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닮아 술꾼인 건지. 이것참!

by 필이

아들아,

스물아홉 번째 편지를 쓴다.

이 글을 시작할 때

목표가 서른번 째 편지까지 쓰는 것이었단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얼마 남지 않은 편지지?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변하게 되어 있는 법!


이렇게 편지를 쓰니 좋구나.

더군다나

네가 이 글을 읽는다지?


정말 놀랐다.

엄마는 네가 언젠가는 읽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쓰고 있거든.


언젠가는 이 글들이

책으로 되어 네게 닿지 않을까.

또 언젠가는 이 글들이

더 큰 미래의 너에게 닿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을 하며

매 편지를 써나갔단다.


그런데

네가 이 글을 읽는다니.


허허

갑자기 무게감이 느껴지는

이것은 무엇이냐?


그리고

무척이나 기분이 좋구나.


누구랑 이야기할 때였더라?

네가 엄마 글 한 번씩 본다고 하지 않았니?

이 글 뿐만 아니라

어떤 글들이 새로 올라오나 한 번씩 본다고 말이다.


기분이 이상하구나.


엄마의 언니가 엄마 글을 읽고

응원해줄 때도 굉장히 기분이 이상했단다.


좋다라는 한 마디로

다 담을 수 없는 벅참이 있었지.


지금도 엄마의 언니는

엄마 글을 응원해주고 있어.


이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아니?


든든한 지원군이

백만, 아니 천만, 아니 만만은 있는 것만 같다.


가슴 저 깊은 곳에

든든한 둥지가 하나 있는 것도 같고.


이것이 엄마를 얼마나 지탱해주는지.


오랜 친구가 응원해줄 때도

이런 느낌이 있었단다.


현생의 엄마를 아는 이들이

현생의 엄마 삶을 아는 이들이

축하해주고 응원해준다는 이 기분.


잘 살아냈다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위로가

지금 살아가는 힘이 된단다.


그런데

이젠 너구나.


네가 직접적으로

표현은 하지 않아.


그 어떤 글에도

공감도 댓글도 없지.


난 네 아이디도 모르니

공감을 눌렀어도 모르긴 한다.


그럼에도 기쁘구나.

네가 엄마 글에 관심을 가진다는 그 자체로

엄마는 기쁘다.


엄마가

《파란수영장》 출판사 계약할 때도

이번 시집 북토크할 때도

넘 엄마 곁에서 엄지척을 해주었지.


자식에게

엄지척 받는 엄마라는 게

어떤 기분인지.


네가 이 다음에 자식 낳아서

그 아이가 너를 향해 엄지척을 해준다면

알 수 있을 거다.


그때까지는 넌 모를테지.


고마운 녀석아,

어찌 이리 엄마를 감동시키는 거냐.


참 평화로운 휴일 아침이다.

어제 아침도 그렇고.


어제는 모처럼

오롯이 너와 집에 있는 날이었다.


서로 각자의 일을 하면서도

함께인 듯한 느낌이

참으로 평화로웠다.


밥 먹을 때조차

너는 밥을 먹고

엄마는 단식 후 보식으로

과일을 먹으면서도

우린 함께라는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좋구나.

새해가 되고 지난 주까지.

연 3주를 주말 일정으로 바빴구나.


너나 엄마나

집에 있지를 못했어.


이번 주말이야 말로

오롯이 우리 둘이 집에 있는 주구나.


이것이

이렇게나 마음을 가득 채우는 행복인지.


이것이

이렇게나 평화로운 기쁨인지.


참 소중하구나.


2월이면 바빠진다지?

연세대학교에 다녀와야 한다고?


오티도 있고

오티 후 모임도 있다고?


혼자서 차표도 끊고

숙소도 알아보겠다고 하는데


이것참.


서울 숙소는

엄마도 잡기가 힘들어서

걱정을 했더니

기숙사를 개방한다고?


아직 정확한 건 아니라고 하니

엄마는 기다리마.


네가 해내는 그 모든 것을

지지하면서.


아참,

기숙사도 가야 하는구나.


입학 3일 전부터

기숙사 들어간다고 했었니?


네가 기숙사 가는 날은

엄마도 함께 가마.


인천 송도.

먼 길이지만 함께 가자.

먼 길이니깐 함께 가자.


재밌구나.

이 글을 쓰면서

먼 길과 먼길에 대해

찾아봤단다.


먼 길은 물리적인 먼길을 넘어

인생의 여정, 시간의 흐름 등을

비유적으로 나타낼 때 자주 쓰는 단어라고 하는구나.


엄마가 무의식적으로 쓴 먼 길은

어쩌면 너와 떨어지는 물리적인 먼길을 넘어

이젠 네 인생을 떠나는 너와의 먼 길인지도 모르겠다.


암,

떠나야지.

이젠 네 길을 가야지.


그러니

우린 먼길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진

먼 길을 함께 가는 거다.

너를 응원하기 위해서.


몸이 비록 멀리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함께임을.


엄마에게 언니라는 존재가

든든한 둥지로 깊이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네게도 엄마가 든든한 둥지로 존재하기를!


평화로운 휴일 아침.

너와 누리는 이 평화가 참 좋구나.


사랑한다. 내새끼야.

^^*




2026년 1월 25일 일요일

늦은 8시 6분


아침에 글을 다 써놓고

마무리는 이제야 하는구나.


오늘도 저녁에 나갔다.

이번에는 치맥을 마신다고.

아니 치소냐?

아하하하하.


그래도 인근 소도시가 아닌

면에 간 거라 마음이 조금 놓인다.

바로 코앞에서 마시고 있으니.


아무래도 너 술꾼이냐?

누구 닮은 게냐?


아,

길어지면 안되니 이만 줄이마.


술 마시는 아들

데려다 주고

술 마신 아들

데리고 와야 하는

엄마로부터.

푸핫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