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고 3의 가장 큰 고충이 수면부족이 아닐까. 만성적인 수면 부족이 우리 아이의 눈에도 붙어버렸다. 대신 잠을 자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엄마가 되어도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렇기에 피곤에 꾸벅꾸벅 조는 아이를 보며 마음만 짠하다.
인근 소도시로 과외하러 가는 날이다. 아이는 손에 영어 프린트물을 들고는 열심히 뭐라고 하며 외운다. 그러기를 잠시, 아이는 곧 잠에 빠진다. 손에는 그대로 프린트물을 쥐고서 언제 영어공부를 했냐는 듯 '고로롱' 소리를 내며 잠이 든다. 아이가 고양이라도 된 듯 작은 코를 골며 잔다. 살짝 아이 손을 잡았다 놓는 것으로 마음을 대신 한다.
과외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 어김없이 모자라는 잠을 보충하기 위해 잠을 잘 아이가 잠을 자지 않는다. 눈을 뜨고 있다. 그것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엄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야기를 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은 것이 아니다. 이야기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해야만 할 것을 당연히 하는 것처럼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된다.
"엄마, 단식하는 데 대장인 해피손님이 교통사고 났다고 했잖아? 북토크 와서 축하해주려고 했는데 교통사고 나서 못 온다고 미안하다고 문자 왔었잖아. 폐차 돼도 몸은 멀쩡한 사람 이야기도 듣고 해서 그렇게 크게 다친 줄 몰랐는데, 제법 많이 다치셨나 봐. 온 몸이 멍들고 골절 돼고, 수술 안해서 다행이다 하는데 이게 또 어떨지 모르니깐. 혼자서 일어나고 그러지도 못하는가 보던데. 엄마 북토크 못 와서 미안하다고 그 말을 먼저 하시다니……."
마음이 가라앉는다. 파란수영장에서 물이 자꾸 잡아당기며 필이를 가라앉히듯이 마음이 저 아래로 가라앉는다. 더이상 가라앉지 못할 정도로 내려가다 이젠 아에 심연 속으로 사라진다.
아이는 아무 말도 없이 듣고 있다. 엄마의 무거운 마음을 같이 느끼기라도 하듯이 가만히 듣고 있다.
"어제 통화하는데 뭐라고 하는지 아나? 폐차될 정도로 큰 사고가 나서 자신이 죽어야 될 운명인데 살아서 감사하단다. 제일 먼저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계속 감사하다고. 안 죽고 살아서 감사하다고 그러는데……."
아, 필이의 눈물 꼭지가 또 고장이 나고 말았다. 차 안에 습기가 찬 것도 아닌데 어쩐다고 또다시 물이 차오르냔 말이다. 눈 앞에 뿌연 막이 생긴다. 불투명한 유리 너머로 밖을 내다보듯 눈 앞이 흐리다. 이런 운전해야 하는데 낭패다. 눈물을 '꾹'하고 참았더니 이번에는 콧물이 훌쩍 거린다. 다행이다. 차가 멈췄다. 빨간 신호등이 이렇게나 반갑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휴지를 얼른 찾아다 코를 '팽'하고 푼다. 눈에 묻은 습기도 닦아낸다.
"지금 살고 있는 이 하루가 참 소중한 것인데. 그걸 잊고 살았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미'이상의 소리는 내지 못하는 고장난 악기처럼 목소리가 낮은음을 연주한다.
"엄마, 성심원 다닐 때 생각나나? 그때 아침마다 십자가 손에 쥐고 '오늘 하루도 허락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할 수 있는 건강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하고 출근했었는데, 그때 하루하루가 감사로 넘쳐났었는데. 다 잊어버리고 살았다."
오랜 병원 생활. 길어지는 재활 치료. 어쩔 수 없이 다니던 일을 그만 둬야 했던 어둠의 골짜기를 지나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의 기쁨이란. 지금 생각해도 충만함으로 가득한 하루하루였다. 날마다 기쁘고 날마다 감사한 하루하루. 입에서는 '감사합니다.'가 마법의 주문처럼 매달린다. 그것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다 잊어버리고 산다.
"십자가 그거 생각나제? 캄보디아 갔을 때, 장애인분들 있는 곳에 갔는데 엄마가 아파가지고. 장애인 분이 엄마 돌봐줬잖아. 그때 받은 십자가. 그거 만날 들고 다니고 힘들 때마다 손에 쥐고 그랬는데, 그거 어디다 뒀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나무로 만든 거라고 했다. 무슨 나무인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장애인 분들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 장애인 분이 돌봐주던 따스함 때문인지 작은 나무 십자가는 필이가 힘들 때마다 함께 한다. 병원에도 가지고 간다. 수술하고 힘든 순간에도, 잠을 이룰 수 없는 고통의 순간에도 필이 손에 꼭 쥐고 함께 한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장애인 분이 전해주던 그 온기가 다시 전해지면서 힘든 것이 사라진다. 고통이 사라진다. 그러니 그걸 붙들고 날마다 감사기도를 하게 된다.
