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술을 사서 마시고 그걸 자랑하는 스무 살 아이

by 필이

아들아,

스물다섯 번째 편지구나.

편지쓰기 시작하니

세월이 잘 간다.


이젠 해가 바뀌었다.

넌 스무 살이 되었지.


지난 번 편지 말미에 했던 말 기억하니?

너의 술 이야기

따로 풀겠다던 말을 말이다.


오늘이 그날이다.

너의 술 이야기를 풀어보마.


지난 주 금요일이다.

아니 이야기를 거슬러 가자면

작년 12월 어느날부터겠다.


넌 친구들과 1월에

당당하게 술을 마시기로 했다며 떠들어댔다.


너의 말 속에는

들뜸과 설렘과 흥분과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몇 번을 말하며 스무 살이 되어

당당하게 술을 마실 것을 기대했다.


작년 말,

해운대에서 치맥을 할 때 말이다.

맥주 한 잔 하라고 했더니 넌 이렇게 말했다.


"아니, 조금 있다가 당당하게 마실래."


아마도 지난 번 서울에서

엄마가 술을 시키는데도

네가 미성년자인 것을 꼼꼼하게 살피던

식당에서의 일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그때 살짝 한 모금 했지 않았니?

그때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게야? 그치?


아무튼 이 말을 하던 네가

1월 2일 금요일,

엄마 출근하는 길에 같이 집을 나섰다.


친구들과 영화보고 놀고 오겠다고 말이다.

술도 마실 거라고 하더구나.


이렇게나 일찍 출발해서

하루종일 놀고 술까지 마시고 들어올 거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너.


여전히 너의 말 속에는

기대와 설렘과 흥분과

약간의 두려움이 함께 하더구나.

들떠 있었던 게야. 그치?


엄마는 새해 첫 출근이라

살짝의 부담과 설렘을 안고 집을 나섰다.


언제나처럼 엄마와 동행하는

너는 학교 다날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느껴지더구나.


단순히 가방을 메지 않아서는 아닌 것 같다.


해가 바뀌었을 뿐인데

넌 이제 성인이 된 것이야.


엄마 눈에는 여전히 아이이지만

이제 넌 어른이 된 게야.


기분이 이상하구나.

네가 어른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아이로 눈에 담고 있었던가 보다.


이 글을 쓰니

이제 정말 넌 네 길을 떠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들어서~

이것참!


안되겠다.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서는 안된다.


너의 술 이야기로 돌아가자.


술을 마실 것이기에 늦을 거라고 생각했더니

아니었다.


7시도 되지 않은 시간

벌써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래서 엄마는 생각했다.

너무 일찍부터 나갔기에 술마시기가

잘 안되었나보다고 말이다.


술이야 뭐 언제라도 마실 수 있으니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후 문자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더구나.


"엄마 나 친구가 좀 취해서 도와주고 갈게"


대답도 못하고 기다렸다.

시간은 이제 7시를 갓 넘은 저녁이건만

너희들은 취하도록 마신 게야.

걱정이 되더구나.


성인이 되어 마시는 첫 술을

제대로 마시고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엄마라 취하도록 마셨다는 것에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다.


친구를 부축해서 데려다줘야 할 정도라니

도대체 얼마나 마신 게냐.


걱정도 무색하게 넌 밝은 얼굴로 돌아왔다.


차에 타서부터 너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1차는 육회 비빔밥을 먹으며

당당하게 술을 시켰다고 하더구나.


아니,

호프집도 아니고 밥을 사먹으면서

거기에 반주처럼 술을 시켜 마셨다니.


이거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순진한 너희들은

술집을 찾지도 못하고

밥을 먹으며 당당하게 술을 시켰다고 기뻐한 게야.


이 모습에 웃음이 터지는 걸

겨우 참았단다.


그것도 1차라고 표현하면서

상기되어 신나하며 말하는 네 모습이

엄마는 그저 귀엽게만 보였단다.


2차로는 편의점에서 당당하게

민증을 제시하고 술을 샀다고 했지.


그 술을 가지고 공원에서 마실려고 했더니

너무 추웠대나?


