럼 극적이지 않을 것이다. 또 싸울지도 모른다. 아니 백퍼센트 싸울 것이다.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한다 하면서도 왜 이렇게나 싸우게 되는지. 이것도 자매가 갖는 특징인 것인지 나는 모른다.


싸우더라도 함께 여행하고 싶다. 둘만이 떠나 서로의 삶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싶다. 언니의 삶을 꼭 안아줄 수 있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 어쩌면 싸움은 서로의 삶을 안아주는 것에 필요한 통과 의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8월의 고래>를 보는 내내 언니를 떠올렸다. 그리고 늙는다는 것을 생각한다. 영화와 같진 않을 것이다. 각자의 삶이 있으니. 하지만 우린 따로 또 같이 이렇게 늙어갈 것이다. 이젠 조금은 서로의 삶을 더 알아가지 않을까. 언니의 삶에 고마움을 보내고 싶다. 소중한 삶이었음을.


우리가 엄마에게 남긴 말.

모든 것 잊고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며 편안한 나날 보내시길.....


이 말을 언니에게 남긴다.


언니야,

이젠 언니만을 생각하며 살아.

언니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그렇게.

고마운 나의 언니야,

사랑하는 나의 언니야.



https://blog.naver.com/pillsug369/224095008300


영화 <8월의 고래> 마지막 장면 (출처:씨네폭스)

오필리아처럼~

필이~^^*

월요일 연재
이전 09화건강하게 잘 산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