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스물한 번째 편지를 쓴다.
지금 시간이 이제 막 4시가 되었다.
새벽 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가는 거냐?
노트북을 열고 글쓰기를 준비했을 때 시간이
3시 27분이었단다.
그래서 시작을
지금 시간이 3시 27분이란다
라고 하려고 했다.
글쓰기를 시작하다
몇 번째 편지인지 보기 위해
잠깐 그 전 글을 찾으러 갔다가
또 엉뚱하게도 다른 글까지 보고 왔지 뭐냐.
그러니 시간이 후딱 지나가버려
시간 앞자리가 바뀌었구나.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처음 시간으로 하려다가
그건 또 싫더구나.
별거 아닌 일에
거짓으로 말하고 싶지가 않아.
이런 것들이 쌓이다보면
커다란 거짓산으로
덮여버릴 지도 모르지 않니.
양심이니 뭐니 그런 것도 필요없다.
고민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시작하는 시간 앞자리가 달라지니
처음 엄마가 하려고 했던 말을 하기가 무색하다.
그래도 하고 싶다.
오늘은 3시에 잠을 깨고 말았단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몇 시인지 보니 막 3시가 되더구나.
한 시간은 더 잘 수 있겠다며
눈을 감는데 잠이 오지 않더구나.
그래서 생각했다.
4시에 일어나서 편지 쓸 거
지금 일어나서 편지를 쓰자고 말이다.
그래서 일어났단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찬물과 섞어
육각수가 된다는 미지근한 물 한 컵을 준비하고
간단하게 스트레칭도 하고 노트북을 켰단다.
웃음이 나더구나.
작년 이맘 때쯤이었을까?
엄마가 미라클모닝 챌린지 할 때
한동안 3시 전에 깨어 글을 썼지 않니?
어떨 때는 2시가 안된 시간이기도 했고.
한참 《빨간목욕탕》 쓸 때였던 것 같다.
그 때 네가 나오다가 놀라면서 그랬잖아.
"엄마, 이건 미라클모닝이 아니다.
이건 새벽도 아니고 그냥 밤이다. 밤.
얼른 들어가서 더 자라."
네 말이 귓가에서 생생하게 울린다.
넌 때론 그 시간까지 공부하다 만나기도 했고
잠깐 잠들었다가 깨어 만나기도 했지.
엄마는 그 시간이 너무도 좋았단다.
일찍 잠드니 일찍 일어나고
하루에 몇 시간은 꼭 자야한다는
구속에서 벗어나니 몸이 자유로워.
오히려 잠도 잘 오고 말이야.
물론 낮에 잠깐의 쪽잠은 필요해.
오늘 아침에는 이 생각이 떠올라
웃으며 일어났단다.
눈만 감은 채 멀똥이
시간만 때우는 것보다 낫지 않겠니?
이러다 잠이 오면 또 잠을 자면 되고 말이다.
ㅎㅎㅎㅎㅎ
아무튼
오늘은 이른 시간부터 웃음이 나온다.
지금 엄마 표정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지긋한 미소를 띄고
싱잉볼 음악을 들으며
손가락은 신나게 노트북 자판 위를 춤추고
ㅎㅎㅎㅎㅎ
그림이 그려지니?
재밌겠지?
자꾸만 실실 웃음이 샌다.
어제는 말이다.
엄마 공저 시집
『내가 그리울 땐 빛의 뒤편으로 와요』
북토크에 엄마가 사회자가 되었단다.
무슨 용기도 아니고
객기도 아니고
그냥 그것이 엄마가 하고 싶어했던 것처럼
당연하게 느껴지더란 말이다.
한마디로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그 전까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너무도 이상했단다.
출판사 대표님이
사회자에 대한 물음에
세 가지 선택지를 말해주시더구나.
엄마는 당연히 출판사에서
알아서 해준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우리 송세아 편집장님이나 대표님이?
엄마 머리 속에는
송세아 편집장님을 정해놓고 있었던 것 같다.
함께 해오던 것들이 많아서인지.
엄마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그런데 세상에
선택지에 우리 시인들 중에 한 명이
사회를 함께 하는 게 제시되어 있는 것이야.
거기에 시절청춘이라고
엄마가 '칭구'라고 부르는 시인이
좋은데 부담스러워서 안되겠다는 말을 하는 거야.
잠깐 생각했지.
엄마는 부담보다는
재밌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
그래서 말했단다.
우리 중에 사회자 하는 방안이 채택된다면
엄마가 사회자를 하고 싶다고 말이다.
단톡방에서
의견이 오고가더니
진짜 엄마가 사회를 맡게 되었단다.
ㅎㅎㅎㅎㅎ
웃음이 난다.
모르겠다.
무슨 마음인지.
엄마는 네 생각을 했단다.
네가 함께 할지 안할지
아직 결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네가 함께 한다면
네 앞에서 사회까지 하는
엄마 모습을 보여주고 싶더구나.
너도 알지 않니?
대안학교에서도 이러저러 사회도 많이 했던거.
아이들과 세바시를 이용한 수업도 했잖아.
아이들을 발표하게 도와주는 역할을
엄마가 좀 잘 한다는 거.
너도 알지?
어찌 엄마 자랑을~^^;;
그런 생각들이 올라왔던 것 같다.
지금은 작가가 되어
누군가의 사회로 북토크를 하지만
그 전 추억을 소환하며 엄마 속에 숨은 끼를 꺼낸 거지.
재미있는 것은 말이다.
막상 사회자가 되고 나면 예전 같으면
후회도 했었겠지?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면서.
부담을 가지고 후회를 했을테다.
그렇지 않니?
시인으로 앉아만 있으면
조금은 편안하게 있을 수 있잖니.
사회자가 된다는 것은
그렇지가 않아.
