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온전히 안은 가슴만이

by 필이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한 번쯤 고민해본 적이 있지 않을까? 내가 어디서 왔으며 지금 선 곳은 어디이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


모든 것의 시작은 과거에서 온다. 지난날이 오늘을 만드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는 어디에 있을까? 흐르는 시간을 따라 잡지 못하고 과거의 한점으로 남겨졌을까? 아니면 세월 따라 흘러오며 빛바랜 흑백 사진 마냥 지워졌을까? 아니다. 과거는 그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과거는 내게 있다. 지금도 과거는 나와 함께 하고 있다. 현재진행형이다.


지우고 싶은 과거, 없애 버리고 싶은 과거, 쫙쫙 찢어 변기통 속에 '처'넣어 세찬 물로 떠내려보내고 싶은 과거. 그 모든 것이 내게 있다. 배설물을 내보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듯 과거 또한 내보내야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세월의 마법으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변신했을지라도 과거는 지금도 내 삶을 움켜지는 올가미일 수밖에 없다. 혓바닥을 넬름넬름 내밀며 나를 놀리고 있다. 언제라도 잡아먹을 것임을 잊지 말라고 한다. 내가 약해질 때, 그 때를 노려 나를 집어 삼킬 것임을 명심하라고 한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가로 젖는다. 그건 내가 아니라고 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지우개로 싹싹 지워버린다. 얼룩덜룩 더 큰 얼룩이 또렷이 남는다. 쫙쫙 찢어버린다. 질긴 고무줄처럼 늘어나기만 할 뿐 찢어지지 않는다. 과거는 아니라고 할수록 더 내게 달라붙는다. 과거는 떨쳐낼수록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다. 지친다.


과거는 나다.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나다. 과거는 나다. 아무리 없는 것으로 기억을 삭제해도 또렷이 남는 나다. 과거는 나다. 지금도 현재진행형 속에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과거는 나다. 이젠 과거를 안는다. 그 또한 나임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에게 다가간다. 손을 내민다. 이젠 미워하지 않는다. 그또한 나였음을 그또한 나임을 이젠 안다.


많이 아팠다. 울고 있다. 현재의 내가 외면할수록 과거의 나는 더 많이 아파 운다. 이젠 외면하지 않는다. 과거의 나에게 다가가 꼭 안아준다. 고생했다고, 많이 애쓰며 살았다고, 이젠 꼭 안아준다.


비로소 내가 선 자리를 알게 된다. 과거를 받아들이는 순간 지금 있는 이 자리를 느낀다. 두 발로 딛고 선 이 땅을 느낀다. 땅의 단단함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야 달릴 수 있다. 한 걸음 두 걸음. 과거를 온전히 안은 가슴만이 살아있음으로 뛴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과거를 알면 현재 선 자리를 알게 되고 그래야만 나아갈 수 있다'는 흔한 말이 적용되는 순간이다. 지나온 날들, 과거로 묻어둔 날들. 이젠 꺼내어 소중하게 닦는다. 밥이 피와 살을 만든 후 배설되듯 과거 또한 지금의 나를 만들어놓고 조용히 빠져나간다. 비로소 올가미를 벗는다.


과거는 지금도 내 속에 있다. 나와 함께 산다. 뼈에 각인되어 호심탐탐 집어삼키기만을 노리던 과거는 사라졌다. 이젠 피가 되어 내 몸을 유영한다. 받아들임으로 온전히 안음으로 과거는 자유로워진다. 비로소 자유가 노래한다.



오필리아처럼~

필이~^^*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