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 끝. 기다렸다는 듯이 수영장에는 언니들로 소란이다. 샤워실의 가림막은 그 기능을 잃고 서로 이야기에 여념 없다. 긴 시간 만나지 못한 애절함이 물방울을 타고 춤춘다. 사랑도 사랑도 이리도 깊을 줄은. 흡사 장날 빨간목욕탕 같다. 조용하다가도 장날이면 사람들로 북적북적이던 빨간목욕탕.
"영숙아, 잘 살았나? 어디 갔다 왔나? 안보이데?"
"흐흐흐흐흐 여행 갔다 왔다. 안간다 안간다 해도 기어이 가라고 보내 주네. 자식들이. 아하하하하."
언니들은 손으로는 거품질에 쉴 틈이 없고, 입으로는 말한다고 쉴 틈이 없다. 동시에 저리도 잘하는 것을 보니 언니들 치매 걱정은 없다. 괜히 엉뚱한 생각에 혼자 슬그머니 웃는다.
"그래, 갔다 왔나? 몇 시간 걸리더노?"
"말도 마라. 차가 맥히갖고. 겨우 갔다 왔다. 속초까지 여덟 시간 넘게 걸렸제?"
속초? 귀가 번쩍한다. 블로그 이웃 중에 '하니오웰'이라고 약간 괴짜스러운 동생이 있다. 그 동생이 이번에 엄마랑 가족들이랑 함께 속초에 다녀왔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게 뭐라고 씻다 말고 귀가 번쩍하는가. 뭔 큰일이라고 이리 이야기하나 싶을 것이다. 하지만 파란수영장 언니들의 '속초'라는 말이 들리는 순간, 번쩍! 귀도 눈도 코도 입도 다 동그랗게 되어버린 건 사실이다.
세상이 이렇게나 재미있게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그렇지 않은가. 전혀 모르는 남과 남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것이. 그 중간에 필이 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 괜히 필이가 모든 비밀을 푸는 열쇠를 가진 마법사, 아니 연결고리라도 된 것마냥 신기한 그런 느낌이다.
얼마나 지났나. 언니들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속초 이야기가 언제 끝났는지 다른 이야기가 진행 중이다.
"아니, 오지 말라고 말라고 해도 기어이 그래 오네. 오는 것도 귀찮다. 시켜먹고 한다고 해도 맛있는 거 해먹이고 싶고. 아무리 대충 자고 간다 해도 따시게 재우고 싶은 거지. 저거들 안 불편하구로."
"많이 왔다 갔나?"
"아들, 며느리, 손주. 딸내미네 가족. 뭐 다 왔다 갔제. 그랑께 정신이 하나도 없고. 허허허허허"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언니는 웃음마저 자랑으로 가득하다. 행복이 넘치다 못해 펑펑 솟아난다. 그 행복을 다 가지고 가라고 퍼주는 것만 같다.
"오면 불편하기나 하지. 뭐할라고 이래 오는지 모르겠다. 어버이날이고 뭐고 이제 안 와도 된다고 그래그래 말해도. 기어이 오네. 아하하하하."
긴 연휴 끝.
언니들은 자식 자랑으로 샤워실을 나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되는 듯 연휴 동안 있었던 설을 푸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어느새 샤워실에는 물방울로 가득하다. 물방울 하나하나에 언니들의 웃음이 떠다닌다. 물방울 하나하나에 언니들의 행복이 떠다닌다.
물방울 하나 살며시 가져온다. 필이 몸에 바른다. 언니 웃음이 필이에게 묻는다.
물방울 하나 살짝이 가져온다. 필이 몸에 마사지한다. 언니 행복이 필이 몸에 들어온다.
빨간목욕탕도,
파란수영장도,
자식 자랑이 최고의 기쁨이다. 울 언니들에게는.
필이도 그렇겠지?
아들아, 얼른 장가 가라. 가서 아이 셋은 낳아라.
엄마가 다 키워~~~~는 못준다. 자기 자식 자기가 키워야지. 암!
오필리아처럼~
필이~^^*