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귀신이 산다

by 필이

.......훌쩍

.......훌쩍


거실에 앉는 필이에게 들릴 정도로 제법 큰 소리다.


'목이 살살 아프다고 하더니 감기에 걸린 건가'


학교에서도 하루종일 에어컨 바람을 맞는 아이는 집에서도 에어컨 바람 밑에서 산다. 거실이나 필이방은 여태 딱 한 번 에어컨을 작동한다. 하지만 아이는 학교 마치고 오면 바로 자신의 방에 에어컨을 켠다. 좀 덥다 시작할 때부터 에어컨은 돌아가기 시작한다.


아이방은 작다. 에어컨을 조금만 켜놓아도 금세 차가워진다. 게다가 에어컨이 책상 바로 위에 설치되어 있어 공부한다고 앉으면 아이 머리 위로 에어컨 바람이 바로 분다. 아이는 모자를 쓰기도 하고 바람 방향을 높여서 괜찮다고 한다. 보는 엄마는 영 신경쓰인다. 아이가 에어컨 바람을 직격타로 맞으니 안그래도 목이 약한 아이가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이다.


"엄마, 감기 걸릴 것 같아. 목이 좀 아파. 나는 내 몸을 잘 알 거든. 이렇게 목이 좀 아프다 싶으면 꼭 감기에 걸리더라고?"


며칠 전 빨래를 널고 있는 필이에게 아이가 오더니 불쑥 이 말을 하고는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감기라고? 가만 있자. 뭘 먹여야 되지? 아! 그게 있었지!'


필이는 빨래를 널다 말고 무언가를 찾는다. 바로 조청으로 만든 생강 조청, 서리맞은 무엿, 홍도라지 조청. '지리산 농부들'에서 나온 이 녀석들을 먹으면 아주 좋다. 얼마전 필이도 코가 맹맹한 게 감기 걸릴 듯 하여 하나씩 먹었더니 감기가 도망가버린다. 서도밴드 선물용으로 구입하면서 필이도 한 세트 산 것이 아주 쓰임이 좋다.


며칠 전 아이가 목이 아프다고 할 때 이것을 먹인다. 생강 조청은 맛이 좀 강해서 먹기가 힘들다. 무엿이나 홍도라지 조청은 먹기에 괜찮다. 특히 홍도라지 조청은 달짝지근한 것이 맛도 있다. 몸에 좋아라고 먹는 것이지만 맛도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결국 먹기 좋아야 손이 가니깐. 그러다보니 홍도라지 조청이 제일 인기다.


"이거 너무 끈적해서 먹기 별론데……."


"그래도 먹어야 된다. 감기 안 걸리구로."


필이는 세 가지 종류를 가지고 가서 선택하라고 한다. 안 먹는 건 선택 조항에 없다. 역시 울 아이도 홍도라지 조청을 선택한다. 얼굴을 살짝 찡그리더니 쪽쪽 짜서 먹는다.


"홀딱 홀딱 먹지 말고. 목에 머금으면서 넘겨라. 그라면 목에 더 안 좋겠나."


필이는 아무 근거 없는 생각을 아이에게 강요하며 방을 나선다. 아이가 먹는 걸 확인하고서야 말이다.


정말로 효과가 탁월한 것인지 아이는 홍도라지 조청 하나 먹고는 그 다음 감기에 'ㄱ'도 꺼내지 않는다.


'역시 조청이 효과가 좋다니깐. 가만 있어보자. 몇 개 안 남았는데 좀 더 사야 하나?'


효과가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걸까. 아이가 조청 먹기 싫어서 감기에 걸렸는데도 말을 안 한 걸까? 약 먹기 싫어서 아픈데도 안 아프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살며시 의심이 간다.


.......훌쩍

.......훌쩍


신경쓰인다. 목이 아프다고 한 게 제법 오래 전인데 이제서야 코감기가 걸린 건가. 거실에 앉은 엄마는 아이의 훌쩍거리는 소리에 다른 것을 하지 못한다. 마음이 아이 걱정으로 가득 차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걱정이 넘친다.


