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터널 속 빛을 향해 달릴

by 필이

아들아,

열아홉 번째 편지를 쓴다.

이번 편지는

시작부터가 무겁다.


아무리 밝음으로 포장하려고 해도

되지가 않는다.


일주일에 두 번,

네게 편지를 쓰기로 스스로 약속하였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다시 노트북 앞에 앉는다.


4시에 어김없이 잠이 깼단다.

눈을 뜨지 않았지.

아니 눈을 뜨고도 다시 감아버렸단다.


다시 잠들기를 바랐지만

잠이 들지 않았다.


어제 저녁만 해도

4시에 일어나 네게 편지부터 써야겠다며

잘 잘 수 있겠다 했단다.


얼핏 설핏

비몽사몽 일찍 잠든 것도 같고

자다 깨다 반복한 것도 같고

어지러운 꿈에 시달린 것도 같고


이 모든 것이

지금 있는 우울감에서 온다는 것을 안다.


우리 안 좋은 건

거제도 바다에 다 털어버리고

신나게 돌아왔건만.


이번 여행

너무 좋았다며

1박 2일 짧은 여행이지만

알차고 좋았다며

돌아오는 내내

서로 손을 잡고서 이야기 했건만.


일시적인 것이었을까?

마음이 여전히 무겁구나.


모든 게

엄마 잘못인 것만 같아 견딜 수가 없다.


엄마가 젊은 날에

많이 아팠던 시기가 있었단다.


나이 마흔에 협심증 판정 받고

머리 수술에

다리며 허리며 손목이며

계속된 수술로 이 몸이 되기 훨씬 전이었단다.


어쩌면 엄마 몸은

그때 이미 망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왼쪽 다리가 뻣뻣한 건 그때부터였으니

어쩌면 그 젊은 날부터 엄마 몸은 이미…….


그때,

아픈 몸보다 견딜 수 없는 건

언제 나을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 언젠가

긴 터널을 지날 때 했던 말 생각나니?


터널 끝이 희미하게나마 보일 때는,

터널이 곧 끝난다는 것을 알 때는,

어둠의 터널도 잘 지날 수 있다고 했던 것.


어디였던가?

끝을 알 수 없는

무지하게 긴 터널을 지날 때

엄마 숨이 답답해져와서 순간 겁이 나기도 했지.


그때 우린 대화를 하며

그 긴 터널을 빠져나왔었던 거 기억하니?


그런 말을 했잖니.


터널 끝을 알 수 없을 때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터널을 지날 때

우린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이다.


길더라도

터널의 끝이 있다 믿기에

우린 함께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날 수 있었지.


그것인 것 같아.

아무리 지금 힘들더라도

이것의 끝은 밝음이라는 희망이 필요하다는 것.


희망을 잃어버리는 순간,

지금 이곳은 어둠의 터널이 된다는 것.

그것도 끝을 알 수 없는 터널.


젊은 날의 엄마는

너무도 긴 터널을 지나야 했단다.

끝이 보이지 않았지.


더 깊고

더 어두운 터널만이 존재했단다.


터널 끝 빛을 찾아 잡았던 손은

더 깊은 터널로 엄마를 밀어넣더구나.


마음이 병들었던 엄마는

몸까지 병들고야 말았다.


그때,

원망할 대상이 엄마밖에 없었다.

엄마의 엄마 말이다.


엄마를 많이도 원망했다.

못된 말을 퍼붓었다.


아픈 나를 두고

일하러 가는 엄마를 원망도 했다.


나는 죽을 것만 같은데

혼자 두고 일하러 가는 엄마를 원망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아픈 자식 남겨두고

일하러 가야 했던 엄마 마음은 어땠을까.


차라리 죽여달라 울부짖는 딸을 보며

엄마 마음은 어땠을까.


계속되는 아픔을 겪는 딸을 보는

그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젊은 날의 엄마는 그걸 알지 못했다.

그것을 생각하기엔

내가 가진 아픔이 너무도 컸다.


지금 겪는 일들이

엄마를 다시금 어둠으로 내모는구나.


그때랑 다르게

지금 엄마 곁에는 네가 있는데.


지금은 글을 쓰고

많은 분들이 위로와 힘을 주는데도

또다시 어둠으로 떨어지는구나.


그건

이번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삐그덕거리는 걸

한번쯤은 느꼈음에도 바보처럼


올라오는 의심은 외면하고

무조건 덮고 무조건 믿어버리고

좋은 쪽으로만 생각해버리고

그러다 결국 더 깊이 상처 받고


이게 엄마 모습이다.

어쩌면 이 모양인지.


