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초월 강심장 아들과 안절부절 약심장 엄마

by 필이

"띵똥"


낯선 초인종 소리가

한낮의 정막을 깬다.


택배 기사님 말고는 찾아올 사람이 없기에

'띵똥'

소리가 낯설기만 하다.


"누구세요?"


"네, 옆집이에요."


문을 삐꼼 연다.


"아니, 친정에 다녀왔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네?"


"산불났다고 긴급문자가 계속 와서요. 군에 전화하니깐 산불 잡힌 적도 없고 계속 번지고 있다고. 해당 마을 이름 뜨면 바로 대피하라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고 걱정이 돼서……."


시골 작은 아파트다 보니

따로

관리사무소가 없다.


위탁으로 관리되면서

이럴 때는 참 난감하다.


어디다 물어야 할지.




산불이 발생한 건

금요일이다.


크게 재난 문자가 오지도 않고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면이길래

그리 신경쓰지 않는다.


빨간목욕탕에서 만난 언니들도

아무런 이야기도 없다.


한의원에서 만난 이들도

아무런 말도 없다.


우린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를 보낸다.


심지어

봄이 왔다며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하고

봄바람을 쐬기도 한다.



어제다.


'삑~~~~~!'


긴급재난

알림 소리가

세상을 찢어놓는다.


이번엔

내가 사는 면이 포함이 된다.


이때부터

사실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강 건너 불 구경이던 것이

강 이쪽 불이 된 것이다.


그래도 내가 사는 마을은 아니니

괜찮겠지

안심하려 애쓴다.




"여기서 8키로밖에 안 떨어졌대요. 8키로면 금방이잖아요. 어쩌지요? 귀중품 같은 챙겨놔야 할까요? 대피하면 어디로 가야 하지요?"


옆집은

서울에서 이사 온 분들이다.

여기 산지 조금은 더 오래된 내게 묻는다.


나도 아는 게 하나도 없다.

당장 어디로 피난?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웃분과 걱정과 우려의 이야기를 잔뜩 나누고나니

이젠

걱정이 스멀스멀을 넘어선다.


이젠

안절부절이다.


왔다갔다 난리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딱히 뭔가를 할 수도 없으면서

가만히 있지도 못한다.


창밖을 쳐다본다.


안보이던 붉은색이 보인다.


"원아, 원아, 일루와봐. 저거 저거 불이지. 그치? 이쪽은 안그런데 저쪽은 붉잖아. 저기가 불난 곳인가봐. 어쩌지? 우리도 대피 준비해야 할까?"


"그러게 저기가 불난 곳인가 보네? 예전에도 불난 거 봤었잖아. 그땐 빨갛게 불도 보이고."


산골에 살 때 이야기다.


"그땐 우리가 사는 곳이 높아서 불이 보인 거지. 그래도 우리랑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불난 거고. 여긴 우리가 낮아서 안 보이는 거지. 8키로밖에 안 떨어졌대. 8키로면 순식간에 번질 수 있는 거리잖아."


아이가 8키로를 이해할 거라고.

내 말에 맞다고 고개를 끄덕여 주기를 바라기라도 하듯 아이를 바라본다.


태연하다.

표정에 변화가 없다.


그러면서 사진을 보여준다.


"우리반 친구가 보내준 거야. 자기 집에서 이렇게 보인대."


사진 속에는 불꽃이 뻘겋게 낼름낼름 산을 뒤덮고 있다.


우리쪽에서는 낮으나마 산 넘어 불이라 하늘이 붉게 보이는 것인데

아들 친구집 쪽에서는 불을 마주보고 있어 불꽃이 다 보이는 것이다.


불꽃까지 보고 나니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하나.

마실 물을 챙겨야 하나.

후레쉬도 챙기고.

귀중품은 뭐가 있지?

이대로 옷만 입고 나가면 되나?


안절부절

안절부절

안절부절


어느새 아이는 제 방에 들어가 공부한다.


계속 방문을 두드린다.


"원아, 우리 대피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닐까? 불은 순식간에 번질 수 있는데. 우리가 사는 면에도 대피 명령이 떨어졌잖아."


"원아. 뭘 챙겨야 하지? 우리 어디로 가야 해?"


"원아, 어째야 하노. 이대로 있으면 될까?"


그러기를 몇 차례나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대답도 없던 아이가 드디어 입을 연다.


"엄마,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없잖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러면서 계속 공부를 한다.


하아~

이녀석은 강심장인 건지

세상을 초월한 것인지




가까운 곳에서의 산불

진화작업에 나섰던 이의 죽음


삶의 유한성이 절실히 느껴지기도 하고

복잡한 심정으로 안절부절하던 엄마를

단칼에 제압하는 놀라운 녀석!


그제야

자리에 앉아 글을 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글쓰기를 하며 마음을 진정시킨다.


아니

진정시키려 애쓴다.


강심장 아이를 좇아 글을 쓰며 하루를 지난다.




이 글은

제가 사는 지역에

산불이 크게 났던 초봄에 씌여진 글입니다.




오필리아처럼~

필이~ ^^*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