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링.
문자 알림이다. 000님의 전화번호가 바뀌었다는 알림이다. 000이 누구인지 한참 생각한다. 이름 뒤에 메모해둔 글을 읽는다. 사회복지사 실습할 때 함께 했던 인연이란다. 잠깐 고민한다. 바뀐 전화번호로 다시 저장을 해야 할까? 아님 전화번호를 삭제해야 할까?
망설임의 이유는 간단하다. 다시 이어질 인연을 기대할 수 없는데 새로운 전번으로 바꾸면서까지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이미 연락처에 등록되어 있는 인연만 800개가 넘는다. 이또한 1000개가 넘던 것을 한 번 정리한 것이다. 그러니 삭제하는 것이 맞다. 아무런 미련없이 삭제해야 한다. 그럼에도 망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 하나, 잊혀진다는 것 때문이다.
전화번호를 삭제한다는 것은 일만의 희망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 하나의 기대도 없다. 다시 만날 인연, 다시 스칠 인연을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망설일 수밖에 없다.
어떤한 인연이 되었던 짧게나마 맺었던 인연을 지워버린다는 것이 쉽지 않다. 이별을 잘 하지 못하는 미련곰탱이어서 그런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화번호를 삭제한다는 행위는 그 사람을 나에게서 영원히 지운다는 것이다. 단 하나의 희망도 단 한 톨의 미련도 남기지 않는다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 쉽게 삭제하기 버튼을 누를 수가 없다.
어느 시인이 말한다. 잊혀진 사랑이 가장 슬픈 사랑이라고. 잊혀진 사람이야 말로 가장 슬픈 사람이라고. 잊혀진다는 것에 두려움을 갖는다. 나만이 그러한지는 모르겠다. 아니다. 우리는 잊혀지는 것에 두려움을 갖는다. 연예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잊혀진다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평범한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회적 동물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너'가 없으면 '나' 또한 없다. 결국 우리는 '너'와 '나'가 함께 살아가야 한다. '너'에게 잊혀진다는 것은 내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과도 같다. 그렇기 때문이다. 전화번호 하나 쉽게 삭제할 수 없는 미련곰탱이는 스친 인연조차 쉽게 지우지 못한다. 잊혀지고 싶지 않다는 몸부림이 미련하게 살게 한다.
전화번호를 삭제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내게서 지운다는 것,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전화번호에 어떻게 기억되어 있을까? 또 얼마나 남겨지고 또 얼마나 지워지고 있을까? 결국 지우고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나 또한 지워지고 잊혀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젠 그럴 때이다.
오필리아처럼~
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