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위의 집'이라고 하면 자연과 어우러지는 높은 곳에 멋드러지게 지어진 전원주택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어린시절 우리가 살던 곳은 대부분이 '언덕위의 집'이다. 산으로 오르는 길이 온통 집이었던지 오르막길 내도록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길고 구부러진 골목길들이 미로를 만들고 집들이 미로를 완성한다. 그러니 '언덕위의 집'은 말 그대로 언덕에 사는 '우리들의 집'이다.
언덕위에 집들을 이어주는 것은 골목길이다. 친구집에 갈 때도 이웃집에 갈 때도 골목길을 지난다. 학교를 갈 때도 그 어디를 가더라도 골목길을 지나지 않고는 갈 수가 없다. 마치 다른 세계에 닿기 위한 비밀의 통로쯤 되는 것만 같다. 자연스럽게 골목길의 추억이 많다.
골목길은 놀이터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사방치기, 숨바꼭질, 심지어 축구도 한다. 조금 넓은 골목이 경기를 하는 운동장이 되고 좁은 골목으로 빠지는 입구가 골대가 된다. 골목길이 오르막으로 되어 있다보니 높은 곳을 골대로 둔 곳이 유리하다. 어느 위치를 선점하는가부터 놀이는 시작한다. 골목 골목 누비며 하는 술래잡기는 골목길 놀이의 하이라이트다. 숨바꼭질인지 술래잡기인지 알 수 없는 찾고 도망가는 골목길 놀이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해가 골목길을 어스름하게 만들 때가 돼서야 아이들은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간다.
골목길은 연인들의 터이기도 하다. 가난한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가 되기도 하고 헤어짐의 아픔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다음 만남을 약속하는 설렘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저만치 멀어지는 연인의 뒷모습에 아련한 사랑으로 아프기도 한 곳이 된다. 차마 집 앞까지 데려다주지 못하는 수줍은 사랑의 징표가 되기도 하고 살짝 닿는 입술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정열의 징표가 되기도 한다. 가난한 연인들의 사랑의 터가 되어주는 것이 골목길이다.
골목길은 엄마의 하루를 열고 또 닫는 곳이기도 하다. 어스푸레 아직 뜨지 않은 해그림자가 골목에 들이울 때면 자식새끼 먹여살릴 엄마의 발걸음이 골목길을 나선다. 아무리 추워도 아무리 더워도 비바람이 골목길을 더욱 어둡게 해도 엄마는 그 길을 뚫고 간다. 오직 자식새끼 먹일 것을 구하기 위해. 오직 자식새끼 입힐 것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살아낸 하루를 돌아오는 골목길이 안아준다. 고생했다고. 오늘하루 잘 살아냈다고. 희미하게 밝혀주는 전봇대에 매달린 전등불을 밝히며 엄마를 안아준다.
골목길은 우리들의 삶이다. 우리 인생이 골목길과 함께 한다. 나고 자라고 늙어가는 그 모든 것이 골목길과 함께 한다. 이젠 없다. 골목길이 사라진 거리에 인생의 희노애락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각자의 몫이 되어버렸다. 집과 집을 이어주던 골목길,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골목길이 사라진 지금 우리는 서로를 이어줄 그 무엇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