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했어 한 마디!

by 필이

전기가 끊긴지 다섯 시간이 넘어가고 있다. 전화도 문자도 그 어떤 것도 되지 않는다.


세상과의 단절!

철저한 고립!


빗줄기는 계속 들이친다. 아니 퍼붓는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게 틀림없다. 아니면 하나님에게 너무도 슬픈일이 생긴 걸까.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픈일이 생겨 그 눈물에 세상이 떠내려가는 것도 모를 정도로 '꺼이 꺼이' 울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꼭 안아주고 와야겠다. 눈물을 그칠 수 있도록!


슬픈 게 아니라면 어쩌나. 화가 난 거라면.

인간들이 저지르는 악에 견디다 못해 노한 거라면. 그러면 어쩌나. 아닐테다. 화가 난 것이라면 왜 선한 사람들이 더 피해를 입는 이런 비를 뿌리겠는가. 그건 아닐테다.


신의 섭리를 알 길 없으니 더더욱 답답하다. 어찌 되었든 비가 그만 그쳤으면 좋겠다.


하나님!

눈물이라면 그만 '뚝' 해주시고 노하신 거라면 악한 이 머리에만 퍼부어주십시오! 지금 이 비는 너무도 선한 분들에게 내립니다. 농사 짓고 짐승 키우며 살아가는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가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비를 거두어주십시오!


이중 샤시를 자랑하는 안전한 창문 안에서 세상에 불어나는 비를 보며 빌어본다. 흙탕물이 소용돌이를 이루며 불어나는 길들을 보며 "제발!"이라며 빌어본다.


"엄마, 우리 밖에 나가보자. 밖에 가면 소식이라도 알지 않겠나.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이대로 깜깜해지면 우짜노."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회새빛마저 사라져갈 무렵, 아이는 집을 탈출하자고 한다. 저 물길을 뚫고 세상으로 나가자는 것이다. 고립되어 막힌 세상에 작은 구멍이라도 뚫어 연락해보자고 한다. 첫날밤 신혼방 창호지 문을 손가락에 침을 발라 구멍 뚫듯이 그렇게 세상으로 가는 구멍을 만들자고 한다.


"이 비를 뚫고 가자고?"


"응, 이대로 있어도 아무것도 못하잖아. 진주까지는 아니더라도 원지까지만이라도 가보면 안 되겠나. 거기도 정전인지 어떤지. 그래도 여기는 벗어나보자."


아이 말에 용기를 내본다. 이대로 어둠이 내린다면 아이와 엄마는 더더욱 세상과 고립된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소식이라도 알아보자. 결심한다. 이곳을 탈출하기로!


아이는 태블릿을 엄마는 노트북과 책을 챙긴다.


"여기 있어라. 엄마가 차 여기로 갖고 올게."


"아니다. 우산이라도 씌워줄게. 같이 가자."


차 문을 여는 잠깐 동안이라도 우산을 씌워주겠다고 한다. 엄마도 우산이 있지만 차 문을 열고 탈 때는 우산을 접어서 타야 한다. 아주 당연하다. 그 짧은 순간 비에 젖는다는 것이다.


시동을 켠다. 빠르게 돌아가는 와이퍼를 따라 심장이 두근거린다. 지금 아파트 주변 상황은 알 수가 없다. 낮에만 해도 차가 다닐 수 있는 수준의 물길이었는데 그 사이 내린 비로 도로가 어떻게 변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가만히 아이 손을 잡는다. 아이도 엄마 손을 꼭 잡는다. 무언으로 전달되는 삶을 향한 강한 의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무사히 가자는 말을! 우린 괜찮을 것이라는 말을! 서로에게 마음을 의지한 채 차가 출발한다.


옆에 있는 엄청나게 큰 밭에서 끝없이 토사가 흘러내린다. 아파트 입구를 흙탕물로 만들어 놓는다. 아래쪽으로 가는 큰길은 이미 물살이 거세다.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내려가는 길을 선택한다. 다행이다. 이곳은 아주 얕은 물길만이 흐른다.