다른 분들 시도 많이 읽어야 하고
북토크 전체를 시뮬레이션하며 준비해야 한단다.
결코 쉽지 않다.
혼자도 아니고
엄마 포함 5명의 시인들 북토크니
더더욱 진행에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있지.
그래도 말이다.
엄마 가슴은 이상하게 뛰더구나.
부담이 없다면 그건 거짓이다.
부담이 있다.
하지만 기분좋을만큼의 긴장을 주는 부담이다.
어쩌면
지구별 여행자로 살고 싶다는 글을 쓰고 난 후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한 번 뿐인 인생이다.
하고 싶은 것 도전하고 살면 재밌지 않겠니?
남이 떠먹여주는 삶이 편할 수는 있겠지만
재미는 덜할 것 같구나.
거친 길이라도 내가 주인이 되어 살고 싶다.
그렇구나.
어제의 일이 이제야 연결이 된다.
이해가 된다.
네게 편지를 쓰다보니
이제야 알겠다.
엄마가 왜 사회자하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는지.
그리고 후회하지도 않는지.
어제 아침에 쓴 글 때문이구나.
지구별에 온 여행자로 살고 싶다는 바로 그 글!
남이 좋다는 거 따라다니며 인증샷만 남기는 관광자가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어 여행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바로 그 글!
우린 지구별에 관광하러 온 게 아니야.
지구별에 신나게 여행하러 온 거야.
여행자로 살고 싶다고 글을 썼지!
글의 힘이 이렇게나 크다는 것을 느낀다.
언젠간
너도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 같다.
지금 너의 독서량이나 질을 보면
엄마보다 훨씬 깊은 글을 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멋지다. 내새끼.
글을 쓰는 삶을 살지 살지 않을지
그런 것은 다 네게 달렸다.
엄마는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좋은 것이라면
네가 엄마의 모습을 보며 배울 것이고
좋지 않다면 배우지 않겠지.
엄마는 배경을 깔아줄 뿐이다.
책읽는 삶
글쓰는 삶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엄마의 삶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모자람을 인정하는 모습으로
좋으면 좋은 모습 대로
네게 보여질 뿐이다.
이것이 너에게는 배경이 된다고 생각한다.
대안학교의 삶,
대안적인 삶에 대해 배경을 깔아주었던 것처럼
엄마의 역할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주구나!
이번주면 추가 발표까지
거의 마무리가 된다고 했지?
네가 다니는 학교에서 전교 1등.
선생님들의 기대까지 한몸에 받고
자신있게 응했던 대학에서
생각했던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아
얼마나 힘들었니.
조기발표했음에도
엄마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힘들었을 너를 생각하면
엄마 마음이 다시 찌르르 아파온다.
너희 학교 다른 아이들의 결과도 썩 좋지 않아
친구들과 모여 한탄을 했다는 말도 했지.
그러면서 결국 시골 작은 학교의 한계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이번 수능 만점자 중에
광주 출신 아이의 인터뷰를 들었다.
광주라는 지방이라고 해도 그곳은 도시더구나.
너처럼 여기처럼 시골,
그것도 전교생이 몇 명 되지 않는 작은 학교가 아니야.
이곳에서 조차 너는 스스로 공부했지 않니.
광주 출신 아이는 면접을 위해
서울 학원에 처음 가봤다고 하더구나.
네가 말한 그 학원인가보다.
면접 준비 시켜준다는 학원.
그조차도 넌 혼자 해냈지.
그러니 엄마에게는 네가 더 대단해보인다.
비록 네가 목표한 대학보다
더 낮은 곳으로 갈지도 모른다며 이야기 하지만
그곳조차 30명 모집에 700명이 넘게 응시한 곳이라고 하지 않았니?
그곳은 이미 합격증까지 받은 상태이고.
엄마는 이미 놀라고 있다.
그럼에도 네가 가고 싶은 대학에
마지막까지 추가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아들아,
예쁜 내새끼야.
어떤 길이든 엄마는 너를 응원한다.
너무 당연한 것이지?
엄마도 다른 엄마들처럼
조금이라도 대학도 알아보고
학원을 다닐 수 있게 했더라면
결과가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하다못해 면접전문 학원이라는
그곳에라도 보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운전면허 시험까지 돈 많이 든다며
혼자 공부해서 따겠다는 널
안된다며 혼낸 엄마다.
아무리 가상으로 연습하는 게 있다고 해도
그것은 안된다.
안전과 직결된 문제다.
가상으로 연습해서 한다니 안될 말이다.
면접 학원이라도 보냈다면~
이라는 후회가 많이 올라오지만
말하지 않는다.
미안함은 이뿐이 아니지만
말하지 않는다.
너를 꼭 안아줄뿐이다.
내새끼 대견하고 기특하다고 안아줄 뿐이다.
아이야,
너는 어떤 여행을 하게 될까?
지구별에서 어떤 여행을 하게 될지
우리 하루하루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자꾸나.
네가 가는 길이 어디가 되었든
네가 하는 여행이 어떤 여행이든
너를 응원한다.
고맙고 미안한 아이야,
미안하고 고마운 아이야,
우리 건강하게 살자.
그래야 여행을 신나게 하지.
그치?
이제 곧
너만의 여행을 떠날 예쁜 내새끼.
남은 시간 동안 우리 더 많이 사랑하자.
더 많은 추억 만들자.
이만 줄이마.
이미 너무 길다.
이렇게나 수다스러워서야..
나참..
^^;;;
2025년 12월 16일
화요일. 5:01
꼬박 한 시간이 지났구나.
오!
엄마 눈이 침침해진다.
너무 집중해서 썼나보다.
ㅎㅎㅎㅎㅎ
오늘도 신나는 여행하자.
널 너무도 사랑하는
에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