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같은 하늘이다. 어제 그렇게나 무섭게 퍼붓더니. 식상한 표현으로 하늘에 구멍이 난 줄만 알았다. 사실 하늘을 볼 수가 없다. 온몸을 때리며 퍼부어 대는 빗줄기를 피하기에 바쁘다. 잠기기 시작하는 도로를 피해 집으로 오기 바쁘다.
처음으로 차가 커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 전에 타던 경차였다면, 필이 최초의 차인 티코였다면, 지금 이 빗줄기에 떠내려갔을 것이 분명하다. 차 욕심 없는 필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차가 커서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깊이 깊이 내쉰다. 저 깊은 곳에 숨겨둔 두려움까지 다 꺼내서 버리려는 듯이.
겨우 돌아온 집. 현관문을 열고 비에 폭삭 젖어버린 우산을 펼쳐서 놔두고서야 실감한다. 무사히 집에 돌아온 것을!
"이사오길 잘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울 아이가 하는 말이다. 고3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파트로 이사와서 다행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산골에 살았다면 지금쯤 재난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공포에 떨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산을 깎아 만든 산골 마을, 그 마을 중에서도 가장 위에 위치한 집. 바로 뒤가 산인 작은 집.
조금만 비가 많이 내려도 집 바로 옆에서 흐르는 개울이 넘친다. 커다란 자연 재해 앞에서 집도 작고 사람은 더욱 작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아이는 이사오길 잘했다고 한다. 솔직히 아이에게서 이런 말을 처음 듣는다. 산골을 무척 사랑하던 아이다. 밤이면 밖에 나가 별을 바라보고 아침이면 떠오르는 해를 핸드폰 카메라에 담을 줄 아는 아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이사오길 잘했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이사오길 잘했다는 말을 달고 산 건 아이가 아닌 엄마이다. 고등학교는 통학버스도 없기에 산골에 살았다면 아이 학교다니는 것이 문제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워킹맘으로 아이 통학을 책임진다는 건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혼자 가는 것과도 같다. 그 책임이 무겁다는 말이다.
이사온지 1년 3개월 만에 아이 입에서 처음 들은 말에 놀라는 것도 잠시다. 정말로 이사 내려오길 잘했으니깐.
산이 무너져 내린다. 토사가 흘러 내려 길을 막는다. 하수구로 빠져야 할 물이 역류하여 강을 이룬다. 무섭다. 계속 울려대는 긴급 재난 문자에 무서움은 더 깊어만 간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무서운 밤도 지나간다. 아침이 밝는다.
아침은 거짓말처럼 밝다. 파란 하늘이다. 햇살마저 빛난다. 빗방울이 맺힌 꽃잎이 자신의 예쁨을 뽐낸다. 아름다움에 취해 카메라에 담는다. 거짓말 같은 하늘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 필이 또한 다시 자연의 아름다움을 폰카에 담는다. 능청맞은 하늘에 능청맞은 필이다.
낮동안 환하던 하늘이 또 거짓말처럼 어두워진다. 어제보다는 빗줄기가 약해지긴 했지만 이미 놀란 가슴이라 겁부터 난다.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집에 도착한다.
아이와 저녁을 먹는다.
"원아, 카페 음악 좀 틀어줄래? 너 예전에 잘 틀어주던 거 있잖아."
"갑자기?"
"응, 기분이 좀 이상해서."
자연의 거대함 앞에 작은 필이를 본다. '나는 자연이다. 나는 우주다.' 외치던 필이는 어디로 갔는지 흙탕물이 되어 소용돌이 치는 빗물에 무서워 벌벌 떠는 작은 사람만 있을 뿐이다.
무엇이 무서운 걸까.
무엇이 두려운 걸까.
어떤 이는 번개마저 아름답다 시를 쓴다. 필이는 두렵다. 무섭다. 방실방실 웃던 자연은 거짓말 같다. 푸르름으로 구름 조각으로 뽐내던 하늘은 거짓말 같다.