"원아, 조청 한 번 더 먹자."


세 가지 종류 조청을 손에 들고 아이 방에 들어간다.


"어? 갑자기?"


공부하고 있던 아이는 엄마 얼굴 한 번 쳐다보고 엄마 손에 있는 조청 삼종차를 한 번 쳐다본다.


"니, 계속 훌쩍거리네. 감기 심해지기 전에 이거 먹자."


"어? 나 안 훌쩍거렸는데?"


"무슨 소리 하노? 거실까지 니 훌쩍거리는 소리 다 들리던데!"


"어? 나 안 했어."


아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엄마를 바라본다. 그러다 엄마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린 것인지 갑자기 눈꼬리가 살짝 내려오다 옆으로 찢어지고 입꼬리는 살짝 올라간다.


"엄마, 나 아무리 배 고파도 콧물 안 먹어. 알지?"


푸하하하하.

이녀석이 이렇게 엄마를 웃긴다.


필이가 잘 쓰는 말이다. 코감기로 코를 훌쩍거릴 때면 "아무리 배고파도 콧물은 먹지마." 라고 한다.


감기 걸려 힘든 아이에게 잠깐이나마 웃음을 준다. 심각한 것이 조금은 덜어질 수 있도록. 검어지는 마음에 흰색 물감이 살짝 풀어지도록.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엄마 마음을 담은 말이다.


그 말을 지금 아이가 하는 것이다. 짓궂은 표정을 지으면서 심각해지는 엄마 마음에 웃음을 선물한다. 한참 웃던 필이는 뭔가 생각난 듯 다시 정색을 한다.


"그라면 누가 훌쩍거린단 말이고? 거실에까지 소리가 제법 크던데?"


눈이 커진다. 놀란 눈이다. 얼굴은 정지 상태다.


"어? 귀신 소린가?"


"뭐?"


공포물에 약하다. 무서운 걸 보면 밤에 잠을 못 잔다. 사람들은 '여름에는 역시 공포물'이라며 극장을 찾지만 필이는 제외다. 무서운 건 싫다. 윽~~!


"엄마, 몰랐어? 우리집에 귀신이 산다는 거?"


아이 얼굴은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짓궂음으로 가득하다. 엄마를 놀리려는 의도를 숨기지도 않는다.


"무슨 소리하노.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진짜 들렸다. 아주 큰 소리로. 계속 들렸는데……."


"난 안 했는데? 봐, 나 멀쩡해. 그러니깐 누가????"


역시나 아이는 마지막 문장을 말할 때 목소리마저 살짝 깔아서는 공포분위기를 만든다.


"하지 마라니깐!"


필이는 도망치듯 거실로 나온다.


'도대체 뭐지?'


엄마가 걱정이 되었는지 아이도 따라 나온다.


조용하던 그때!


.......훌쩍

.......훌쩍


필이는 놀라고 만다. 그리고 아이를 바라본다.


"진짜 니가 아니네? 들리제? 훌쩍거리는 소리?"


"어. 진짜 들리네? 밖에 누가 있는 거 아니가?"


우리집은 3층이다. 거실문을 활짝 열어두었으니 누군가 밖에 있다면 그 소리가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이 없다. 아무도 없다. 도대체!"


거실 창문을 내다보고는 더 놀라고 만다.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리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동물이 감기 걸렸나?"


"어?"


아이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다시 거실 창문을 내다본다.


.......훌쩍

.......훌쩍


다시 들리는 소리.

이제야 확실히 밖에서 나는 소리라는 걸 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동물이 감기에 걸렸다고? 가까운 곳에 감기 걸린 동물이 훌쩍거리며 있다고?


의문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집에 귀신이 없다는 것에 안심하며 거실 창문을 닫는 것으로 이 일은 헤프닝으로 막을 내린다. 하지만 훌쩍거림의 정체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정말로 감기 걸린 동물이 가까이에 있었던 걸까.


이 글을 쓰는 순간 등에 소름이 쫙 돋는 건 왜지?

뜨악!





오필리아처럼~

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