큰길로 나선다. 도로 곳곳에서 물이 솟아오르고 있다. 위험 표지판을 세워둔 곳이 눈에 띈다. 맨홀인 것인지 그 곳 주변이 작은 분수를 이루며 솟구치고 있다. 누가 가져다 놓은 것인지 저 위험 표지판으로 차들이 안전하게 피해갈 수 있겠다. 감사하다.


이제 다리만 건너면 이웃 면이 나온다. 다리가 막힌다. 피난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우리처럼 어두워지는 집을 탈출한 것인지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차들이 길게 줄을 선다. 겨우겨우 다리를 통과한다.


하필 이럴 때 기름이 떨어진다. 주유소로 간다. 다행이다. 우리 면은 정전으로 주유소도 문을 닫았다. 여기는 전기가 들어오는 것이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주유소도 줄이 길다. 필이 차례가 되어 주유한다.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가 끊겨가지고 지금 여기 IC 내려왔어요. 집에 갈라 해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지금 이 차들이 다 고속도로에서 내려온 차들이에요."


대전?

고속도로가 끊겼다고?


내일 새벽이면 대전을 가야 한다. 빨간목욕탕 첫 인세 받은 걸로 성우회 언니야께 가기로 한 것이다. 주유 중인 차에서 내린다.


"아저씨 대전가는 고속도로가 끊겼어요?"


"거만 끊긴 게 아니고 전 고속도로가 다 끊겼어요. 어디도 못 가요. 지금 이 차들이 다 고속도로에서 내려온 차잖아요. 국도로 가라는데 국도도 전신에 길이 끊겨가지고."


"내일 새벽에 대전 가야 하는데. 괜찮을까요?"


"지금으로서는 위험하지 싶은데……."


아저씨의 생생한 정보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안고 카페를 찾아 나선다. 더 웨이닝 카페에 불이 켜져있다.


"6시에 문 닫아요."


겨우 차에서 내려 카페에 들어서는데 카운터에 서 있던 점원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한다.


"네? 6시요? 지금이 5시 반인데……."


다른 카페를 찾아 나선다. 요거프레소 카페도 그 옆에 있는 디저트 카페도 모두 문을 닫았다.


"아까 올 때 보니깐 강변쪽 카페에 불이 켜져있더라. 거기 가보자."


강변 가까이는 겁이 나서 안 가고 싶었던 곳이다. 지금은 그곳에 가 볼 수밖에 없다.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다. 빗줄기가 다시 강해진다.


"엄마, 여기 있어봐라. 내가 혼자 가서 영업하는지 몇 시까지 하는지 물어보고 올게."


"그럴래?"


조금 전 카페에서 짐까지 다 챙겨서 비를 맞아가며 겨우 내려서 들어갔다가 결국 둘 다 되돌아나온 탓인지 이번에는 아이가 혼자 다녀오겠다고 한다. 원정대처럼 아이가 먼저 알아보고 오겠단다.


전화가 울린다.


"엄마, 여기 9시까지 한단다."


상기된 목소리다. 아이도 불이 들어오고 와이파이가 되는 곳이 절실했던 것이 틀림없다.


"잘됐다. 거 기다리라. 엄마 갈게."


"아니다. 엄마, 내가 갈게. 짐도 있고."


말하기가 무섭게 아이가 성큼성큼 걸어서 차로 온다. 문이 열리고 짐을 챙긴다. 언제 이리 든든해졌나. 아이에게 엄마 노트북까지 다 맡기고 엄마는 우산만 쓰고 카페로 들어간다.


"엄마, 여기 있어 봐라. 2층에 자리 있는지 보고 올게."


아이는 2층으로 뛰다시피 올라간다. 마음이 급한 건지 좋아서 뛰는 건지 알 수 없다.


"엄마, 2층은 안되겠다. 탁자가 다 낮은 곳밖에 없다. 엄마랑 나랑은 탁자가 좀 높아야지. 노트북 쓰려면. 여기 1층에 있자."


아이가 하자는 대로 한다. 커피와 빵으로 저녁을 때우고 아이는 아이 대로 태블릿으로 과제를 하고 엄마는 엄마 대로 노트북으로 빨리 지금 상황을 알리는 포스팅을 한다.


