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행복은 이렇게나 살며시

by 필이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던 여름, 입원을 하게 됩니다. 봄에 이미 수술 날짜를 잡았던 것입니다.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수술을 하려고 말입니다.


2주를 계획하고 입원한 병원생활이 그 길로 4개월이 넘도록 집에 가지를 못합니다. 그 사이 울아이는 혼자서 생활합니다. 산골짝 작은 집에서 혼자 밥해먹고 혼자 교복 빨아가며 스쿨버스 타고 학교를 다닙니다.


여름 교복에서 춘추복으로 바뀌면서 걱정이 됩니다. 여름 교복은 세탁기 돌리고 탈탈 털어서 입으면 되지만 춘추복은 그렇지 않습니다. 셔츠 같은 경우 목에 때는 애벌 빨래로 해줘야 하고 세탁 후 다림질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셔츠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에 맡깁니다.


춘추복을 입기 시작할 때쯤 아이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를 합니다. 상황을 설명드리고 아이가 좀 꼬질거리더라도 이해해달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놀라고 맙니다. 담임선생님은 그때까지도 아이가 혼자서 빨래해가며 다니는 걸 전혀 모릅니다. 옷도 깔끔하다면서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엄마가 없는 몇 달, 춘추복을 떠나서도 꼬질한 아이의 모습을 상상했던 엄마는 당황하고 맙니다. 몇 달이 되도록 선생님도 모를만큼 아이가 깔끔하게 다녔다는 것도 자신의 생활을 흐트러짐 없이 하고 살고 있었다는 것도 놀랍기만 합니다.


잠에 빠져 스쿨버스를 한 번 놓쳐 택시를 타고 학교에 간 단 한 번을 빼고는 아이는 스스로 잘 살아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중2 남자 아이가 말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아닙니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아이 공부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학원 하나 안 다니고 혼자 공부하던 아이입니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중2 수학과 영어 같은 경우 혼자 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울아이를 보면 방법을 조금만 가르쳐주면 확하고 올라갈텐데 혼자 하는 것에 벽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수학과 영어만이라도 학원을 보내든지 과외를 해주라고 합니다.


정말이지 공부라고는 신경을 안 쓴 엄마 표가 납니다. 퇴원을 하고 아이와 의논 해서 과외를 시작합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알게 된 언니의 따님이 해주기로 합니다. 영어, 수학 두 과목을 다 하기에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어 영어 한 과목만 하기로 합니다. 주 1회 2시간. 이십만 원.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이십오만 원.


알고보니 과외 선생님은 다른 곳에서는 훨씬 더 많은 과외비를 받고 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집 형편을 보고 조율을 해준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하게 된 것이 울아이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그러니깐 중3이 되는 그 방학입니다.


주1회, 토요일이나 일요일. 선생님 시간에 맞추어 선생님이 계신 집으로 갑니다. 우리가 사는 바로 옆 소도시입니다. 군에서 시로 넘어가서 수업을 받는 것입니다. 아이가 수업을 받는 2시간 동안 있을 곳을 찾습니다. 이곳저곳 헤매다 정착한 곳은 바로 이곳! '멜로우나인'이라는 카페입니다. 바로 옆에 호수를 끼고 걸을 수 있는 산책길도 있고 사장님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라 더 좋은 이미지입니다.


문제는 바로 오늘입니다. 울아이가 연세대에 합격을 했고 내일 있을 토익 시험을 위해 오늘도 이곳으로 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오늘이 거의 마지막 수업입니다. 토익 시험 후 한 번 더 만나기로 했지만 정식 수업은 마지막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생각합니다. 아지트 같은 이 카페에 오는 것도 마지막이겠구나. 마음이 이상합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이렇게나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나름 정이 든 곳입니다. 다니면 얼마나 다녔다고 사장님은 어느날 VIP카드라며 명함 같은 것을 하나 건넵니다. 사장님이 있을 때는 상관없지만 본인이 없을 때는 이 카드를 내밀면 10%할인을 해줄 거라고 합니다. 다닌지 그리 오래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낯이 익는다 싶을 때부터 단골이라며 할인을 해주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얼마나 다녔다고 VIP입니까. 말이 주1회이지 우리나 선생님에게 일이 있으면 2주 3주씩 밀리기도 하고 선생님이 우리집으로 와서 수업을 하기도 하고 9시에 수업을 할 때면 이곳이 아닌 다른 카페에 가기도 합니다. 이곳은 10시에 오픈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곳에 다니면 얼마나 다녔겠습니까. 단지 오랜 기간 다닌 곳은 맞습니다. 중2 겨울방학 때부터였으니 벌써 몇 년인가요.


이런 곳을 막상 다시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이상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어제 때마침 『빨간목욕탕』과 시집 『내가 그리울 땐 빛의 뒤편으로 와요』 스티커랑 열쇠고리 주문제작한 것이 도착합니다. 그러니 이것은 카페 사장님에게 선물하라는 하늘의 뜻입니다.


두 책에 소중하게 사인을 하고 스티커와 열쇠고리와 함께 선물합니다. 막상 드리려니 쑥스럽기도 하고 안좋아하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카페 한쪽에 책이 꽂혀있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어 살며시 선물합니다.


사장님이 "작가님이세요?"라며 놀랍니다. 그리고 너무 좋아합니다. 선물 드리길 잘했다 생각하며 평소 시키던 연유라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습니다. 책도 꺼내고 노트북도 꺼내고 주섬주섬 챙기고 있는데 사장님이 옵니다. 손에는 제가 시킨 연유라떼와 제가 시키지 않은 치즈바게트와 함께!


이번에는 제가 놀란 눈이 되어 이게 무엇인지 물으려는데 사장님이 먼저 말합니다. 책값은 안되겠지만 고맙다며 책은 꼭 읽겠다며 다시 고맙다고 하고는 가십니다.


잔잔한 행복이 파문을 그리며 가슴으로 퍼져갑니다. 연유라떼만큼이나 달콤쌉쌀하기도 하고 치즈바게트만큼이나 고소하고 바삭하기도 합니다.


행복이란게 무엇일까요? 작은 것을 나눌 수 있는 마음,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마음, 이런 마음 하나로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음을 느낍니다.


한 해가 마무리 되어가는 날에 커다란 선물을 받은 듯 충만한 행복감이 가슴을 데워줍니다. 참 좋은 주말 아침입니다.





오필리아처럼~

필이~^^*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