무엇일까.
무엇이 두려운가.
무엇이 무서운가.
죽고 싶다 외칠 때도 있었다. 손목에 컷터칼을 대고 피가 날 때까지 누른 적도 있다. 차마 그을 용기가 없어 산다. 약을 사다 모으고 삼킨 날이 있다. 약을 먹고 잠자듯이 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잠이 든다. 밤새 토한다. 그러고는 산다. 술과 함께 삼키면 효과가 좋다는 말을 듣는다. 이번에는 대단한 결심을 하며 술과 함께 삼킨다. 눕기도 전에 토한다. 다시 산다.
죽는 것도 마음 대로 안 된다며 절망한다. 죽지도 못할 거면 살자. 결심했을 때 필이 몸은 이미 망가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함부로 한 몸이기에 그 몸이 이제야 필이에게 호소한다. 몸을 좀 사랑해달라고. 제발 좀 아껴달라고.
어쩌면 오래전부터 경고를 했는지도 모른다. 이대로 함부로 해서는 큰코 다친다고! 그 말을 들을 귀가 없다. 그런 몸을 읽어낼 마음이 없다. 아무것도 없다. 몸이 하는 말을 들을 귀도, 몸이 보내는 신호를 읽을 눈도 아무것도 없다.
살아보자. 이젠 살자!
그러니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힘들게 견뎌온 몸이 이젠 지쳤다며 하나 둘 손을 든다. 그렇게 병원을 내집처럼 드나든다. 머리부터 팔이며 다리며 수술칼을 대지 않은 곳이 없다.
이젠 살고 싶다. 우리 아이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 삶에 애착을 느낄수록 죽음에 대한 공포가 함께 한다. 죽음이 막연히 슬프고 막연히 아픈 것이었는데, 이젠 아니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필이 생명이 필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두렵다. 무섭다. 죽는다는 것이 너무도 무섭다. 잘 죽자 했건만. 잘 죽을 거라 큰소리 쳤건만.
하늘이 말해준다. 사실은 필이 안에 겁쟁이가 있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을 살자며 오늘이 다인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더 오래오래 울 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욕망덩어리 필이가 있다는 것을 하늘이 말해준다.
필이는 참 작다. 거대한 자연 앞에 작은 아이로 존재할 뿐이다.
"원아. 지난 번 산불났을 때는 엄마는 허둥지둥 겁나서 난린데 니는 태연하게 공부했잖아? 근데 어제는 이사오길 잘했다고. 생전 안 하던 말을 다 하노?"
"사실 산불은 나한테 직접적으로 느껴진 게 없었거든. 친구 집 바로 앞이 탄다면서 사진 찍어서 보내줘도 내가 보이는 곳에서는 불이 안 보이니깐. 그런가보다하고 남 이야기 같더라고. 근데 어제는 내가 직접 겪었잖아. 물이 쏟아지고 물이 차오르고. 바로 앞에서 벌어지니깐 어제는 나도 무섭더라."
솔직한 아이 말에 그만 웃고 만다. 산불 났을 때는 '산불', '산불' 해도 '강 건너 불구경'인 것이고, 어제는 바로 눈 앞에서 아니 온 몸으로 들이치는 빗줄기를 맞으니 실감한 것이다.
사람 살고 죽음이 하늘의 뜻이라는 것을!
아이도 엄마도 온몸으로 느낀 날이다.
모든 것을 마음 대로 하고 살 수 있을 것만 같지만 실상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하늘이 허락할 때 뿐이라는 것을!
오늘 하루!
하늘이 허락해주었기에 살 수 있다. 그러니 감사히 살자! 필이가 사는 것이 아니다. 삶이 주어진 것이다. 주어진 오늘에 감사하며 그렇게 살아야 할 뿐이다.
아이야,
너와 함께 할 날들이
너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너무도 소중하다.
우리 함께 하는 날 동안
더 많이 사랑하자.
사랑한다. 아이야!
나의 아이야.
오필리아처럼~
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