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당 아들

by 필이

"엄마, 시간 있어?"


"어…… 조금?"


아들이 "엄마, 시간 있어?"'라고 묻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일 경우다. 하나는 고민이 있거나 의논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공부한 것을 엄마에게 가르치며 확실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통 두 번째일 경우가 많다. 특히 시험 기간이면 백발백중이다.


아이는 헷갈리는 문제나 어려운 개념 등을 엄마에게 설명해주며 정리한다. 아이만의 공부법이다. 고3 엄마라고 해주는 것이라고는 아침에 학교 데려다 주는 것밖에 없는 엄마이기에 학생 알바라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 다짐한다.


아이 과외 선생님마저 아이 공부법 대로 해줄 것을 요청한다. 아예 화이트보드도 사주라고 한다. 다이소에 가면 그리 비싸지도 않다면서 말이다. 가르치는 공부법이 아주 좋다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주는 공부법이 훌륭하다고 칭찬까지 듬뿍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것에 문제가 좀 있다. 중학생 때까지는 그래도 아이가 하는 말을 반은 알아 듣겠더니 고등학생이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훨~~~~~씬 많다는 것이다. 열 개를 말하면 한두 개 알아들을까 말까다. 모르는 말을 듣고 있으니 자연히 눈은 감기고 아이는 눈을 뜨라고 하고. 이것참. 쉽지 않은 알바다.


양자역학이 어떻고~~ 무슨 이론이 어떻고~~ 그래가지고 누구에 뭐가 어떻고~~~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다. 듣다 듣다 도저히 견디지 못한 엄마가 이야기한다.


"하나도 모르겠다. 니는 어떻게 그렇게 어려운 거를 다 아노? 이름자체도 어렵구만. 그걸 어떻게 다 기억을 하노? 니 천재가?"


"엄마, 나 대한민국 고3이야. 이 정도는 누구나 아는 거라고."


"?????"


아이가 겸손한 것인지 아니면 진짜 대한민국 고3은 이정도는 껌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엄마 고3 때와는 완전히 다른 건가. 엄마는 너무 놀았던 학생인가. 엄마는 의문을 안고 과거로 잠깐 다녀온다. 둘 다일지도 모른다는 답을 안고 금방 돌아오지만.


아이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기뻐하는 것은 아마도 아이보다 엄마가 더 클지도 모른다.


선생 역할만 하던 필이가 아이 덕분에 학생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하나도 못 알아들을 때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인지를 말이다.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만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수업이긴 하다.


아이는 무지한 엄마가 알아들을 수 있을만큼 설명을 하고 또 한다. 최대한 쉽게 설명하기 위해 무수한 예를 든다. 엄마가 이해했는지 졸지는 않는지 중간중간 질문까지 한다. 눈만 뜬 채로 딴 생각을 하거나 모르는 걸 아는 척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학생 지대로다! 이러다 엄마가 시험을 칠 판이다. 그러니 시험이 끝났다는 소식에 엄마가 얼마나 기뻤을 것인지 상상이 가는가. 어쩌면 아이보다 엄마가 더 기뻐했을 지도 모른다는 후문이다.


아!


기말고사까지 다 끝났다. 얏호~!


신나게 보내던 어느 날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는 엄마에게 아이가 와서는 손목을 내민다.


"엄마, 이거 안 끼워진다. 불량품인갑다."


이번에 새로 산 손목 보호대이다. 오른쪽 연골 수술을 한 손목이 아파 손목 보호대를 산다. 기존 것보다 가볍고 아주 좋다. 오랜 사용으로 늘어난 것들을 다 버리고 이번에 산 것으로 두 세트를 더 구입한다. 한 세트는 집에서 착용하고 한 세트는 직장에서 사용하고 나머지 한 세트는 아이에게 준다. 아이도 공부하면서 손목을 많이 쓰기에 손목 보호대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보호대 끈을 이음새에 끼우고 동그랗게 만든 다음 그 사이에 손을 넣고 줄을 당겨서 손목에 딱 맞게 찍찍이를 붙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안된다는 것이다.

설거지를 하다 말고 고무장갑을 벗는다. 불량품이면 귀찮아진다. 반품을 하든 교환을 하든 구입한 곳에 전화해야 하고 접수해서 다시 택배 상자에 담아서 택배 기사님이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린다. 여러가지로 귀찮다. 그래서 웬만하면 교환이나 반품없이 사용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건 상태가 심각하다. 찍찍이가 안 붙으면 손목에 착용 자체를 할 수가 없다.


"이거 봐 봐."


아이는 손목 보호대를 손목에 끼우고 시연을 한다. 자신의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사뭇 진지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당기면 여기에 '착'하고 붙어야 하는데. 이거 봐라. 안 붙는다."


정말이다. 붙어야 할 찍찍이가 붙지를 않고 맥없이 떨어진다. 아예 붙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네? 그거 안 붙으면 소용없는데……. 다른 거는 괘않던데 니꺼만 불량인갑네."


고무장갑을 벗은 손으로 아이의 손목 보호대를 잡으려고 한다. 자세히 보기 위함이다. 바로 그때!


"어? 뒤집어서 찼네? 아, 이렇게 하면 되네!"


"……."


아이는 손목 보호대를 벗더니 뒤집어서 다시 착용한다. 그러더니 끈이 당겨져서는 '착'하고 붙는 것이다.


알고보니 안쪽과 바깥쪽을 반대로 착용한 것이다. 안쪽 맨들맨들한 곳을 바깥으로 착용했으니 붙을 리가 있겠는가. 찍찍이 자체가 없는 그곳에 말이다.


"하하하하하"


엄청 큰소리로 웃는다. 웃음이 터져나온다. 얼마나 웃었는지 배꼽이 "나 어디 있게? 나 찾아봐라." 숨바꼭질한다. 배꼽이 빠져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아이는 찍찍이까지 잘 붙여서는 신난다면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이번에 산 손목 보호대가 무척 마음에 든다면서 말이다.


하하하하하.

이런 허당 같은 아들이 있나.

만날 알아듣지도 못할 만큼 어려운 이야기를 척척 하더니 정작 손목 보호대를 뒤집어서 끼다니! 안과 밖을 거꾸로 하고서는 찍찍이가 안 붙는다며 쫓아오다니!


푸하하하하.

웃음이 좋다고 야단이다. 빠진 배꼽은 신경 쓰지 말라며 실컷 웃으란다.


하하하하하.

이런 허당같은 아들이 좋다. 인간미가 넘치지 않는가. 어릴 때부터 아이가 100점 받아오면 하는 말이 있다.


"인간미 없게 백점이 뭐고? 하나 정도는 틀려줘야 인간미가 있지."


한두 개 틀렸다며 속상해 할 때는


"아하하하하. 역시 이제야 인간미가 좀 있네. 그래 좀 틀려줘야 인간적이지 않겠나?"


어쩌다 올백 맞았다고 할 때면 엄마는 심각해진다.


"올백이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점수가? 하아, 인조인간도 아니고 어찌 인간미가 하나도 없노."


다 잘하면 재미없다. 이렇게 허당인 아들이 좋다. 뒤집어서 한 걸 다시 바로 해서는 찍찍이가 붙는다며 좋아하는 울 아이가 참 좋다. 인간미 철철 넘치는 울 아이가 너무너무 좋다.


아이야,

그래 조금은 허당인 채로 살자.

너무 완벽하려고 하지 말고.

조금은 빈 채로.

그렇게 살자!




오필리아처럼~

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