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당당하게 술 마시고
당당하게 외박하고 온다고 말하는
나의 아들아,
스물 여덟번 째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하하하하하
지난 토요일이다.
너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간다고 했다.
이곳 시골에서는 마실 데가 없으니
당연히 옆 소도시로 간다.
그리고 말하더구나.
자고 올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하긴 그렇다.
옆 도시에서 우리 사는 곳으로 오는 시외버스가
9시면 막차이니 술을 마시기 쉽지는 않겠다.
그래서였냐?
지난번 너의 스무 살 첫 당당한 술은
대낮부터 이미 1차, 2차까지 끝내고
저녁 7시에 돌아오지 않았냐?
이번에는 제대로 마셔보려나 보구나.
라는 생각도 잠시,
외박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엄마는 생각에 잠긴다.
벌써부터 외박을?
엄마 말에 넌 당당히 말하더구나.
엄마, 나 스무 살이야.
성인이라고!
아하, 요녀석.
스무 살이 무슨 벼슬이라도 되냐?
스무 살이 되더니
스무 살을 노래하는구나.
하긴 또 그렇다.
열아홉 살과 스무 살은
하늘과 땅 차이이지?
스무 살 스무 살
노래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고보니
엄마의 스무 살은 어땠을까?
마음껏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주어진 하루가 버겁긴 했다.
엄마는 아르바이트를 했구나.
부산 서면에 있는 '다전'이라는
전통찻집에서 말이다.
어떻게 그렇게 기억을 잘 하느냐고?
아르바이트 하다가
계단에서 엄청나게 크게 접질렀거든.
그때 다친 발목은 제대로 된 치료도 못했지.
어쩌면
엄마의 지금 이렇게나 아픈 다리는
이때부터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반깁스 상태로 목발 짚고
학원 계단 오르내리던 생각이
지금도 생생하다.
차를 태워줄 사람도 없이
혼자서 어떻게 그렇게 다녔는지.
아무튼
그렇기에 엄마의 스무 살은
새로운 도전과 자유보다는
암울함으로 기억된다.
다행히도
너의 스무 살은 그렇지 않아보인다.
그러니
술 마시고 외박할지도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나, 스무 살이야
그러면서 말이다.
그날 결국 넌 외박을 했다.
엄마, 나 자고 갈 거야.
문자 하나 달랑 주고 말이다.
이것참.
다음날 아침에는 또
친구들과 나란히 교회를 가겠다고 하더구나?
한 번씩 가던 교회이긴 하다.
친구 부모님이 하시는 작은 교회.
마칠 때쯤 데리러 가기로 했다.
널 기다린다고 교회 앞에 있는데
기분이 묘하더구나.
첫 외박한 아들,
어떤 모습일지 몹시 궁금했단다.
교회에서 내려오는데
친구랑 나란히 걸어오는데
어찌 엄마 눈에는 귀엽게 보이냐?
술 마시고 외박한 아들이
귀엽게 보이는 엄마가 정상인 게 맞냐?
알 수가 없구나.
이건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ㅎㅎㅎㅎㅎ
친구와 헤어지고
너와 엄마는 돼지갈비를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다며
아주 맛있게 먹었지.
해장국을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구나.
이것참.
스스로 얼마만큼 마실 수 있는지
알아가고 있다고 말하더구나.
이번에는 소주 2병 가까이 마셨다고 했냐?
누구 닮아 주량이 그렇게!
아하하하핳
내일이구나.
넌 또 친구들과
술을 마실 거라고 하는구나.
순간적으로
너무 자주 마시는 거 아니냐는
말이 튀어나온다.
네 친구 누구는 날마다 술 마시고
인스타에 그걸 인증하며 올린다면서
넌 자주 마시는 게 아니라고 하더구나.
네 친구 뿐만 아니라
스무 살 아이들이 많이 그러고 있다지?
이걸 너희 세대 문화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아니다.
이건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도 스스로 잘 살아온 너이기에
앞으로의 길도 잘 살아갈 거라고 믿는다.
그것이면 된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이미 술을 어느 정도 마셨단다.
우리 때는 술에 관대함(?)이 있었지.
지금보다 더 그랬던 것 같다.
수학여행 베낭 속에
이미 양주를 넣어 갔었단다.
나폴레옹이라고 지금도 생생하구나.
엄마가 많이 놀았던 사람일까?
하하하하하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다.
네가 시골에 박혀서
너무 공부만 한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학교 선생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넌 모범생의 이미지이지.
네가 하는 말에서 느껴지기도 하고.
그것이 스무 살이 되면서 폭발하는 건가
하는 약간의 걱정 같은 것 말이다.
엄마가 추구하는
자유 선택의 교육,
자유 선택의 삶에서
늘 말하는 것이지 않니?
억누르면 터지게 되어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자유 속에서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앗!
갑자기 무슨 개똥철학을?
역시 엄마는 엄마인가 보다.
마무리는 꼭 잔소리가 되려고 하니.
그러니 이만 줄여야겠다.
이 말만 할게.
엄마는
너의 당당함이 좋다.
당당하게 술 마시고
당당하게 외박하고
그러면서도 네 스스로
2, 3월에 술을 많이 마실 것 같으니
간을 쉬게 해줘야 된다고 하더구나.
지금은 네 주량을
알아가는 것이라면서 말이다.
술 마시는 것조차
네 스스로 참 잘한다.
기특한 내새끼.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지난번 북콘서트 북토크처럼
좋은 어른들의 모임에 함께 하는 것이 전부다.
그리고
널 믿고 지지해주고 말이다.
스무 살 아들아,
앞으로도 그렇게
앞으로도 이렇게
당당하게 살아가렴.
사랑한다.
예쁜 내새끼야,
^^*
2026년 1월 20일.
화요일. 아침.
널 너무 사랑하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