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살아서인지 성탄절이 고요하다.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 초대 받았다는 아들의 말을 들으며 그래도 어디선가는 성탄을 축하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조용한 성탄절 새벽을 깨우며 어린시절 성탄절을 추억한다.
어린 시절 집들이 다 오르막내리막 길에 있었던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는 것은 우리집은 오르막길에 있었다는 것뿐이다. 평지에 사는 사람들을 만났던 적이 있었던가 기억마저 가물가물하다. 지구가 둥굴다고 땅들이 다 그렇게 오르막내리막이었던 것인지, 한국땅이 그런 것인지, 아님, 유독 필이가 살던 곳이 그런 곳이었던 것인지 모른다.
"어린 시절 우리집은 가난했었고"로 시작하는 노랫말처럼 우리집은 가난했다. 화장실 하나에 여러 가구가 함께 사용하는 옛날 드라마에 나올법한 집이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이라는 말은 따로 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믿는다. 그런 시절이어서인지 성탄절이면 달콤한 초코파이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산을 넘어가면 교회가 있다. 천막 같은 것을 씌운 것으로 기억된다. 평소에는 가지 않던 그곳을 성탄절이면 꼭 간다. 친구들 모두 모여 나란히 나란히 천막을 씌운 교회로 향한다. 뭐가 그리 좋은지 친구들과 신난다 웃으며 갔던 기억이 난다. 길다랗고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았던 기억이 훗날 덧씌워진 기억인지는 알 수 없다. 기억 나는 것이라고는 추웠고 어두웠고 노래 소리가 들렸고 그리고 어린시절 필이가 손에 초코파이를 들고 신나했다는 것이다.
얼만큼이 진짜 기억이고 얼만큼이 덧씌워진 기억인지 알 수 없다. 성탄절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라고는 어린시절 이 기억 뿐이다. 따듯한 느낌보다는 쓸쓸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언니 오빠들과 성탄절이라고 떠들썩 했을만도 한데 기억을 지운 것인지 기억이 없는 것인지 아예 성탄절은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인 것인지 알 수 없다.
아이를 낳고 아이가 자라면서 성탄절을 기념하게 된다. 아이의 생일이 크리스마스 이브라 생일을 겸하며 성탄절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으로 채운다. 내 아이에게는 쓸쓸하지 않은 성탄절의 기억을 남기고 싶었던 무의식의 발현이었을까. 작은 초 하나라도 밝히며 생일을 축하한다. 울 아이의 생일을. 예수님의 생일을.
성탄절의 그리움은 어린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다. 어린시절이 마냥 좋고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 마음마저 쓸쓸해진다. 어두운 골목길 끝, 언덕을 너머 어두칙칙한 천막을 씌운 성탄절의 기억만큼이나 쓸쓸한 기억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들뜸은 있다. 초코파이 하나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함께 가던 그 길에는 분명 설렘이 있다. 초코파이의 달콤함에 다른 그 무엇도 생각나지 않는 기쁨이 있다. 지금의 허기짐도 지금의 추위도 다 사라질 수 있다는 희망 아닌 희망을 품는 성탄절이다.
아이는 자랐고 이제는 자신만의 성탄절을 기념하며 만들어갈 것이다. 오늘 아침 성탄절이 더욱 고요한 까닭은 추웠던 어릴시절이 떠올라서일까? 앞으로 맞게 될 나홀로 성탄절을 떠올리기 때문일까? 단순히 시골이에 살아서일까? 대답이 필요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성탄절 아침을 맞이한다. 바람이 분다. 아파트도 추워할만큼 차가운 바람이. 오늘은 초코파이를 사먹어야겠다.
오필리아처럼~
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