폼 잡고 술을 마시려다 추위에 벌벌 떨다

다시 술 마실 장소를 찾는 너희들의 모습이 떠올라

엄마는 또다시 웃음을 참아야 했다.


아니

크게 웃었구나.

너도 웃고 엄마도 웃고 말이다.


너희들은 편의점에서 산 술을 가지고

김밥집에 가서 마셨다고 했다.


그게 2차라고 하더구나.


푸하하하하


어쩔 수가 없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구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김밥집은 술을 팔지 않아

구석에 숨어 살짝씩 마셨다고 했지.


모두 괜찮았는데

친구 한 명이 취했다고 버스에서

계속 속이 울렁거린다고 해서

토할까봐 걱정했다고 했다.


돌아오는 시외버스에서,

그렇게 술을 마실 때는

책임도 따름을 자연스럽게 배웠던 게다.


친구와 둘이서 취한 친구를 부축해서

집까지 데려다주고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말해주더구나.

소주로 한 병하고 반을 더 마셨다고 했지?


놀랐다.

제법 많은 양이 아니냐?

그것도 소주라니.


집에서 엄마랑 마셨던 맥주를 이야기하며

넌 소주가 너에게 맞다고 하더구나.


그러면서 또 이런 말도 했다.

너의 주량을 어느 정도 알게 되어 기쁘다고 말이다.

물론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도 안다면서 아는체까지 하더구나.


네 주량을 알고 싶었대나?

술에 취하면 어떤 기분인지 궁금했대나?


상기된 너의 표정.

술냄새를 풍기면서 떠들어대는 너를 보는데

엄마는 왜이리도 웃음이 나냐.


성인이 되어 당당하게 마신 너의 첫 술!

잘했다.

웃음으로 안아주마.


모험을 하듯 너희 네 명이

시내를 떠돌며 벌인 술 이야기.


이렇게 남기며 마무리하려고 한다.


법륜스님 말씀 기억하며 살자!


술을 마시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술에 취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씀 말이다.


술에 잡아먹히는 삶은 살지 말자!

네가 술을 마시면 돼.

엄마도 마찬가지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나를 마시게 해서는 안돼.


한마디로

술에 취해 개가 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는 거야.


그렇지 않다면

술을 마시는 건 잘못이 아니야.

그치?


이거 엄마가 제대로 말하는 게 맞는지

갑자기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제와서 말하지만

사실 걱정 되었단다.


성인이라고 해도 엄마눈에는 아직 아이로 보이니

아이들 끼리 나가서 술을 마시고 오겠다는데

어느 엄마가 걱정이 되지 않겠니.


걱정이 무색하다.

잘 했다.

잘 마시고 왔다.


지금처럼 술을 마시렴.

니가 술을 마시고 살아야 해.

책임지는 선택을 하면서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알지?


결국은

엄마의 잔소리로 끝나는구나.


잘했다고 하면서도

걱정을 놓지 못하는 엄마라니!

에궁

이젠 정말 놓으마.


넌 네 인생을 멋지게 살아갈 아이니깐.


네 삶을 응원하마.

성인이 되어

당당하게 술을 마신다고 자랑하는 너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사랑한다. 내새끼야.

당당하게 술을 마시는

귀여운 내새끼야.


스물 살, 너를 응원하며

이만 줄이마.


아참, 이말은 해야겠구나?

술마신 게 언제라고

넌 1, 2월 대학가기 전에

부족한 공부를 하겠다고 계획을 세우더구나?


아무래도 시골 학교라

전혀 배우지 못한 부분의 수학을

공부하겠다고 말이다.


이것이야.

너는 네 삶을 아주 주도적으로 잘 살아낸단다.


이것은

연초부터 술을 실컷 마셔보았기에 가능한 것이려나?


술 이야기로 시작해서

술 이야기로 끝을 내마.


네 인생

너의 길

잘 살아낼 멋진 내새끼.


엄마가 늘 응원한다는 거

알지?

^^*


2026년 1월 6일.
화요일 7:08

이른 아침에 시작했건만
어쩌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ㅎㅎㅎㅎㅎ

오늘 하루도 우리 잘 살자.
너는 너의 자리에서
엄마는 엄마의 자리에서

사랑한다. 내새끼야.
이거 절때 욕 아니다.
^^***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