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잘 산다는 것은

by 필이

학생 한 명이 이틀째 오지 않는다. '독감'이란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아이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기 위함이다. 아이들이 아파서 결석을 하면 으례 하는 행동이다.


아이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하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어머니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어머니도 아프신 건지 묻는다. 가족 중 한 사람이 걸리면 온 가족이 독감으로 고생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니깐.


예기치 못한 이야기를 듣는다. 어머니가 입원해있단다. 뇌경색이란다. 일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온 것이란다. 대학병원에서는 받아주지 않아 가까이에 있는 2차 병원으로 옮겨 겨우 입원할 수 있었단다. 그러는 사이 골든타임을 놓쳤단다. 지금은 많이 좋아진 것이라고 말하는데 힘이 없다. 말이 많이 어눌하다.


충격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밝은 목소리로 통화하던 분이다. 수해로 지역이 난리가 났을 때도 자동차에 갇힌 사람을 구해 의인으로 뉴스에도 나오고 야구 시구까지 할 정도로 지역 유명인사가 된 분이다. 건강은 말할 것도 없다. 더군다나 아직 젊다. 큰 아이가 초 1, 우리반 아이다.


어머니 말 끝이 촉촉해진다. 자신이 갑자기 이렇게 되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많이 충격을 받았단다. 그러는 바람에 아이들이 아픈 게 아닌가 걱정이란다. 자책이 묻은 목소리다.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어머니, 요즘은 의술이 많이 좋아요. 마음 단단히 먹고 힘내세요. 이 말만 되풀이 한다. 전화기 너머로 울먹거리는 목소리를 감추기에 실패하고 만다. 어머니도 나도 서로 눈물을 삼키는 소리만 꼴딱 꼴딱 주고 받는다. 마지막까지 힘내시라는 말만하며 겨우 전화를 끊는다.


어머니와 통화를 한 시간은 어제 오후이다. 저녁 일정이 있어 정신없이 다녀오고 기절하듯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뜨고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하다. 파란 하늘을 봐도 눈물이 난다. 반짝이는 강물을 봐도 눈물이 난다. 파란수영장에서 짝꿍 언니를 만나고 인사할 때도 괜찮던 눈물이 바깥 세상으로 나오고는 또로록 흘러내리고 만다.


무슨 일인가. 눈물이 왜.


건강하게 산다는 게 뭔지 묻는다.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선생님도 건강 잘 챙기셔야 한다고 말하던 어머니의 옴빡 젖은 목소리가 들린다. 건강하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 건강을 챙기며 잘 산다는 게 무엇인지.


어머니도 나처럼 몸을 돌보지 않고 살아오신 걸까. 현생에 허덕이며 하루하루 지치도록 일을 하며 살아오신 걸까. 마음을 돌본다는 것 자체가 사치인 삶을 살아오신 걸까. 그 정도로 힘들게, 그 정도로 아프게, 그 정도로 슬프게.


결국 아프지 않게 산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밖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생에 살아가야 할 긴 선 위에 하나의 점이 박히는 것이다. 아픈 점이, 아프도록, 죽을만큼 아프도록, 박히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주어진 운명 따위도 아니다. 자신의 잘못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가혹하다.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다. 이것이 잘못이라고 하면 살아온 삶은 잿가루가 되어 얼룩투성이가 된다. 주어진 운명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무기력해진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시 묻는다. 무엇인가. 건강하게 사는 삶이라는 것이. 건강을 챙기고 잘 사는 삶이라는 것이. 나와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스트레스 상황을 명상을 하며 호흡을 하며 다스려보지만 자꾸만 나를 갉아먹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젊은 학부모님의 갑작스러운 뇌경색 소식은 건강한 삶에 대한 회의를 가져다 준다. 지금 나를 죽일듯 달려드는 현생에서 건강한 삶이란 무엇인지, 건강하게 잘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 이 물음조차 멀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붙들고 싶은 단 하나, 건강하게 잘 살다 가고 싶다는 소망!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이룰 수 있는도 모르면서, 가슴 저 밑바닥에서 울부짖는 나는 이렇게 말한다.


건강하게 잘 살다 가고 싶다고. 내 손으로 밥 먹고 내 손으로 똥 닦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성을 유지한 채 가고 싶다고! 방법을 알고 싶다.




오필리아처럼~

필이~^^*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