8시 30분쯤! 이곳도 인터넷이 끊긴다. 바깥은 어둠이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으면 카페에 있을 이유가 없다. 가방을 챙긴다.


"엄마, 저기 좀 봐봐. 불이 조금씩 들어오는 거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엄마 눈에는 어둠으로 보이는데 아이 눈에는 어딘가에서 불이 켜진 것으로 보인단다.


일단 가보자!

깜깜한 집이라도 지금은 집에 다시 가는 것외에 또다른 선택지가 없다.


어둠은 더한 공포를 심어준다. 도로 곳곳이 파인 것인지 차가 덜커덩 덜커덩 어디에 걸리는 듯한 소리를 낸다.


"이거 무섭네."


아이에게서 튀어나온 말이다.


"어두우면 이게 문제다. 도로 상황이 안 보이니깐. 물은 안 많은데 도로가 파인 건지."


이번에는 아이가 엄마 손을 먼저 잡는다. 엄마도 손을 꼭 잡는다. 무언으로 느껴지는 이것은 무엇일까. 우리 꼭 살아서 가자는 의지이다. 엄마도 아이도 무사히 집에 도착할 거라는 강한 의지이다.


"엄마, 봐봐. 불이 조금씩 들어오는 갑다. 저기 봐봐."


"그렇네! 불이 켜지네?"


아이도 엄마도 목소리가 높아진다. 불 켜진 아파트가 이리도 반가웠던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다.


물길을 얼마나 갈랐는지 모른다.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와 엄마는 약속이라도 한 듯 손을 꼭 잡고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다. 속으로는 정전이 되어 엘리베이터가 멈출까 겁이 난다.


"3층입니다."


다행이다. 무사히 도착한다. 아이와 엄마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약속이라도 한 듯.


삑삑삑삑삑삑

띠리릭!


현관문이 열린다. 아이는 손을 길게 뻗더니 현관등이 자동으로 켜지게 한다.


"엄마, 불 들어온다."


방금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와서 전기가 복구 되었다는 것을 알텐데. 그런데도 집에 불이 들어온다는 것이 기쁜 모양이다. 엄마도 이제야 실감한다. 집이 다시 밝아진다는 것을!


아이도 엄마도 이제야 환하게 웃는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집이 전등 불빛으로 하나씩 드러날 때의 기쁨이란!


너무도 당연하던 이 불빛이 이리도 기쁨이 될 줄이야.


아이도 엄마도 서로를 바라본다. 기쁨에 환호라도 지를 것만 같다. 아니다. 눈물이 핑 돈다. 살아돌아온 것에 기쁘고 집이 다시 살아난 것에 기쁘다.


"엄마, 우리 안아보자."


아이가 먼저 안아보자고 하다니!

잠자기 전에 엄마가 아이를 안으며 '잘자'라고 인사를 한다. 아침이면 '굿모닝' 하며 살짝 안는다. 아이가 먼저 안았던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되감기 할 새도 없다. 아이가 두 팔을 벌리며 엄마를 꼭 안아준다.


"엄마, 고생했어."


"니도 고생했다."


히야~

이 순간에 눈물이 나는 거구나!

아이의 한 마디에 엄마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무시무시한 하늘에 겁 먹은 엄마를, 겁 먹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엄마를 일으켜 집을 나서게 한 아들.

엄마의 움직임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 자신이 더 많이 움직이는 아들.

차 문을 열고 닫을 때 우산을 씌워줘서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게 해주는 아들.

힘든 순간, 약해지는 순간, 손을 꼭 잡아주는 아들.


누가 그랬던가.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본성이 드러난다고!

그렇다면 우리 아이는 위기의 순간에 엄마를 보호하고 더 챙기는 건가?


무엇이면 어떤가.

우리는 살았고 집도 살아났으니 그것이면 족하다.


이번 비는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너무도 많은 깨우침을 준다. 이젠 그만 깨우쳐도 되니 비는 그만 내리기를~!


거짓말처럼 맑은 하늘이 웃는다.


웃지마라. 하늘아!

아직은 네가 밉다!



오필리아처럼~

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