이렇게나 소중한 십자가를 어디에다가 뒀는지도 모른다니. 오늘에서야 그 생각을 한다니.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간사한지 다시 느낀다. 힘들 땐 붙잡고 살던 것도 조금 괜찮아지니 잊어버린다.
병원에 있을 때는 퇴원만 하면 건강을 위해 뭐든지 다 할 것처럼 하다가도 막상 퇴원하고 일상을 살게 되면 언제 아팠냐는 듯이 잊고 산다. 그것과 똑같다. 지금의 필이가 말이다.
말이 길어졌던가 보다. 어느새 식당 앞에 도착한다.
시험을 앞둔 아이를 위해 건강을 생각하면서도 배에 부담을 주지 않는 메뉴를 선택한다.
생선 구이와 생선 조림을 중심으로 반찬이 놓인다. 이열치열이 최고라고 자랑이라도 하듯 밥도 국도 따뜻한 김을 내며 자리를 잡는다. 산초가루를 넣고 고추 다대기도 넣는다. 국을 좋아하는 필이는 얼른 뜨거운 추어탕 국물을 한 숟가락 뜨고는 입에 넣는다. 그리고 한 숟가락을 더 뜨려다 그만 얼음이 된다.
"엄마 말 들으면서 삶을 배우는 것 같다."
땡을 해줘라. 아들아.
"엉?"
"엄마 이야기 들으니깐 삶을 배우는 것 같다고."
"어? 긍정적으로?"
아이의 말에 땡이 된 엄마는 언제 낮은음만 연주했냐는 듯 금세 '솔'이 되어 반짝인다.
"그건 살아봐야 알지. 아무리 배워도 내가 살아봐야 삶이 긍정적인지 아닌지 알게 되지."
"아니, 삶을 배운다는 거. 그게 좋은 거냐고."
"나쁘진 않지."
울 아이에게서 '나쁘지 않다.'는 말은 '좋다.'는 말과 같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삶을 배우는 것 같다는 아이의 한 마디에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건 뭐지? 이번에는 '솔'이 아니라 '라, 시, 도~'까지 연주할 수 있겠다.
혼자 중얼거리듯, 혼자 읖조리듯, 스스로에게 주문이라도 걸려는 듯 중얼중얼 했던 말에 아이가 삶을 배운단다.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가 스스로 배운단다. 참 기특한 아이다.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면 안된다도 하지 않는다. 법륜스님 말씀처럼 도둑질 안하고 성추행 안하고 남 괴롭히는 것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스스로 선택해서 자유롭게 살도록 한다. 엄마도 이래라 저래라 하면 더 하기 싫어지는 청개구리이기에 아이에게도 강요하지 않으려고 한다. 엄마를 닮았다면 울 아이도 청개구리일 테니.
빨간목욕탕도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가 없다. 그 속에는 필이가 느끼고 깨달은 것이 있을 뿐이다. 그것에 함께 공감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느끼고 깨달은 걸 솔직하게 말한다. 못하는 부분도 그대로 인정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넘어지고 깨져도 다시 일어서는 엄마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 그걸 보고 아이는 삶을 배운다고 한다. 아이의 한 마디가 이리도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나저나 아이야. 돌아오는 차에서 왜 잠을 자지 않았니?
"졸린데. 엄마 이야기 듣다 보니깐 잠이 없어지더라."
그렇지? 엄마가 일부러 잠 못자게 한 건 아니지. 그치? 휴우. 다행이다. 명색이 고3 수험생 엄마인데 아이 잠까지 방해했다가는 완전 엄마 실격이지 않은가. 실격은 면했으니 다행이다.
그런데 아이야.
엄마 목소리도 낮아지고 자장가처럼 중얼중얼 거렸는데 어쩐다고 잠이 없어지니? 더 잠이 오지 않고?
"몰라, 엄마 이야기에 빠졌나 보지. 뭐."
엄마 이야기를 들으며 삶을 배운다는 아이의 말 한 마디가 엄마를 또 살게 한다.
어서 십자가를 찾아야겠다. 잃어버렸던 감사를 다시 찾아야지! 오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하루를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매일 아침 빛이 되어 준 그 기도를 되찾아야겠다.
오필리아처럼~
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