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척 든든한 내 편

by 필이

아들아,

스물일곱 번째 편지구나.


이렇게 편지를 쓰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겠다.


편지야 네가 떠나도

쓰면 되는 것이긴 한데,

글쎄다.


언제까지라는 기약을 하지 않으려 한다.

의무가 아닌 마음으로 쓰고 싶기 때문이다.


또 생각한 것과 다르게 시작해버렸다.


너와 있었던 주말 여행,

여행처럼 다녀온 서울 일정이

너무 좋았다는 것으로 시작하려고 했었는데

어쩌다보니 첫 시작이 달라졌구나.


그러면 또 어떻냐?

그 이야기야 지금부터 하면 되는 것을.

그렇지 않냐?


사람이 살다보면

엉뚱한 길로 빠지게 될 수도 있는 것이지.


엉뚱한 길로 빠졌구나~~ 알고

다시 제 길을 찾아 오면 되는 것이야.

그렇지?


그런 의미에서 이제 제 길을 찾아

제 이야기를 하도록 하마.^^*


너와 토, 일

1박 2일의 일정을 함께 하기로 했다.


토요일에는

엄마도 기대되는 시집 출판 기념회가 있고

일요일에는

엄마가 사회로 진행까지 하는 시집 북토크가 있다.


1박 2일의 여정에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더구나.


중요한 건

좋은 어른을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이라는 것이야.


같이 가고 싶었고

넌 흔쾌히 같이 간다고 했다.


기쁘더구나.

네가 함께 한다는 생각만으로

서울 일정은 멋진 여행이 된다.


엄마의 시집 북토크는 사회까지 하는

더 뜻깊은 자리가 된다.


함께 한다는 것이 이렇게나 좋구나.


전날인 금요일

《빨간목욕탕》 연극 첫 모임을 하고

12시가 다 되어 넉다운이 되어 집에 도착했었지.


서울가는 짐도 싸지 못하고

지친 채 겨우 잠들었단다.


그래서인지

토요일은 컨디션이 영 좋지 못했다.


시외버스 안에서라도

잠을 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피곤하면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을

또 경험하고 말았지.


하지만

'읽씹데이' 출판 기념회는

기대만큼 너무도 좋았다.


그런 좋은 곳에 너와 함께 하니

기쁨과 행복은 배가 되었다.


카페에서 잠시나마 눈을 붙이고

저녁에 식사까지 함께 하게 되었지.


너에게 성인이라고 술을 건네주셨다.

술을 마시지 않고 물만 마시겠다던 너에게

술은 어른에게 배우는 거라며 말이다.


그 시간이 좋더구나.

당당하게 성인 인증을 하고 들어가

엄마와 나란히 앉아

좋은 어른들과 술을 함께 할 수 있는 자리.


그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을 마쳐도 좋을 만큼 기뻤지.


우리는 숙소에서 다시 놀라고 말았다.

진난번 면접하러 서울에 왔을 때 말이다.

숙소 세 군데가 있었지.


그 가운데

1박에 십만 원이 훌쩍 넘는

숙소를 잡았던 거 기억나니?

비싸서 손이 후덜덜덜덜 떨렸다.


그래도

네 중요한 면접이기도 하고

좋은 숙소에서 자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 같다고 겨우 잡았던 숙소말이다.


세상에!

그 숙소보다 더 좋더구나.


좋은 숙소가 주는 편안함에

우리는 또 한 번 감사함에 마음이 녹아들었다.

끝없이 베푸는 사랑에 감사가 넘쳤다.


지친 몸을 쉬기에 너무 좋았다.


몸은 피곤하지만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진 엄마에게

넌 명령을 하더구나.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자라고!


그 한 마디에 의지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지고 간 감사일기장도 펴지 않았다.

그대로 잤다.


얼굴에 팩을 붙이고 눈을 감은 채

다음 날 있을 시집 북토크 사회를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돌리면서 누웠다.


머릿속 북토크 진행이

다 끝나기도 전에 잠들어버렸지.


정말 잘 잤다.


너의 말 한 마디가 그렇게나 힘이 되었다.

그 말이 필요했던 걸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불안이

몸은 지쳐 기절하는데도

뭔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초조감을 줬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자라는

너의 한 마디에 다 내려놓아지더구나.


어찌 엄마가 아이에게 해줘야 할 것만 같은 말을

아이가 엄마에게 하는 상황 같긴 하다.^^;;


엄마와 아들이 뭐가 대수냐?

어른도 아이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지.

아이에게 받는 위로와 힘이 얼마나 큰데.

그렇지?

^^;;


푹 잘 잤다는 느낌, 참 오랜만이다.

덕분에 다음 날 시집 북토크에

좋은 컨디션으로 할 수 있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엄마에게 엄지척을 날리던 아이야.



너의 엄지척, 박수가 엄마에게

얼마나 큰힘이 되었는지 알겠니?


순서가 바뀌어 당황했었는데

네가 자랑스러운 듯 쳐다보며

핸드폰으로 엄마를 담는 모습을 보니

정신이 차려지더구나.


고맙다. 아이야,

네 덕분이다.

북토크 잘 마칠 수 있었던 건

든든한 네가 앞자리에서 엄마에게

엄지척을 해주었기 때문이야.


언제 또 이런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엄마는 이 기억만으로도

어떤 북토크도 어떤 북콘서트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여 지금 연극 연출에 대한 불안도

이겨내도록 하마.


네가 엄마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힘을 주듯이

엄마도 너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힘을 주고 싶다.


거기에 덧붙여 편안한 안식의 공간까지도

되고 싶다.


힘들고 지칠 때면 가장 먼저 떠올리고,

떠올린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엄마이고 싶다.


너와 함께 하는 얼마 남지 않은 날,

너를 위해서 오롯이 살자 했건만

빨간목욕탕 연극으로 엄마가 너무 바빠졌구나.


파란수영장 퇴고까지

함께 진행하게 되어 더 여유가 없는 엄마다.


미안한 마음이다.

저녁으로 먹는 채소 샐러드도 만들어줘야 하는데,

마트에 다녀오고

채소 다듬어 만들어 놓을 그 여유조차 없다니.


조금만 기다려주렴.

연극이 이제 막 시작이라 더 그럴 거다.

조금만 기다려주렴.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하는 것조차 미안하구나.

넌 괜찮다고 신경쓰지 말라고

무리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래도 미안한 건 미안한 거다.


오늘은

너에게 고마움으로 시작해서

미안함으로 글을 마치게 되는구나.


그래도 함께 한 시간 잘 간직하자.

고맙고 미안한

예쁜 내새끼.


최대한 엄마 일정 잡지 않을게.

너와 함께 하는 날 동안은.

이미 정해진 것이랑

꼭 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다른 것은 잡지 않을게.

너랑 같이 있자.

그거 계속 해야지.

남은 시간 동안 추억 만들기!


네가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 해보는 것 말이다.


엄마도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우리 다시 시작하자.


다시 물어볼게.

뭐 먹고 싶니?

가고 싶은 곳은?

하고 싶은 것은?


우리 다시 만들어가자.

남은 시간 더 많은 추억을!


예쁜 내새끼,

바람이 많이 분다.

많이 춥다.

건강 단디 챙기자.

사랑한다. 내새끼야~! ^^*



2026년 1월 13일 화요일

아침 7:57

바람 소리가 요란한 아침.


집이 있음에

새삼 감사함으로

시작하는 아침이다.


새삼 더 많이

널 사랑하는 엄마가.

^^*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