십수 년 전에 죽다 살아날 정도로

큰 돈을 사기 당했을 때 저질렀던 잘못을

또 되풀이하는 엄마 모습을 보며

너무도 한심스러워 견딜 수가 없구나.


중요한 건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몇년째 질질 끌고 이어져오는 일이 있단다.


이또한 멈췄어야 했던 게 아닌가

왜 또 믿고 그대로 진행한 건가

후회가 계속 올라오며 잠을 깨우고 있단다.


미션캠프를 믿고

신나게 한만큼 충격이 너무 크다.


이 충격이

하루 사이에 털어버릴만큼

괜찮지가 않구나.


다음날 바로

시집 사전예약 시작하면서

기쁨으로 잠시 덮였던 것 뿐이었음을

느끼는 날이었다.


너의 안 좋은 이야기도

엄마 탓을 하게 된다.


내가 뭔가 잘못되어서

그 영향이 네게까지 미치는 건가.

나 스스로가 무섭기도 하다.


좋은 일들로

희망으로

기쁨으로

채우고 싶건만


참, 인생 쉽지 않다.


이럴 것만 같았단다.


네게 쓰는 편지가

엄마의 넋두리가 될 것만 같았단다.


그래서 쓰기를 미루고 싶었나 보다.


너에게 좋은 소식이 올 거라며

우리 희망을 갖고 기다리자

말해야 하는데


우리가 확언하는 대로

우주가 기운을 준다고 하잖아.


그래,

우리 희망을 갖자.

네가 늘 해주던 말.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에

매달려 있지 말자던 네 말.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던 네 말.


그 말이 지금 필요한 말이다.


자꾸만 자책하지 않도록!

자꾸 터널로 밀어넣는 인생이라도

터널 안에서 주저앉아 있지는 않을 거다.


일어나야지.

일어나서 달릴 거다.


빛을 향해

내 인생이 빛날 수 있게.


그래,

아들아.

네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네게는 미안함만이 가득하다.


그래도 아들아,

우리 같이 힘내보자.

엄마도 힘낼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이라도

힘내서 달릴게.


시집은 지금도 사전예약 중이고

크리스마스에 맞춰서 발행된다는구나.


시인이 될 거라는 상상도 못했는데

시인이 되어 기쁜 것처럼

좋은 일을 더 많이 만들자.


좋은 일들이 더 많아

힘들고 아픈 일들이 작게 느껴지도록

우리 그렇게 살자.


너에게 하는 말이

엄마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과도 같다.


오늘 아침

눈을 감고 생각했단다.


간절히 기도한 적이 있는지.

너의 대학 합격도

엄마의 건강도

간절함이 있었던지.


할말이 없다.

힘들어질 때면 하게 되는 기도.

절박해질 때면 그제야 하게 되는 기도.


엄마는 이제야 기도한다.

이제야 십자가를 찾고 두 손을 모은다.


네 대학 합격도

지금 잠을 못 이루게 괴롭히는 이 일도

간절함을 붙들고 모든 것을 맡긴다고.


기도한다.


그래.

모든 짐을 내려놓자.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구나.


돈만 잃어야지

건강까지 잃어서는 안된다고 말해주던

그 말을 기억하자.


숨 막힐듯 조여오는 답답함도

이대로 내버려두자.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손을 모으는 것 뿐이다.


그리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가자.


이제 시련은 그만 주어도 좋으련만.

이제 어둠의 터널은 끝나도 좋으련만.


이대로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음을.


이 새벽,

넋두리 끝에 깨달아본다.


내가 살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사춘기를 막 지나는 아이처럼

다시 내게 물으며

편지를 마친다.


깊은 성찰이 내게 오려나보다.


아이야,

엄마의 넋두리가 된 편지라 미안하다.


대학 발표를 기다리는

네 마음을 챙겨야 하건만.


엄마는 또다시

엄마 앞에 닥친 일에 이러고 있구나.


미안하다. 아이야,

많이.




2025년 12월 9일. 화요일.

아침 5:52.


마무리도 짓지 못한 채

끝내버린 편지다.


네게 미안함이 너무 커

마무리를 지을 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아이야.

미안해. 많이.


그래도 알지?

엄마는 다시 일어설 거라는 거?


비틀비틀

기우뚱

다시 넘어지더라도

일어나고야 말 거라는 거.


그건 엄마도 자신을 믿어.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주렴.


엄마, 곧 일어날게.

다시 일어날게.

달릴 거야.


암흑의 터널로 밀어넣어도

다시 일어날 거야.

다시 달릴 거야.


그래 그럴 거다.

아이야,

엄마 꼭 그럴 거야!


사랑한다. 내새끼.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